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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급 인생 Feb 07. 2022

마음의 성역

<문학의 숲을 거닐다(장영희 저)> 를 읽으면서

  작고하신 영문학자 장영희 교수의 에세이집, <문학의 숲을 거닐다>는 나온 지 꽤 오래되었는데도 아직까지 꾸준히 읽히고 있는 스테디셀러다. 거실 책장 한편에 숨어 있던 이 책을 꺼낸 본건 순전히 우연이었다. 나는 1년에 한 번 정도 책장을 정리해 새로 구입 책을 위한 빈 공간을 만든다. 연말연초쯤에 나름대로 소장 가치를 잃어버린 책들을 가려내서 버릴 것은 버리고 중고서점에 팔 것과 계속 소장할 것 골라다. 소장용으로 골라내는 내 나름의 잣대는 무엇보다 언젠가 다시 한번 읽어 볼만한 지가 가장 우선이다.


장교수의 이 책은 몇 번이나 내 심사 기준을 충족하여 책장 한편을 꿋꿋이 지키고 있는 터줏대감이다. 그럼에도 꽤 오랜 기간 동안 다시 읽어 보지 못했는데, 우연히 펼쳐본 부분에 마음이 동하였다.


  장 교수의 문장이 담백하고 단아하다는 것을 새삼 느끼면서도, 황순원의 <소나기>와 같은 젊음의 순수와 풋풋함을 담고 있는 에피소드가 잠시나마 나를 대학시절로 스며들게 해 주었다.  <마음의 성역(sanctity of the human heart)>이라는 제목의 이 에세이는 왠지 모를 애상과 함께 성찰의 시간을 갖게 하여 마음 한 구석을 묵직하게 만들었다. 그 부분을 그대로 필사해보고 나서도 누구에겐가 소개해 주려고 독수리 타법을 동원해 PC에 저장해 두었다. 그것을 여기에 그대로 옮겨본다.


  내가 지금 죽어 하늘의 심판대에 서서 이제껏 지상에서 지은 죄를 모두 고백해야 한다면, 무수한 죄 중에 제일 먼저 “저는 누군가의 ‘마음의 성역’을 침범한 적이 있습니다.”라고 말할 것이다.

  6,7년 전 법학과 2학년 학생들이 수강하는 교양영어 과목과 영문과 2학년 영작 과목을 동시에 맡았던 때의 일이다. 우연히 두 반의 수강생 수가 스물네 명씩 똑같고 법학과 학생들은 모두 남학생, 영문과는 여학생만 있었다. 일부러 그렇게 만들려고 해도 만들 수 없는 좋은 기회라 생각, 나는 두 반 학생들에게 영어로 펜팔을 시키기로 했다. 각자 배우 이름이든 작가 이름이든 자기가 잘 아는 영어 이름을 쓸 것, 두 장 이상 영어로 쓸 것, 예쁜 편지지에 쓰되 자기 신상에 관한 말이나 낭만적인 말을 쓰지 말 것 등, 몇 개의 법칙을 정하고 임의로 남녀 짝을 지어 펜팔 상대를 정해 주었다. 나는 일주일에 한 번씩 편지를 걷어서 점검하고 배달해 주는 우체부 역할을 맡았다.

  그런데 학기가 시작되고 나서 첫째 주에 영문과 여학생 하나가 휴학을 하게 되었다. 할 수 없이 그 여학생의 자리를 내가 메우기로 했는데, 나의 ‘펜팔’ 명호(가명)에게는 말하지 않았다.

  한창 이성에 관심이 많은 학생들이라, 나의 ‘교육적’ 실험은 큰 효과를 거두어서, 영어로 문단 하나 쓰는 것도 힘들어하는 학생들까지도 영화 이야기며 음악, 동아리 이야기들을 나누며 두 장의 편지를 꼬박꼬박 써왔고, 자신의 펜팔에게서 오는 편지를 많이 기다리는 눈치였다. 성실하고 착한 명호는 광주에서 올라와서 누나 집에서 기거하고 있는 학생이었는데, 외로움을 잘 타고 책을 많이 읽는 학생이었다. 마침 사법고시 준비를 하고 있던 터라 나는 자주 격려의 말을 써 주었다. 그런데 편지가 오고 감에 따라 나는 점차 명호가 내게, 아니 내가 가장한 ‘캐서린’이라는 영문과 2학년 여학생에게 마음을 주기 시작하는 것을 느꼈다.

  더럭 겁이 났으나 이제 와서 캐서린이 나라고 밝힐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여덟 번 가량의 편지 교환 후에 종강이 되었고 나는 학생들에게 모르는 사람과 편지를 나눈 기억을 대학 생활의 추억으로만 간직할 뿐, 끝까지 익명으로 남고 자신의 펜팔을 찾지 말라고 당부했다. 마지막 편지에서 명호는 “이제껏 네가 나의 외로움을 많이 달래 주어서 힘든 대학 생활을 너 때문에 잘 넘길 수 있었다. 너무나 고맙고, 너를 생각하며 꼭 사법고시에 붙겠다” 고 다짐했다. 그리고 또 “내가 사법고시에 합격하면 여학생 화장실 문에 ‘캘빈 클라인(명호의 영어 이름)이 사법고시에 붙었다’라고 써 붙이겠으니, 그러면 내가 합격한 줄로 알고 함께 기뻐해 달라”고도 썼다.

  그리고 1년쯤 후, 무심히 학교로 들어오던 나는 ‘사법고시 여덟 명 합격!’이라고 써 놓은 커다란 플래카드가 걸려 있는 것을 보았다. 문득 명호 생각이 났다. 밑에 있는 명단에는 분명히 ‘법학과 3학년 김명호’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그날 오후 인문관 여학생 화장실 문 앞에는 ‘캘빈 클라인이 사법고시에 붙었다!’라는 A4 용지가 붙어 있었다.

  혹시나 걱정하고 있는데 아니나 다를까, 다음 날 명호가 날 찾아왔다. 그 여학생을 꼭 만나게 해 달라고, 그 친구를 만나지 못하면 합격도 의미가 없다고 안타깝게 호소했다. 나는 그 여학생은 그 사이에 유학을 가서 연락이 안 된다고 또 거짓말을 했다. 명호는 자기 선생이 순전히 편의 때문에 자신의 ‘마음의 성역’을 마구 침범한 줄도 모르는 채 눈물을 흘리며 돌아섰다.

 (장영희, <문학의 숲을 거닐다> 32-35쪽)



  나도 장 교수처럼, 내가 지금 죽어 하늘의 심판대에 서서 이제껏 지상에서 지은 죄를 모두 고백해야 한다면, 무수한 죄 중에 제일 먼저 “저는 누군가의 ‘마음의 성역’을 침범한 적이 있습니다.”라고 말하고 싶다. 어떤 때는 젊음의 치기로, 어떤 때는 별일 아니겠지 하는 마음으로, 또 어떤 때는 충고와 조언이란 명분으로, 내 말과 행동이 누군가에게 마음의 상처를 주었을지 모른다.


  이젠 내기억조차 없는 일도 있었을 테고, 기억을 한다 하더라도 그게 뭔 대수겠냐고 스스로 차단막을 쳤을 수도 있다. 따지고 보면 그것들이 타인에게뿐만 아니라 나도 모르게  나 스스로에게 상처를 주고 곪아 가고 있었던 건 아니었는지 모르겠다. 장 교수의 글을 통해 상처를 준 이들에게 사죄하고, 무엇보다 내 사악한 마음을 치유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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