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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급 인생 Sep 06. 2021

건망증이 몰려온 날


오늘은 회의가 있는 날이다.

평소보다 일찍 잠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시원하게 샤워를 했는데도 비몽사몽이다.

대충 아침을 챙겨 먹고 현관문을 나섰다.


엘리베이터 앞까지 왔는데 뭔가 찝찝하다.

이럴 땐 무언가 안 가지고 나온 게 분명하다.

한참이나 생각해도 모르겠다.


하행 엘리베이터가 도착했다.

문이 열리는데 이제야 생각난다.

그러고 보니 차키를 두고 왔네.


후다닥 집으로 가서 차키를 가져왔다. 

이미 떠난 엘리베이터가 이럴 땐 꼭 늦게 돌아온다.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오랜만에 운전하려는데 차를 어디다 세웠는지 도통 기억이 안 난다.

키에 열림/닫침 버턴을 누르며 여기저기를 살펴보았다.

여기가 아닌가 보다.

한 층 더 내려 가보자.

여기도 아니네.

다시 위층으로 올라가 한 바퀴 돌아 구석진 곳에서 겨우 발견했다.

이럴 경우에 대비해 주차구역 사진을 찍어놨는데 왜 생각이 안 났지?

  

왔다 갔다 하느라 20분 가까이 지체되었다.

도로 사정을 생각해 좀 일찍 나섰는데 운전해서 가긴 글렀다.

지하철 타면 여유가 있다.

그래 지하철을 타자.


역이 가까워지는데 자꾸 뒤가 당긴다.

경험상 이럴 때도 역시 뭔가 챙기지 않은 게 있다.

도대체 뭘까?

역에 다 왔다.

열차 타면 돌이킬 수 없는데.

지갑을 꺼내려 바지 뒷주머니로 손을 넣었다.


허걱!

지갑 안 가지고 나왔네.

아직 집에 있을 아내에게 가져오라고 해야겠다.

가방 포켓에 손을 넣었다.

아뿔싸, 핸드폰을 두고 왔구나.

차라리 잘됐다.

주차장에서 바로 왔으니 집에 차키나 두고 오자.




다시 지하철 역으로.

이젠 별일 없겠지.

숨을 고르며 지갑을 꺼내 개찰구에 대는 순간.


"또로롱, 마스크를 착용하세요."


아이고 어쩐지 얼굴이 시원하더라니...

가방에 둔 예비 마스크는 어제 써버렸는데...


결국 회의에 늦었다.


나는 매일 이렇게 한 움큼씩 늙어 가고 있다.

아직 치매는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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