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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급 인생 Oct 14. 2021

집밖에선 아무도 내게 관심이 없다.

  아내가 저녁 약속이 있는 날엔 대개 딸아이와 밖에서 저녁해결한다. 집에서 간단히 먹을 수도 있지만 밥 차리기가 번거롭고 설거지가 귀찮아서다. 엄마를 도와준답시고 식후에 스스로 나서서 설거지를 자주 해왔던 딸도 흔쾌히 한다.


  지척 지하상가 푸드코트에 한중•일양식의 다양한 먹거리 전문점들이 즐비하여 어슬렁거리며 메뉴를 고르는 재미도 솔솔 하다. 대형마트를 지나면 먼저 마라탕 집과 멕시컨 스낵이 보이고, 이어서 부대찌개와 일본 전통 돈가스 전문점이 나온다. 국숫집과 샤부샤부 식당, 카레전문점을 지나라멘이나 비빔밥을 먹을 수도 있다. 더 가보면 김밥, 김치찜, 찜닭, 중화요리, 스테이크 등등 선택지는 더 많아진다. 하지만 점심을 간단히 먹었으니 저녁은 집밥처럼 먹자고 딸과 합의다. 해서 고른 메뉴가 순두부찌개다. 메뉴판엔 해물순두부, 참치 순두부, 쇠고기 순두부, 굴순두부... 순두부찌개도 종류가 많다. 나는  해물순두부로 먹었는데 그날은 참치 순두부로 정했다. 딸은 고민 고민하더니 들깨 순두부를 골랐다.


  식사 후엔 소화도 시킬 겸 마트에 들러서 아이쇼핑도 하자고 했다. 이왕 나온 김에 후식으로 조각 케이크를 곁들여 커피도 한잔 마시기로 했다. 딸이 좋아하기 때문이다. 거나하게 식사를 마치고 트림을 하며 계산대로 갔다. 모든 게 순조로웠고 느긋했다. 하지만 날의 여유로웠던 마음딱 여기까지다. 밥값을 치르고 영수증을 받아 호주머니에 찔러 넣고 있는데 딸아이가 물었다.


"아빠, 마스크 가져와야지."

"응? 마스크? 주머니에 있나? 없네? 테이블에 두고 왔나?"

"그러고 보니 아빠 집에서부터 마스크 안 쓰고 나온 거 같은데?"


  아싸. 여태 모르고 있었네. 언제부턴가 바깥에서 마스크가 없으면 죄지은 듯 불안해지는 시대다. 그때부터 심장이 고동치기 시작했다.  안절부절못했다. 걸음걸이가 어색해지고 얼굴 표정을 어떻게 지을지 난감했다. 지나치는 사람마다 날 쳐다보는 것 같았다. 식후에 들러려고 했던 마트와 카페는 에서 싹 사라다. 오로지  상황얼른 벗어나고 싶었다. 빨리 집으로 돌아가는 게 상책이었다. 불가피한 이잠시 마스크를 벗은 듯이 괜히 주머니를 뒤적거리는 척했다. 손으로 연신 입 가리 아무렇지도 않은 체했다. 올 때와 달리 돌아가는 길이 무척 멀게 느껴졌다. 지나치는 행인이 갑자기 늘어난 듯 훨씬 많아 보였다.


  아파트 단지까지 어떻게 는지 경황이 없었다. 다행히 현관엔 아무도 없었다. 허둥지둥 승강기 버턴을 눌렀다. 그날따라 타고 갈 승강기가 오기까지 꽤 지루했다. 다른 사람이 더 오기 전에 우리 두 사람만 타고 으면 싶었다. 드디어 승강기가 왔다. 다행히 내리는 사람도 없었고 나와 딸 둘만 탔다. 문이 스르르 닫히고 있는데 돌연 다시 열리기 시작했다. 아이고 타고 가는 동안 눈치 꽤나 보게 생겼다 싶었다. 꼬마 아이가 후다닥 뛰어 들어오다 말고 뭘 두고 왔는지 황급히 되돌아 나갔다. 다행이었다. 마침내 승강기가 움직였고, 도중에 멈추지 않았다. 집에 들어서니 등이 땀으로 흠뻑 젖어있었다. 저녁 한 그릇 먹고 오는 길이 마치 모든 역경을 이겨내고 돌아온 모험 길, 오디세이 같았다.


  차라리 마스크를 쓰지 않았다는 사실을 집에 올 때까지 몰랐다면 어떠했을까? 평화로운 마음으로 이곳저곳 느긋하게 배회하다 오지 않았을까? 주변의 눈총은 의식하지 않은  맘껏 활보하지 않았을까? 물론 다른 사람 눈에는 눈치 없고 몰상식한 행동으로 비쳤겠지만.




  보통 외출일이 생기면 알게 모르게 남의 시선을 의식해서 행색을 제대로 갖춘 다음에 집을 나선다. 머리 상태부터 외출복, 구두 등 주변 사람들 눈길은 끌지 않더라도 최소한 이상하게 보이지는 않으려고 애쓴다. 한데, 어느 학자의 연구에 따르면 지나치는 행인들 중 십중팔구는 쳐다보지 않는다고 한다. 설혹 쳐다본다 하더라도 나중에 기억 조차 없다고 한다. 어쩌면 외출 전에 가다듬은 준비의 대부분이  자신을 위한 행태일 수도 있다. 타인의 시선이 아니라 내 기준의 충족을 위한 것일 수 있다.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해보면 이 연구 결과의 신빙성이 증명된다. 오늘 아침 출근길에 내가 몇 사람을 쳐다봤는지, 다 보기는 했는지 기억 조차 없다. 북적이는 러시아워대 지하철을 타고 갔는데도 지나치거나 심지어 부딪친 사람도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기억에 남았다고 하더라도 얼굴은 고사하고 헤어 스타일이 어떠했는지, 어떤 옷을 입었는지, 무슨 색상이었는지 도무지 떠오르지 않는다. 나는 결국 그들에게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가만히 돌이켜보니 나를 지나친 사람들도 내가 마스크를 쓰지 않았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던 것 같다. 의례히 썼을 거라는 확증편향적 심리가 시각적 인지능력을 마비시킨 듯다. 나도 다른 사람들이 마스크를 썼는지 심각하게 주시하지 않는 것처럼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더 정확한 팩트는 서로 간에 관심이 없다 점이다. 심지어 첨부터 나와 행동을 같이 했던 딸 몰랐는데 말이다. 결국은 나 혼자 북 치고 장구치고 했던 셈이다. 남들은 안중에도 없는데 나 혼자서 내 존재를 지나치게 의식했을 뿐이었다. 모든 안과 두려움은 스스로 만들어낸 기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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