메모장을 뒤적이다 오래전에 끄적여 둔 글 하나에 한참 동안 눈길이 머뭅니다.
딱 일 년 전에 쓴 글인데도 그때나 지금이나 연말을 맞이하는 심정이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해가 갈수록 내딛는 발걸음마다 다가오는 시간마다 새로울 것이 점점 더 없어집니다.
보수화 되어가는 나이 탓이라 해도 무방하고 변화를 싫어하는 기질 탓이라 해도 좋을 듯싶습니다.
그 글을 오늘 썼다고 해도 뭐하나 이상할 리 없는 문장들입니다.
해서 다시 한번 그대로 옮겨봅니다.
매년 이맘때면 마음이 스산해집니다.
부지런히 살아낸 듯한 일 년이지만, 가만히 돌아보니 별로 해 놓은 게 없습니다.
해마다 반복되는 삶인 줄 알면서도 허전한 마음을 다잡기 힘듭니다.
이제 이만하면 됐다 싶은데도 마음 한구석에서 솟구치는 허욕이 여전한가 봅니다.
이것저것 해보느라 그동안 지인들과 잊은 체 지냈습니다.
번잡스럽고 거추장스러운 모임이라 생각되면 발길을 끊었습니다.
스마트폰 연락처 중에 일 년 이상 통화 한번 하지 않은 번호를 삭제하기도 했습니다.
가식적이고 마음 내키지 않은 일은 하지 않으며 살고자 했습니다.
하고 싶은 것을 모두 할 순 없지만, 하고 싶지 않은 것은 하지 않고 살려했습니다.
그렇게 훌훌 털어 내고자 오래전부터 욕망했더랬습니다.
이런 소심한 방법으로 내가 할 수 있는 마음의 자유를 누렸습니다.
그로서 생겨나는 고독이라는 빈틈은 취미와 공부로 메우려 애썼습니다.
하지만, 11월 마지막 날, 달력 한 장을 찢어내니 스멀스멀 새어 나오는 헛헛함을 떨칠 길이 없습니다.
이러다 내 곁에 그나마 머물던 인연들마저 소원해질까 걱정됩니다.
세상만사가 다 그렇듯, 뭘 하나 얻으면 다른 뭔가를 잃게 된다는 이치는 이럴 때만 뇌리를 스칩니다.
우연히 목필균이라는 분의 <12월의 기도>라는 시를 읽었습니다.
어쩌면 이리도 내 마음을 고스란히 대신할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시만 덜렁 올리기 민망해서 몇 마디 끄적였는데, 그냥 시만 올릴 걸 그랬습니다.
하루 종일 비가 쏟아지고 스산하기 짝이 없는 오늘, 이 시를 읽으면서 허우룩한 마음을 달래 봅니다.
마지막 달력을 벽에 겁니다
얼굴에 잔주름 늘어나고
흰 머리카락이 더 많이 섞이고
마음도 많이 낡아져 가며
무사히 여기까지 걸어왔습니다
한 치 앞도 모른다는 세상살이
일 초의 건너뜀도 용서치 않고
또박또박 품고 온 발자국의 무게
여기다 풀어놓습니다
제 얼굴에 책임질 줄 알아야 한다는
지천명으로 가는 마지막 한 달은
숨이 찹니다
겨울바람 앞에도
붉은 입술 감추지 못하는 장미처럼
질기게도 허욕을 쫓는 어리석은 나를
묵묵히 지켜보아 주는 굵은 나무들에게
올해 마지막 반성문을 써 봅니다
추종하는 신은 누구라고 이름 짓지 않아도
어둠 타고 오는 아득한 별빛 같이
날마다 몸을 바꾸는 달빛 같이
때가 되면 이별할 줄 아는 사람이 되겠다는
마음의 기도로 12월을 벽에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