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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급 인생 Sep 22. 2021

오랜만에 소식이 온 동창생의 청첩장

같은 고등학교를 나와 같은 대학교로 진학한 동기가 몇 있다. 고등학교 시절엔 데면데면 알던 사이였으나 대학시절 보내며 더 가까워졌던 친구들이다. 다들 지방 촌놈들이라 낯선 서울에서 살다 보니 좀 더 진한 동류의식이 발동되었기에 그러했을 것이다. 지금 단톡방을 만들어 가끔씩 소식을 주고받고 있다. 요즘은 코로나 시국이라 불가능하지만, 1년에 서너 번 만나 저녁을 먹으며 회포를 풀기도 한다.




고등학교 동창회 사무국에서 문자가 왔다. 동기생 K 내 연락처를 알려달라고 해서 그렇게 했다고. K 대학 졸업 무렵부터 소식이 뜸하더니 몇십 년간 아예 연락이 두절된 상태였다. 우리 만날 때마다 그 친구의 행방을 들었는지 서로 묻곤 했다. 그랬기에 나는 동창회 사무국에서 온 문자 몹시 반가웠고 K의 연락처를 내게도 알려달라는 답장을 보냈다. 그에 대한 답신 문자는 금방 왔다. 나는 당장 전화를  싶었지만 다른 친구들과 이 반가움을 같이 나누고 싶어 단톡방으로 K를 초대했다.


"어이, 친구! 아직 살아있네?"

"어디 갔다 이제 나타났?"

"그동안 잘 살고 있었어?"

"지금 어디 사냐?"


K가 대답할 여유도 없이 친구들의 질문이 쇄도했다. 그동안 소식 한 없던 녀석이 괘씸하기보다는 반가움이 앞섰다. 전쟁통에 헤어졌던 이산가족을 재회하는 것 같았다.

연락 못해서 미안하다, 앞으로 자주 보자, 코로나 진정되면 바로 보자 오랜만에  들뜬 분위기로 대화 했다.


나는 대화 후 K에게 별도로 전화를 했다. 그 친구의 고향에 우리 부모님이 거주하고 계셔서 고향 친구는 아니지만 다른 친구보다 자주 보던 사이였다. 이런저런 얘기서로의 근황을 주고받으며 단톡방에서 못다 푼 회포를 마 풀었다. 




주일쯤 지났을 무렵 K에게서 문자가 왔다. 기쁜 소식이 담겨있을까 싶어 반갑게 보았다. 아들의 결혼 청첩장 파일이 첨되어 있었다. 다른 친구에게도 널리 알려 달라는 부탁짧게 적혀 있었다. 축하하고 싶은 마음이 생겨야 마땅한데 이상하게 묘한 심정이 나를 흔들다. 단톡방에 확인해 보 별도의 알림은 없었다. K의 부탁대로 내가 거기올려놓을까 하다 그만두었다. 왠지 그래서는 안될 것 같았다. 그 친구가 직접 기를 기다렸다. 일 이상 나도록 감감무소식이었다. K에게 문자를 했다.


"이런 중대사는 친구들에게 내가 전달하는 거보다 자네가 직접 알리는 게 예의일 것 같네."


짧은 답장이 왔다.


"알았네"


 표정 없는 글씨만 보는데도 몹시 서운해하는 심사가 느껴졌다.




결혼식 사오일 전에야 단톡방에 K가 올린 아들 결혼 알림보았다. 하지만 말 풍선 옆의 읽지 않은 사람의 숫자가 다 없어질 때까지 다른 친구의 대꾸 없었다. 서운해할까 봐 내가  먼저 축하한다는 답을 했다. 그제야 다른 친구들도 민망했는지 연이어 축하의 뜻을 전했다. 다들 우물쭈물하고 있는데 눈치 빠른 한 친구가 물었다.


"계좌번호는?"


서로 말은 안 했지만 우린 사무적이고 사업적인 투의 대화를 하고 있었다. 코로나 때문에 오지 마라, 그래도 가야지, 하는 정겨운 대화는 한마디도 오가지 않았다. 나는 결혼식 당일까지 망설였다. 가봐야 하는 거 아닐까. 어렵게 연락했는데 코로나 때문에 못 간다고 할 정도의  사이는 닌데 싶었다. 보통 이런 일이 있으면 친구들이 겸사겸사 만나자는 둥 오랜만에 회포를 풀자는 둥 말이 오갔을 텐데 일언반구 언급이 없었다.


 나라도 대표로 갈까 생각했지만 가서 괜히 뻘쭘할 것 같아 생각을 접었다. 대신 축의금으로 축하의 뜻을 전하고 말았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미안한 생각은 많이 들지 않았다. 심지어 액수를 얼마나 할까 저울질하기 까지 했다. 나름 생각해서 섭섭지 않정도로 입금했다. 나는 어느새 내 경조사 때를 고려한 계산적인 을 하고 있었 때문이. 다른 친구들의 경조사 때엔 그런 적이 없었다.




결혼식 후 이틀 후쯤 단톡방에 K로부터 감사의 글이 올라다. 상투적인 답례인사였다. 짜깁기를 했는지 오자에다 비문도 섞여있었다. 어느 누구에겐가 최초로 보낸 글을 이리저리 편집한 티가 확연했다. 나만의 생각인지는 모르겠지만 친구들에게 보내는 감사의  치고는 성의가 없어 보였다.  이후 K로부터 아직까지 다른 소식 없다. 이런 일로 쪼잔하게 마음 상하는 일이 나뿐인 건 아닌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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