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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급 인생 Jan 20. 2022

부레 없는 상어가 바다를 지배한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를 때 진정한 여행이 시작된다.

2가까이 자격증 공부를 했다. 힘들 때마다 '생쥐 한 마리를 잡을 때도 온 힘을 쏟아붓는 호랑이'를 떠올렸었다. 포기하고 싶을 땐 "no pain, no gain"을 중얼거렸다. 공부 이외에는 가급적 다른 일을 머리에 담아 두지 않으려고 애썼다. 코로나를 핑계로 주변 사람들을 멀리했다. 여행이나 모임도 가급적 자제했다. 공부할 시간을 많이 확보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하고 싶은 것들을 다하면서 공부를 하기엔 체력적으로 무리였던 게 큰 이유였다. 노안 점점 심해져 읽고 쓰는 일 자체가 고역이라서 공들여 공부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도 했다.


정성이 갸륵했는지 1차 필기시험과 2차 면접시험을 한 차례씩 낙방한 끝에 최종 합격을 했다. 나로선 대단한 일이었지만 주변에 내색하지 않았다. 아내 이외에는 공부한다는 사실 자체를 발설하지 않았다. 불합격했을 경우 주변으로부터의 불편한 시선을 차단하기 위해서였다. 스스로 쳐둔 심리적 방어책이었다.


공부하는 동안에는 합격만 한다면 원이 없을 것 같았다. 노후 걱정도 조금은 덜 수 있어서 마음 편히 직장 생활을 마무리할 것 같았다. 그래서 취미생활 위주로 남은 직장생활을 마무리하리라 맘먹었었다. 맨 먼저, 공부하느라 구입하고 나서 쌓아만 놓았던 책들을 여유 있게 읽으려고 했었다. 코로나로 해외여행은 어렵지만, 가보고 싶었던 국내 여행도 자주 하리라 계획했었다. 주변 선후배나 친구들과 가끔 만나보려고도 생각했었다.


하지만 막상 합격이라는 목표지점에 도달하니 맘먹은 대로 되질 않았다. 진이 다 빠진 듯 노곤해지고 늘어졌다. 게을러지는가 싶더니 차츰 만사가 귀찮아졌다. 뭘 해도 흥이 나지 않았다. 누굴 만나고 싶지도 어딜 가고 싶지도 않았다. 책을 읽어도 집중이 되질 않고 중도에 포기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어딜 가도 즐겁지 않고 피곤하다는 생각만 들었다. 성취 뒤에 오는 허무와 회의인 듯했다. 공부를 시작할 때와 달리 또 다른 걱정도 찾아왔다. 이 자격증이 과연 노후대책용으로 써먹을 수나 있을까 싶었다. 젊은 사람도 수두룩한데 자격증만 있다고 나처럼 나이 많은 사람을 채용하기 쉽지 않을 거란 걱정도 들었다. 초심자의 자세로 현업에서 경력을 쌓지 않는다면 공들여 따놓은 자격증이 장롱 면허증이 될 소지가 충분하단 불안감이 들었다. 공부하면서 업계 동향을 접해보니 내 기대와는 달리 퇴직 후 자격증 하나 달랑 들고 활동하기가 만만찮다는 걸 알았 때문이다.




게다가 나이 탓인지 체력의 저하가 확연히 느껴졌다. 꾸준히 해오던 운동도 예전만큼 할 수가 없었다. 운동을 하고 나면 예전과 달리 몹시 지치고 피곤하였다. 초저녁부터 잠이 쏟아졌다. 대신 새벽 일찍 눈이 떠졌다. 깜깜한 적막 속에서 앞날에 대한 온갖 상념들이 찾아들었다. 노후대책, 퇴직 후의 재취업, 애들의 진로 등 별라 별 잡생각이 새벽 공간을 메웠다. 그러다 어느새 다시 잠에 빠져들긴 했지만 스마트폰 모닝콜 소리가 울리기 전에 다시 깨는 날이 많았다. 어느 날은 뭔 잠꼬대를 그리 심하게 하느냐고 아내가 놀리기도 했다. 알아들을 수 없는 중얼거림 끝에 누군가와 싸우기라도 한 듯 소리를 버럭 질렀다고 한다. 온갖 상념과 욕망들이 지독한 악몽으로 변하여 나를 괴롭혔던 모양이었다. 안방에서 멀리 떨어진 방을 쓰는 딸아이에게까지 들릴 정도로 꽤 큰 소리를 질렀다고 한다. 딸은 나름 걱정이 되었는지 인터넷을 검색해 제 엄마에게 수면건강에 관한 기사를 보냈다고 한다. 중년이 새벽에 심한 잠꼬대를 하면 치매 위험이 높다는 기사였다. 그러지 않아도 근자에 극심한 체력 저하를 느끼던 차에 가볍게 들리지가 않았다.


그 와중에 공부에 대한 회의도 몰려왔다. 공부는 평생 하는 것이라고들 하지만, 누군가를 가르치며 배움을 나누어 주어야  나이도 지난 지 오래다. 교육자로 업을 했어도 지금쯤이면 현직을 떠날 시기다. 그런데도 나는 가르치기는커녕 여전히 배우기만 했으니 여태 뭘 했나 싶었다. 맹자도 군자의 세 가지 즐거움(君子三樂)중 하나로 '천하의 영재들을 얻어 가르치는 것(得天下英才而敎育之, 三樂也.)'을 꼽았다. 누굴 가르쳐도 시원찮을 판에 써먹지도 못할 자격증 공부나 하고 있지는 않았나 싶었다. 게다가 동양철학자 최진석 교수 나를 더욱 회의의 늪에서 허우적거리게 만들었다.

배움이 습관이 되어버리면 평생을 배우다가 세월을 다 보내버립니다. 다른 사람의 생각만 배우다가 생을 마감하기도 합니다. 우리가 배우는 목적이 무엇일까요? 배움으로 인해서 자신을 표현하기 위함이 아닐까요? 인생에서 자신을 표현한다는 것은 선택의 문제가 아닙니다. 배움은 수단이고, 자신을 표현하는 것이 목적인 것입니다.
 
(중략)

어느 순간이 되면 자기 자신에게서 차지하는 배움의 비중이 줄어들어야 합니다. 대신 자기를 표현하려는 용트림이 필요합니다. 다른 사람의 생각을 따라 배우다가 잘못하면 죽을 때까지 잃지 말아야 할 야수 같은 눈빛이 사라져 버릴 수도 있습니다. 남들에게 들은 말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그것을 진리로 받아들이면 받아들일수록 자기 눈에서는 원초적인 힘찬 눈빛이 사라집니다. 자신의 주인 자리를 자기가 차지하지 못하고, 배운 내용들이 대신 차지해버릴 때 이런 형형한 눈빛이 사라지는 일이 나타납니다. 공부는 내가 나를 표현하기 위한 수단, 내가 행복한 삶을 누리기 위한 수단입니다.

최진석, <생각하는 힘, 노자 인문학> 215-218쪽




나는 지독한 길치다. 가족과 함께한 해외여행에서 길을 잃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길눈이 어두몇 번 갔던 곳에서도 매번 처음 간 듯 방향감각을 상실하곤 했다. 지도를 챙겨 가지만 지도상의 위치와 방향을 현지에 일치시키는데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다. 지도를 보고 나름대로 파악한 길을 따라 가보지만 목적지는 고사하고 출발했던 곳으로 되돌아오거나 아예 엉뚱한 곳으로 간 적도 적지 않다. 이러니 여행을 갈 때마다 인솔자인 나를 믿고 따라온 가족들을 고생시킬 수밖에 없다. 하지만 낙담하거나 힘들어할 가족들에게 내가 길치임을 알린 적은 없다. 그 사실을 몰랐던 가족들로서는 나를 따라나선 길이 고생길인 줄도 모르고 다녔다. 속은 시커멓게  타들어갔지만 가족들은 여행을 즐길 뿐이었다. 그런 몇 번의 경험 끝에 나는 언제부턴가 길을 잃더라도 애써 바른 길을 찾지 않기로 했다. 이리저리 헤매다 보면 어떻게 해서든 목적지에 도달하였다. 때론 낯선 곳에서 의외의 풍광을 만나거나 기대치도 않았는데 숨은 맛집을 발견한 았다. 얼마 전 TV 교양 강좌에서 이런 말을 들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를 때가 진정한 여행의 시작이다.' 올해 들어 나는 길을 잃었다. 남은 직장생활 동안 뭘 해야 할지 막막했다. 막연히 해야겠다 하고 시작한 몇몇 가지는 이미 달성했다. 이제 도달해야 할 목표가 없어졌다. 허무가 찾아왔다. 지난 여행의 경험이 생각났다. 이제 또 다른 목적지를 찾아 나설 시점은 아닌지 모르겠다.  여정으로 다시 힘들어지고 가다가 지치더라도...


불현듯 상어가 생각다. 상어는 부레가 없다. 물에 사는 생명체에게 부레가 없다면 가라앉을 수밖에 없다. 큰 덩치와 날카로운 이빨을 가진 상어는 바다에서 어느 생명체도 얕잡아 볼 수 없다. 하지만 잠을 자는 동안에는 끝없이 심연으로 가라앉으니 생명에 위협이 된다. 제아무리 무시무시한 상어라도 온갖 생물의 먹잇감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 다행히 상어는 잠을 자는 동안에도 쉴 새 없이 꼬리를 흔들게 하는 유전자를 가졌다. 어있을 때나 잠잘 때나 멈추지 않고 이동한다. 부레가 없는 치명적인 약점에도 불구하고 상어가 바다에서 최상위 포식자가 될 수 있었던 이유다. 하나의 목적지에 도달했다 하더라도 거기에 주저앉아 있을 수는 없다. 가라앉지 않기 위해선 부단히 움직여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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