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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대생 Dec 22. 2015

#17 회고록

2015년 끝자락 학창시절을 돌아보며

아웃사이더, 왕따, 은따, 따돌림 등 여러가지 단어로 표현되는 존재들은 10대 시절 뿐만아니라 대학교, 직장, 동호회 등 사람이 3이상 모인 곳이면 어느곳에서나 찾아볼 수 있다. 이쯤되면 아웃사이더는 집단에 없어서는 안되는 필수적인 존재로 느껴진다. 어느나라든 이러한 현상은 같지만 특히 한국은 정도가 조금 심하다. 워낙 집단을 잘 이루는 사회이다보니 그런것이겠지만 점점 단에서 도태된 사람은 실패한것이다라는 사회적 관념이 뿌리박힌것이 너무 슬프다.

집단은 필요한가?

난 내향적 성격이라 사람들과 만남에있어서 나를 잘 표현하지 않는다. 외향적 성격인 사람들과 달리 내향적인 사람은 혼자 스스로 자가 발전하는 스타일이다. 남들로 부터 에너지를 얻는 것이 아닌, 홀로 사색에 빠져 에너지를 얻는다. 그래서 나는 학창시절이 너무 귀찮고 힘든 나날이였다. 물론 마음에 맞는 친구들과는 이야기를 하며 친하게 지냈지만 굳이 스스로 발을 넓히려는 시도는 하지 않았다. 양보다는 질이라는 생각도 있었고, 어짜피 졸업하면 다 떨어져나갈 관계이기때문에 별로 신경쓰지 않았다. 어린놈이 벌써부터 비관적이라고 혀를 찰 수도 있지만, 여기에는 사정이 있다.

혼자가 뭐 어때서?

정확히 말하면 난 처음부텉 내향적인 사람은 아니였다. 정확히 중학교 2학년때까지만 해도 남들 앞에 나서는 것을 좋아했고 운동회며, 학예회며 각종 활동에는 다 참여하며 나를 알렸었다. 물론 공부도 눈에 띄기 위해 열심히 했고 어느정도 상위권에 머물러있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이런 내 모습이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고있는 같은 또래들에게는 아니꼽게 보였었던것같다. 중학교 3학년, 내 인생의, 가치관의 크나큰 전환점이였다. 이 당시에 왕따를 당했었는데, 슬프다기보다는 정말 색다른 기분이였다. 솔직히 왕따라는 말은 나랑은 다른세계의 이야기인줄 알았는데 어느순간 내가 그 왕따가 되어있었다. 물론 학교내에서는 아니였다. 학교내에서는 친한친구도 많았고 이렇다할게 없었지만 문제는 학원이였다.


중고등학교때 학원을 다녀본 사람은 알겠지만 그곳은 학교와 다른 또다른 사회다. 특히 내 학교만이 아닌 다른 학교의 학생들도 있었기 때문에 마치 학교를 재입학한 기분이였다. 어쨋든 내가 처음 학원을 들어갔을때 이미 그룹이 나뉘어져있었고, 아니, 표면적으로는 그룹이 하나밖에 없었다. 큰 그룹아래 그냥 이래저래 퍼져있는 형식이였다. 그런데 불행한 것은 그곳에서 공부에 힘쏟는 아이는 얼마 없었다는 것이다. 물론 잘하는 아이는 있었지만 성적향상보다는 노는 것에 더 중점을 두는 아이였고 그래서인지 학원 분위기 자체는 공부에 열정적인 분위기는 아니였다. 그런 와중에 성적 올리는 것에만 신경쓰는 내가 떡하니 들어가니, 나는 그 아이들에게는 이물질 정도로 취급되었던것같다.


1~2개월 정도 지났을까 그때부터 본격적인 따돌림이 시작되었다. 그 사실을 처음 깨달았을 때 정말 당황스러웠었다. 내가 무슨 잘못을 했는지 학원 수업시간 내내 고민했지만 아무리 기억을 되짚어봐도 그런 사실은 없었다. 계속 생각하다보니 수업시간에 열심히해서 선생님들께 칭찬을 많이 받았다라는 것 정도로 좁혀졌는데, 설마 그런 말도 안돼는 이유로 이러겠어라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알고보니 내생각이 맞았다. 그냥 그아이들에게는 내가 짜증났던 것이다. 그렇게 윤곽이 잡히니 우르르 몰려다니며 생각없이 나돌아다니는 그 모습이 너무 역겨웠지만, 한편으로는 흥미로웠다. 


나는 그 당시 학원사람들이랑 그렇게 친해질 생각도 없었고 신경도 잘 쓰지 않았기 때문에 신경끄고 있었지만 워낙 티나게 해대니 호기심이 생겼다. 어짜피 이런 학원이야 언제든지 그만두면 그만인 일이고 색다른 경험이라고 느껴지기도 했기때문이다. 언제 이렇게 마음 편하게 왕따라는 것을 겪어보겠는가. 이미 학교내에서 왕따가 어떤 취급을 당하는지는 봤기 때문에 대충은 알지만 직접 당해보는 것은 처음이기 때문이다. 너무 담담하다고 생각할수도 있지만, 정말 그랬다. 학원에서 시험기간에는 학생들을 주말에도 불러서 공부시켰었는데, 밥은 각자 알아서 먹었어야 했다. 그때 밥먹을때도 난 혼자였지만 오히려 그게 너무 편했다. 쓸데없는 말 섞을 필요도 없고, 굳이 남의 생각을, 눈치를 보며 말할필요도, 행동할 필요도 없었다. 어짜피 미움받고있으니 될되로 되란 식이였었다. 그러다보니 깨닫게 된것이다. 혼자라는 것이 얼마나 편하고, 쓸데없이 어정쩡하게 친해지려고 노력하는 것이 얼마나 무쓸모하고 힘든일인지를.


그뒤부터는 학원에서 정말 공부에 집중하기도 좋아졌고, 주위신경쓰지않고 하고싶었던데로 했던것같다. 하지만 그와 반대로 트라우마도 한가지 생겼는데, 지금이야 담담히 말하지만 그때는 친한친구를 잃을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두려움에 떨기도 했었다. 어짜피 친하지도 않은 사람들에게 미움받는 것은 상관없지만 이미 친한 친구들이 나로부터 멀어질수도 있다라는 생각이 들자 불안함이 찾아왔다. 그래서 그뒤부터 말하는 것, 행동하는 것에 있어서 친구들의 신경을 많이 쓰기 시작했던것같다. 그게 이어져 오다보니 지금의 내향적 성격으로 굳혀졌다. 주위 신경쓰지 않고 하고싶었던데로 해서 좋았다고 한지가 언젠데 내향적 성격이 되었느냐라고 할수도 있지만, 그건 나를 미워하는 사람들에게 한해서다. 그래서 아이러니하지만 내가 주위신경쓰지않고 내 스스로를 더 잘 표현할수있을때는 나를 싫어하는 사람들 앞에서이다.  분노로인한 자기 표출 같은 것이아닌, 기대를 하지 않는것. 이해하기 쉽게 예를들자면, 여자들의 헤어지는 마지막 과정과 비슷하다. 더 이상 신경도, 관심도, 더 잘보이려고하는 노력조차 하지않는 그런 상태다.

졸업은 불완전한 시작이자 불완전한 리셋

그렇게 중학교3학년을 졸업하고 들어간 고등학교에서 아이러니하게 학원에 있을때 날 따돌리던 아이와 같은 반이 되었다. 보통 같았으면 불안했을까? 하지만 난 그저 아무런 기분도 느낌도 들지 않았다. 단지 '같은반이네?' 이게 전부다. 재밌었던 것은 그쪽에서 먼저 친한적 다가왔던 것이다. 활짝 웃으며 반갑다며 인사하는 그 얼굴에서 순간 엄청난 메스꺼움이 속에서부터 올라왔지만 내색은 하지않고 그냥 무덤덤하게 넘겼다. 자신이 한 행동을 방학동안 까먹기라도 한건지, 아니면 처음부터 아무일도 아니라고 생각한건지는 잘모르겠지만 뻔뻔하다고 생각했다. 내가 반에서 중심인 아이들과 친해서였는지 바로 태도를 바꾸고 친한척 말을 걸어왔던 것 같다. 어짜피 마음속에 그렇게 크게 담아두지 않았기 때문에 그냥 이래저래 표면적으로 친한관계를 유지하고 있었지만, 옛버릇 남줄수 없다고 또 가만히 조용히 앉아있는 반아이를 따돌리기 시작한다. 정말 골때리는 친구다. 사실 왕따당한 아이는 중학교때 이미 왕따였던적이 있던 아이고 그게 고등학교때 까지 이어지게된것이다. 뭐 사실 때리고 그런 수준의 따돌림은 아니였지만 인신공격의 연속이였다.

똥싸개들이 똥을 싸는데 변기가 없다.

이렇게 말하면 나쁘게 들리겠지만 난 신경쓰지 않았다. 따돌림에 동참하지도 않았고, 그냥 평범히 따돌림당하는 아이를 대했다. 나도 뭐 장기간은 아니더라도 당해본적이 있었고, 쓸데 없는 동정을 줄바에야 평범히 대해주는것이 가장 좋다는 것을 알기때문이다. 동정은 일종의 저주다. 동정받을때는 관심받고있다, 누군가 나를 신경써주고 있다라는 생각에 순간은 기쁘지만 그뒤에 찾아오는 것은 나락보다 깊은 자기혐오다. 내가 그렇게까지 불쌍해보이나라는 생각부터 시작해서 이대로 살아야하나라는 생각까지 자신이 쌓아올린 가치관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버티고 있던 마음이 무너지는 것이다. 그래서 난 딱히 뭔가 신경을 쓰지도, 특별히 대하지도 않았다. 결국 고등학교 졸업하기 직전까지 따돌림은 이어져나갔다. 따돌림당하던 아이의 심리를 내가 이해할수는 없지만 요새들어 문득 궁금해졌다. 그 아이가 느꼈던 감정은 무엇이였을까? 무슨 생각을 했을까? 자신을 따돌리는 아이들에 대한 분노? 아니면 가만히 방관하는 아이들에대한 실망? 아니면 그냥 무관심의 일변도? 나 같은 경우는 무관심이였다. 나를 따돌리는 아이들이랑 어떻게해서든 친해져봤자 나를 따돌렸다라는 사실자체는 변하지 않고 결국 쏟아부은 노력에대한 보상을 받아도 찜찜한 마음에 다시 떨어져나올것이다. 그럴바에야 그냥 인생에서 제외해버리는 것이 낫다. 애 늙었다라고 생각 할수도 있지만 난 아직도 이것이 정답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친구해줄까?(짝)

학창시절 동안 누구보다 눈에 띄어도 보았고, 따돌림도 당해보고, 등수 올리기위해 열심히 공부도하고, 등수 신경쓰지 않고 마음껏 놀아도 봤고, 법을 넘기지 않는 선에서 할수있는 것은 다 해보았다. 연애 말고는 다 해봤는 꽉찬 학창시절이였다. 모두들 학창시절을 통해서 자신의 가치관을 쌓아왔을것이다. 누군가는 핑크빛 학창시절을, 또다른 누군가는 잿빛. 색깔이 어찌되었든 다들 무언가를 깨닫기도하고 후회하기도하고 그리워하기도한다. 하지만 후회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사회가 정답을 요구하는 세상이지만, 자신이 왕따를 당했든, 일진이였든, 우등생이였든 옳고 그름은 없다. 왕따는 왕따만의, 일진은 일진만의, 우등생은 우등생만의 철학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을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며 스스로 까내리지는 말았으면 좋겠다. 그 어떤 삶이라도 속에서는 배울 점이있다. 내가 왕따를 당하고 혼자의 즐거움, 집단의 우매함을 깨달은 것과, 공부를 버리고 친구들과 놀면서 학창시절 책상에서 청춘을 보내는 것이아닌 뛰어놀며 즐기는 것의 소중함. 자신이 깨닫지 못했을 뿐, 나쁜 기억이라고 오해받는 기억속에서 우린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 이렇게 하지 말아야지라는 부정적인 생각만 하지말고 말이다.

 

뭐 그렇다고 네거티브가 꼭 나쁜것만은 아니다.

사실 처음에 왕따에대해서 쓸 생각이였으나 과거를 회상하며 쓰다보니 나도 모르게 회고록이 되어버렸다. 쓰다보니 정말 지금의 내가 있기 까지 어떤 과정이 있었는지 되새기며, 나를 다시 정립할수있는 소중한 시간이 되었다. 이래서 자서전을 쓰는가 싶다. 나중에 커서 스스로 자서전을 써보면 지금과 또 다른 생각으로 과거를 회상하겠지만, 그것 조차 성장이며, 성숙해졌다는 증거다. 10년, 20년후 내가 쓴 글을 되돌아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을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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