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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대생 Aug 26. 2016

Season2, Pingpong and... Hell

지옥... 죽.. 여줘

덥다. 정말 갑자기 런던의 여름이 기승을 부리기 시작했다. 아니 무슨... 이제껏 쌀쌀하다가 여름 끝무리에 갑자기 폭염이 찾아오는건 무슨 경우지.. 덕분에 요즘 땀을 뻘뻘 흘리면서 지내는 중이다. 한국에 있었다면 집에서 선풍기를 틀거나, 은행으로 도망쳐 숨는다거나, 도서관에 들어가서 겨울잠이라도 잘텐데.. 뭐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씹는다고 학원에서 공부하거나, 카페에 숨어든다. 뭐 이렇게 생각하면 그렇게 나쁘지 않은 여름이지만 문제가 있다. 바로 대중교통인데, 아실지는 모르겠지만 튜브나 버스에서 에어컨을 틀지 않는다. 특히 튜브에는 아예 에어컨 자체가 안달려있는 것 같다. 찌는 듯한 더위에 에어컨이 없는 출근길의 튜브, 직접 보지 않더라도 찜통일 것이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거기에 더해서 서양인들의 지독한 냄새는 정말 숨조차 쉴 수 없게 만들어준다. 운없이 지독한 암내를 풍기는 사람이 바로 내 앞에서 손잡이라도 잡고 있다면 화생방의 시작이다. 튜브에서 참은 숨을 겨우 토해내고 나오면 버스가 기다리고 있다. 버스는.. 이것도 답이 없기는 마찬가지인게 버스의 엔진열과 가득찬 사람들이 토해내는 이산화탄소의 온난효과는 고작 몇 센치미터만 열 수 있는 환기 창문으로는 도저히 식힐 수가 없었다. 이 모든 여정을 끝내고나면 학원에 도착하기도 전에 땀에 흠뻑 젖어있다. 누가 보면 집에서 학원까지 뛰어온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숨을 헐떡이고 있다.


아무튼 한국만큼 더운 온도는 아니지만 런던 특유의 시스템 덕분에 죽을 맛이다. 끔찍한 여름을 보내는 중 반 친구가 탁구를 치러가자고 꼬드겼다. 탁구 라켓도 업고 공도 없어서 거절하려고 했다. 그런데 학원 근처에 공공 탁구대에 탁구체까지 준비되어있는 곳이 있다고 하는 것이 아닌가. 속으로 이게 무슨 횡재인가 싶었다. 탁구를 잘 치지는 못하지만 베드미턴, 테니스 등 공을 네트로 넘기는 운동을 좋아해서 한국에 있을 때 친구들과 시험이 끝나고 치러가기도 했었다.


그래서 오늘은 지옥같은 여름에 탁구치는 이야기.


탁구장은, 아니 탁구장이라기보단 킹스크로스 역 근처에 있는 모 대학안에 설치되어있는 탁구대들이였다. 킹스크로스 역 뒤로는 한번도 걸어가본적이 없어서 이런 곳이 있었는지도 몰랐는데 분수대가 설치되어있어서 아이들과 부모들이 놀러나와 물놀이를 즐기고 있었고 그 바로 앞에는 작은 시냇물이 흐르고 있는데 강 사이드가 잔디로 되어있어서 사람들이 소풍을 나와서 여름을 즐기고 있었다. 생각해보면 지금 이 여름이 런던에서 마지하는 마지막 뜨거운 햇살일텐데 나중에 후회하지 않게 조금은 즐겨야하지 않을까...

아무튼 광장에 있는 커다란 건물에 들어가면 총 4개의 탁구대가 있다. 이미 전부 사람들이 차지해서 사용하고 있었다. 어르신들이 웃통을 벗고 나이도 잊어버리고 이리저리 뛰면서 열심히 랠리를 하고 있었고 아들과 아빠가 정겹게 랠리를 이어나가고 있는 테이블도 있었다. 놀랐던건 꼬맹이가 탁구를 엄청 잘쳤다는것. 그리고 평일 3시임에도 아들과 놀아주는 아빠의 모습이였다. 당장 게임을 하지는 못했지만 신기한 광경이였다.

우리나라도 공공 체육시설이 없는건 아니지만 그 시설이 잘 관리되고 있다고 하기는 어렵다. 네트같은 경우는 찾아보기 힘든 경우도 많고 탁구대는 기울고 녹슬어 삐걱거리기 일수다. 그런데 여기는 애초에 그런걸 방지하려는 듯 네트가 철판으로 되어있었고 탁구대는 접이식이아니라 그냥 쇠덩어리였다. 거기다 제일 놀랐던게 공용 탁구체가 4개씩이나 있다는 점이다. 심지어 탁구체를 꽂는 곳이 4군데인데 우리가 치는 테이블에는 라켓이 5개나 있었다. 이게 무슨.. 없어졌으면 없어졌지 하나가 더 있을 줄이야.. 이런 사소한 부분에서 시민의식의 수준을 느낄 수 있었다.


 친구와 탁구를 거의 2시간 가량 쳤는데 힘들어 죽는 줄 알았다. 말했다시피 탁구를 잘치지 못해서 공 주으러다니랴, 친구가 좌우로 보내는 공 따라다니랴 지금 타이핑을 치면서도 등 근육이 땡긴다. 근육통이 완전히 가시지 않은 이유도 있지만 이런 역동적인 운동이 너무 오랜만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21점 10세트 가까이 하면서 겨우 3세트 따고(이것도 마지막에 둘다 지쳤을 때 실수가 연발하고 운이 겹치면서 겨우이긴거..) 둘다 지쳐 주저앉았다. 오랜만에 흘리는 기분좋은 땀이라 좋기는 했는데 막상 집에 돌아가려고하니 막막했다. 운동할 계획이 없이 학원에 가서 바지가 청바지였다. 청바지를 입은체로 운동을 하니 바지 안이 땀 범벅이였다. 그 찝찝함에 빨리 집에 가야지하고 밖으로 나오는데.. 절로 욕이 나올 뻔했다. 시간이 6시였지만 해는 전혀 질 생각도 하지 않고 뜨거움을 과시했고 한낱 인간인 난... 몸이 녹아내리는 듯한 고통을 버티며 버스정류장까지 비틀거리며 걸어갔다.


10분 정도 버스를 기다렸을까. 저 멀리서 보이는 214번 버스에는 사람이 가득했다. 고민했다. 과연 저 버스를 타는게 최선인가. 하지만 고개를 들면 구름 한점없이 쨍쨍한 하늘이 보이고 그늘 한점없는 버스정류장을 보고있자니 그냥 타자라는 선택을 하고 말았다. 일이 꼬이기 시작하면 끝까지 꼬인다고 했던가. 이 버스가 꼬임의 시작이였다. 다시 생각하니 눈물이 나올 것 같지만.. 아무튼 버스를 타고 난 뒤에 더위를 애써 무시하고자 노래에 심취해서 눈을감고 서있었다. 사방으로 둘러싼 사람들의 열기와 창밖에서 쏟아져들어오는 햇살의 뜨거움에 땀은 비오듯이 흘렀으나 소리없이 노래를 중얼거리며 버텼다. 그렇게 몇곡의 노래가 지나고 이제쯤 도착했겠지 하고 눈을 떳는데 버스가 멈춰서서 움직이지를 않고 있다. 특별한 일도 아니고 그냥 신경 쓰지 않고 있었는데 뒤에서 널널한 214번이 지나가는데도 버스가 움직이지를 않았다. 뭐지 하는 생각이 드는 순간 이어폰을 뚫고 항의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알고보니 이번 정류장에서 버스기사가 바뀌는데 그 기사가 제 시간에 안 온 것 이다. 그래서 버스는 출발도 못하고 자리에 찜기가 되어가고 있었다. 뒤에서 214번 버스가 한대 더 지나가는 것을 신호로 모두 버스에서 도망치듯이 내렸다. 그리고 다시 10분을 더 기다려 다음 버스를 탔는데 버스 한대분량의 사람이 더 타버리니 진짜 콩나물바구니 처럼 되어버렸다. 그것도 찜기 위에 올려진..


튜브역에 도착했을 때엔 온몸의 물이 다 빠져나가 심각한 갈증이 찾아왔다. 그 때 내가 무슨 생각으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마실 것을 일절 사지 않고 튜브역으로 들어갔다. 아마 집에 갈 때 까지 버틸 수 있을 것이라고.. 안이하게 생각했을지도... 버스타느라 시간을 헛되이 보내 퇴근시간이 다가왔다. 덕분에 튜브역은 인산인해였고 이리처이고 저리치이다 저 앞에서 멈춰있는 튜브를 멀뚱멀뚱히 보면서 보내버렸다. 뭐 금방오겠지 하고 느긋이 걸어갔는데 전광판에 보이는 No Service... 몇개의 튜브가 멈추지 않고 지나간단다... 그래서 다음 튜브가 12분 뒤.. 아니 무슨... 참고로 말하지만 튜브역이 절대 시원한 공간이 아니다. 텁텁한 바람이 일기는 일지만.. 태양폭풍이 몰아치더라도 시원해질리가 있겠는가.. 목은 더 말라가고 얼굴에서는 기름이 뿜어져나오고 몸에서는 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지구 온난화를 직접 몸으로 체험하는 기분이였다. 아.. 지구가 이렇게 아팠구나.. 것도 모르고 공대공대거리고 있었다니... 난 참 못쓸놈이였구나..


회개의 시간이 시작되었다. 12분간 아니 체감상으론 12시간정도 되었던 것 같다. 다행히 쓰러지기 전에 튜브가 도착은 했지만.. 승객을 배불리 먹어치워 배가 빵빵해진 철마는 소화시키느라 열을 풍풍 뿜어내고 있었다. 과연. 내가 저걸 탈 수 있을까라는 고민도 잠시 올라타는 인파에 휩쓸려 지옥이 시작되었다.


내 기억은 여기까지다. 어떻게 집에 도착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저 서있고 걷고 문을 열었는데 집이였다. 정신을 차렸을 때엔 생수를 벌컥이며 들이키고 있었다.


런던에서의 여름을 제대로 경험해본 하루 였다.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은..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인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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