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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급 인생 Feb 27. 2022

살찌려고 운동했다.

운동은 목적과 동기가 단순해야 한다.

내가 운동을 맘먹고 해온  적어도 20년은 되었다. 해외여행이나 출장 가는 기간을 제외하면 일주일에 최소한 삼사일 지금까지 했으니 꽤 꾸준히 한 셈이다. 애당초 운동과는 담을 쌓고 살기에 기가 생기는 데는 곡절이 있다.


고등학교 때부터 객지 생활을 하다 보니 삼시세끼 식사를 제때 지 못했다. 그나마 하숙할 때는 맘만 먹으면 꼬박꼬박 챙겨 먹을 수 있었으나, 늦잠을 자느라 게을러서 혹은 친구들과 어울리느라 대충 때우다 보니 제대로 식사를 하지 못한 날이 허다했다. 그 영향으로 20대와 30대 초반 내 모습은 바람 빠진 풍선처럼 마르고 헐렁행색이었다.




부모님의 고혈 같은 하숙비만 허비한다는 불편한 마음이 들 생활비를 아낀답시고 대학 3학년 부터 자취를 감행하였 그내 몸을 허약하게 만든 결정적 요인이다. 한 끼라도  먹는 게 절약의 첫걸음라는 신념으로 '아점'과 저녁 식사의 두 끼로 하루하루를 견뎠다. 인류의 진화과정통해 삼시 세 끼에 맞춰져 있던 위장이 무사할 리 없었다. 게다가 라면이나 간식거리식사 대용으로 때우던 날도 드물지 않았다. 그 생활이 몇 해 지날 무렵, 가끔 속이 쓰린다 싶더니 점점 살이 빠지고 기운이 없어졌다. 겔포스 같은 간편한 위장약을 임시방편으로 쓰라림을 달랬을 뿐 동네 내과  한번 찾아보질 않았다. 그러다 말겠지 하는 무지와 과신이 향후 10여 년간 나를 괴롭힐 줄 몰랐다. 그나마 몸이 당시엔 그 정도 이상 현상은 자연적으로 치유해줄 수 있다고 믿었던 게 잘못이었다. 그게 점점 누적되어 내 소화기관을 갉아먹고 점차 육신 전체를 망가뜨다.


대학 졸업 후 직장생활을 하면세끼 다 찾아 먹는 날이 늘어났으나 잦은 회식과 두서없는 생활이 문제였다. 알코올이 한 방울이라도 몸에 들어가면 온몸이 벌겋게 반응 체질에다 이미 부실해진 몸 상태여서, 당시 사회  음주문화는 내 몸을  더욱 기진맥진하게 만들었다. 기관 망가질 대로 망가져 갔다. 아무리 영양가 높은 음식물을 섭취하더라도 망가진 위장이 제대로 흡수해 낼 리 없었다. 몸은 자코메티의 조각 작품처럼 더욱더 야위어갔고 늘 과소체중 상태였다. 샤워를 할 때마다 거울에 비친 내 몸은 아우슈비츠에 수용된 유대인이 연상될 정도였다. 얼굴은 볼살이 없어 움푹 들어갔으며 속 쓰림으로 신경이 날카로워져 늘 찌푸린 표정이었다. 어깨는 가냘프 가슴은 새가슴처럼 편편다. 몸통은 빨래판 마냥 갈빗대를 셀 수 있을 만큼 마디마디가 선명했다. 사지는 새다리처럼 가늘 힘이 없어 걸을 때마다 휘청거렸다. 날씬한 여자 사이즈 밖에 되지 않는 허리 때문에 바지를 사 입어도 헐거워서 매번 줄여 입어야 했다. 게다가 엉덩이 살이 거의 없어 바지는 축 쳐다. 아무리 맘에 드는 옷을 골라도 후줄근해서 폼이 나질 않았다. 그래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그게 창백한 지식인의 스타일이라 자위하며 살았다.


아내를 만나 결혼하고 신혼여행을 떠났을 때에비로소 내 몸이 성치 않은 상태라 심각하게 느꼈다. 신혼 첫날부터 간헐적으로 배가 끊어질 듯 쓰리더니 돌아오는 날까지 잊을만하면 고통이 찾아들었다. 나 혼자였다면 그러다 말겠지 하고 넘겼을 텐데 예사롭지 않게 지켜보던 아내가 있어서 다행이었다. 제대로 된 검진부터 하자며 채근했다. 주변에 수소문해 회사 근처 용하다는 내과의원을 찾았다. 나는 그때까지 내시경 검사라는 게 있는  몰랐다. 웩웩거리느라 정신이 없었던 검사 결과, 위 내부에 출 흔적이 있다고 했다. 위궤양으로 진척될 가망이 높다고 했다. 몇 달간 처방한 약을 먹었더니 사정 좀 나아졌다. 하지만 다시 방심했다. 을 먹는 둥 마는 둥 소홀히 했다. 심한 속 쓰 가끔 찾아오는가 싶더니 급기야 위경련오는 바람에 대학 병원 응급실 실려갔다. 위장병과 지루한 싸움이 본격화되었다. 오랫동안 담당의사가 처방한 다양한 위장약 복용과 함께 식이요법도 병행되었다. 거기다 체력이 약하니 꾸준한 운동 권했다. 그 무렵 아침저녁으로 줄넘기도 하고 동네 주변을 한 바퀴씩 돈 것이 내가 운동을 시작한 발단이었다.




명절 때나 집안 일로 부모님을 뵈러 가면 늘 걱정이 많으셨다. 객지 생활을 시켜 아들의 몸을 '버려놨다' 당신 자신들을 몹시 책망하셨다. 없는 살림에 개소주며, 흑염소 진액이며, 붕어액 등 비위에 맞지 않는 온갖 보양식들을 보내주셨. 하지만 고장 난 위와 장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상태여서 만사가 허사였다. 속병이 있으니 먹는 대로 설만할 뿐 제대로 흡수가 안돼 피와 살 만들지 못했다. 그 당시 나는 무엇보다 살이 찌고 싶었다. 더도 덜도 말고 체중을 5Kg만 늘리고 싶었다. 하지만 뭘 해도 듣질 않으니 의욕마저 차츰 잃었다. 누군가 살 좀 붙이려면 육체미 해보라고 했다. 웨이트 트레이닝을 그땐 체미라고 했다. 나는 믿어지지 않았다. 육체미는 덩치도 크고 어느 정도 력이 있는 사람이 하는 줄 알았다. 나는 가벼운 역기나 을 들만한 기운조차 없었기에 그 말을 흘려 들었다. 그러다 어느 날 회사 체력단련실에 우연히 가게 되었다. 업무시간이라 사적인 통화를 하실을 왔다 무의식 중에 들어간 곳이었다. 아무도 없는 그곳에서 역기나 령뿐만 아니라 다양한 운동기구가 눈에 들어왔다. 재미있는 놀이도구처럼 보였다. 어떻게 사용하는지도 모르면서 이 기구 저 기구를 당겨보고 밀어 보다. 이후 업무 중에 잠시 쉬고 싶을 땐 아무도 없는 불 꺼진 체력단련실로 갔다. 기구들을 어떻게 다루는지 궁금했다. 인터넷을 검색하니 수많은 운동요령과 동영상을 볼 수 있었다. 잘 짜인 운동 프로그램도 많았다. 제대로 한번 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가슴, 다리, 팔 등의 근육을 자극하는 간단한 운동부터 따라 해 보았다. 차츰 일과 후 그곳 출입이 잦다 보니 어느새 습관이 되었다. 웨이트 트레이닝에 관한 책도 몇 권 서 읽었다. 운동만 한다고 되는 게 아니란 걸 알았다. 기본 영양이 부족함을 깨닫고 보충제를 구입해 먹었다. 피트니스 센터에 등록하고 몇 달간 동작 요령과 체력 관리 등을 배웠다. 내게 맞는 운동 프로그램과 운동 방식을 찾아보았다.


 삼시 세 끼를 약 먹듯이 꼬박꼬박 챙겨 먹고 규칙적인 생활을 하니 망가졌던 몸이 차츰 재생되는 듯했다. 장기간의 약물 치료로 병든 소화기관도 점차 치유되어갔다. 운동을 꾸준히 하니 내 몸은 필요한 에너지 보하기 위해 영양분을 듬뿍 받아들였다. 제대로 운동한지 몇 개월 후부터는 세끼 식사만으론 운동에 소요되는 에너지 공급이 충분치 않아 보충제를 지속적으로 구입해 먹었다. 나는 근육성장뿐만 아니라 기초 체력을 만들어야 했다. 단백질뿐만 아니라 탄수화물도 많이 필요한 몸이었다. 규칙적인 운동과 더불어 균형 잡힌 에너지 공급 덕분에 날이 갈수록 몸에 변화가 나타났다. 무엇보다 체중이 늘기 시작했다. 체지방이 거의 없던 마른 몸 력운동으로 육질 체형으로 변해갔다. 운동 후 샤워 때마다 거울에 비친 내 몸 여기저기에 아기자기한 근육의 그림자가 비쳤다. 흐뭇했다. 운동으로 인한 기분 좋은 피로감은 밤마다 숙면을 가져다주었다. 몸은 날로 튼튼해졌다. 그럴수록 더욱더 운동에 빠져 들었다. 더러는 지나친 운동 중독이 아닐까 아내가 걱정을 할 정도다.




지금 생각해보니 내가 운동을 하는 목적이 나이를 먹으면서 변해갔다. 누가 '당신은 왜 운동을 하는가'라고 물으면 삶의 단계마다 대답이 달랐다. 사실 내가 운동을 꾸준히 열성적으로 하게 만든 동기나 목적이 대단한 것 아니었다.


30대 중반까지만 해도 몸이 허약하고 말라서 제발 Kg이라도 살이 찌고 싶었다. 사람들은 살을 빼기 위 운동 하는 게 보통이다. 요즘처럼 풍족한 시대에는 지나친 영양섭취 래하는 과체중이 문제이다. 오죽하면 의학계에서는 이미 비만을 질병으로 분류하고 있겠나. TV 건강 프로그램도 다이어트 요령 일색으로 구성돼 있다. 그러니 살을 찌고 싶어 하는 사람도 많다는 걸 이해하지 다. 마른 사람이 살을 찌고 싶은 심정은 비만인 사람이 살을 빼고 싶은 심정 못지않다. 그러나 살을 빼는 정보는 도처에 풍부하나 살을 찌는 정보는 거의 없다. 가급적 많이 먹고 에너지를 소비하지 않도록 활동량을 줄이는 게 살을 찌는 첩경으로 안다. 근력운동이 살을 찌게 하는 신체 활동이란 걸 진작에 알았다면 나는 더 일찍 시작했을지 모른다. 엄밀히 말하면 근력운동이라는 것이 살을 찌우기 위한 활동은 아니다. 신체활동을 꾸준하다 보면 그 사람의 신 에 맞는 체격으로 적정하게 정해주는 역할을 한다고 봐야 한다. 물론 단백질과 탄수화물 등 그에 필요한 영양소가 균형 있게 공급되어야 가능하다. 충분한 휴식을 포함한 짜임새 있는 운동 프로그램도 마련하고 실천해야 한다. 과소 체중인 몸은 더 불려주만한 몸은 다이어트해주는 것이 운동작동원리라고 믿는다. 그게 오랜 세월 동안 진화해온 인체의 비밀라고 나는 확신한다.




40대가 되 체중이 적정 수준에 달한 것은 물론이고 나를 자주 보던 이들로부터 내 몸이 보기 좋게 변했다는 말을 듣곤 했다. 누군가는 옷빨이 잘 받는다고도 했다. 과하게 칭찬하기 좋아하는 사람들 몸짱이란 말도 다. 심지어 아내는 운동 후 샤워를 하고 나오는 내 알몸을 보고서 '속옷광고 모델(?)'로 나가보는 게 어떠냐고 좋아라 했다. 기성복을 사입을 때마다 상의는 어깨가 축 처지거나 품이 맞지 않았고, 하의는 엉덩이가 축 처져 보이고 허리는 헐렁해서 볼품이 없었던 내 몸이었다. 언제부턴가 옷을 사 입으면 몸에 착 달라 붙는 듯한 느낌과 함께 거울에 비친 내 모습 제법 맵씨가 있어 보였다. 자연스레 내 운동의 목적도 바뀌었다. '제발 살 좀 쪄보자'에서 '맘에 드는 옷을 맘껏 사 입기'위해서 그 상태 그대로 체형을 유지하자 바뀌었다. 균형 잡힌 체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더욱 열심히, 꾸준히 운동하였다. 심지어 운동 중독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일일에 하루정도 쉬고 거의 매일 운동을 한 시기도 있었다.


40대 후반이 되면서 급격한 체중변화는 없었지만 조금씩  불어났다. 중년이 되면서 나잇살이 붙듯싶었다. 아랫배가 슬그머니 나오고, 앉을 때마다 허릿살이 도톰하게 접혔다. 몸의 노쇠화 신진대사가 느려져 운동을 열심히 하더라도 제지하기 어려운 자연현상이었다. 제발 살이 좀 찌고 싶었던 나는 이제 체중관리를 해야 할 처지가 되었다.  근력운동만 하던 내 몸은 유산소 운동 필요한 단계가 되었다. 근육성장을 위해 즐겨먹던 고칼로리 위주의 식단 바꾸지 않을 수 없었다. 먹고 싶은 것을 맘대로 못 먹으니 그것 자체가 스트레스였다. 맘껏 먹어도 보기 좋은 체형을 유지할 수 있도록 운동 프로그램을 바꾸어야 했다. 빨리 걷기 등 유산소 운동의 비중을 늘리고 근력운동은 줄였다. 그리고 지나친 육식은 줄이고 인스턴트식품은 가급적 먹지 않았다. 그 와중에  먹고 싶은 요리는 스트레스받지 않고 가끔 먹기로 다. 먹더라도 운동을 통해 원상회복이 가능하리라 자신했기 때문이다. 이미 운동으로 고칼로리 음식의 분해에 익숙해진 내 몸 과하 않다면 무리 없이 해소리라 믿었다. 먹고 싶은 것은 먹되 먹은 만큼 운동 에너지로 철저히 소비하겠다는 원칙을 세웠다. 하지만 노쇠의 속도를 늦출 순 있지만 멈출 순 없다.   




50대 중반이 되니 몸과 기력 변화가 두드러졌다. 늘 해오던 운동기구의  무게와 시행 횟수를 감당하지 못하는 날이 이어졌다. 운동 후 기분 좋던 피로감이 어느 날부턴가 막노동을 한 듯 고단하고 여기저기 쑤시기까지 했다. 처음엔 부정했지만 여러 날 지속되니 내 노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동안 유지했던 '이틀 운동 하루 휴식'의 패턴을 고수하기 어렵다는 판단이 들었다. '하루 운동 하루 휴식'을 기본으로 변경했다. 게다가 여기저기 전에 없던 신체 이상이 나타났다. 건강검진 결과 특히 고지혈증이 의심된다는 소견이 매년 나왔다. 고칼로리 음식을 가급적 피해왔는데도 그런 걸 보니 체질적인 현상인 듯했다. 어머니가 고혈압 증세로 고생하시고 형님도 당뇨병에 시달린 적 있었기에 가족력이 분명했다. 게다가 최근 건강검진에서는 위장, 전립선, 눈, 코,  등 모든 진료 분야에서 조금씩 탈이 있다는 소견을 제시했다. 심각하게 병이 난 것은 아니지만 신경이 쓰였다. 하지만 자연이 내게 부여한 생명현상의 한 과정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지난날 젊음으로 버텨주었던 치유능력이 노화가 찾아와 열심히 운동을 하더라도 극복하지 못하는 나이가 되었다. 운동은 이제 몸의 급격한 쇠잔을 막기 위한 최후의 수단이 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몇 해 전부터 먹기 시작한 영양제가 어느새 네댓 가지나 되었다. 여기저기 부실해져 가는 몸을 방치해두다가는 병으로 이어질 수 있는 나이기에 하나둘 보태다 보니 늘어났다. 느려진 대사작용을 돕기 위해 최소한의 양제먹어야 한다는 판단이 들었다. 하지만 기초 토대가 받쳐주지 못한다면 다 부질없는 짓이다. 운동은 이제 내게 쇠락해질 신체 변화의 속도를 늦추기 위한 최소한의 몸부림이다. 살을 찌거나 체형 유지, 또는 마음껏 먹기 위해서가 아니라 늙어가는 몸을 건사하기 위 필수적인 생명활동이 되었다. 




의학이 발달해 수명이 길어졌다지만 병약한 몸으로 오래 살고 싶진 않다. 무조건 장수한다고 축복받을 일은 아니다. 잦은 병치레로 고통스러운 삶을 이어간다면 오히려 하루하루가 저주이다. 장수하고 있지만 지병으로 자신이 괴로울 뿐만 아니라 가족들을 고생시키는 사람을 자주 본다. 나 그러지 않으리란 장담을 못한다. 하지만 그걸 최소화기 위한 노력은 필요하다. 한 살이라도 젊을 때 기초체력을 다져놓아야 한다. 꾸준히 운동하기가 쉽지 않다고들 한다. 운동을 하는데 너무 거창한 목적이나 동기를 부여해서 그런 것 아닐까 싶다. 뭐라고 우선 해보자. 그러다 보면 습관이 된다. 지금 당장 밖으로 나가 동네를 어슬렁거리며 햇볕이라도 몸에 쬐어 보자. 비타민D를 공짜로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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