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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급 인생 Oct 16. 2021

공부는 때가 있다.


근자에 노안이 부쩍 심해졌다. 다초점 안경이 아무 소용없다. 책을 볼 때마다 초점이 영 맞춰지지 않는다. 안경을 아예 벗고 책을 눈앞에 바짝 갖다 대야 글씨가 보인다. 원래 고도 근시에다 난시가 심한 눈인데 노안까지 겹쳐 안경 한번 바꾸려면 보통 안경의 몇 배 돈이 든다. 벌이가 시원찮으니 이럴 때마다 만감이 교차한다.


공부한답시고 책을 보려는데 글자가 선명하게 보이지 않아 곤혹스럽다. 게다가 읽은 내용 중에 중요한 것을 메모할 때 너무 불편하다. 근시가 심해 안경을 벗고 얼굴이 책상 바닥에 거의 닿을 만큼 머리를 숙여야 글을 쓸 수가 있다. 이럴진대 뭐하러 책을 읽으려 이 고생인지 나도 이해가 안 된다.


나이가 들면 눈이 침침해지고 귀가 어두워지는 게 자연의 섭리라고 했다. 물주가 사람이 늙으면 덜 보이고 덜 들리게 만들었다고 한다. 늙어서는 너무 꼬장꼬장 살 말라는 의도이다. 보여도 못 본 체 들려도 못 들은 체하는 게 젊은 사람들에게 욕을 덜 먹는 법이다. 나이 들어갈수록 눈과 귀가 저절로 제구실을 못하게 되니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한편 공부는 평생 하는 거라고들 하지만 이렇게 육신 쇠잔해지니 그 말이 딱히 맞다고 할 수 없다.  의욕적으로 공부를 하려고 해도 이 뒷받침해 주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글씨를 무리하게 보려 했더니 머리가 아파온다. 채 한 시간을 볼 수 없다. 고도의 정신작용을 해서 머리가 아픈 게 아니다. 내 나이대의 능력을 뛰어넘는 시각 활동이 시신경과 연결된 뇌를 벅차게 하는 모양이다. 한번 아프기 시작하면 거의 반나절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이제 인정해야겠다. 바닥을 드러내는 내 육체적 한계를 받아들여야겠다. 이럴 줄 알았으면 젊은 시절 좀 더 치열하게 공부해둘걸 그랬다. 부모님은 늘 그러셨지. 공부는 때가 있다고. 그땐 그 말을 잔소리처럼 흘려 들었는데 나이를 니 말귀가 트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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