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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평리이평온 Mar 02. 2024

코닥 모먼트(Kodak Moment)

큰아이를 떠나보내며

[Kodak Moment]란 말이 있다. 

사진으로 남기고 싶은, 오랫동안 간직하고 싶은 최고의 순간을 뜻하는데, 코닥이라는 필름 브랜드를 안다면 쉽게 짐작할 수 있는 표현이다.


제주 섬에 입도한 후, 때때로 우리 가족은 기념사진을 찍었다. 

예쁜 배경이나 특별한 포즈를 취하지 않고도, 게다가 별다른 보정도 거치지 않은, 그저 그때의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던 이 사진들을 훗날 들춰보면 잔잔한 울림이 되어 우리 가족의 마음에 여울지곤 했다. 


제주에 입도를 한 날 처음 찍은 사진이 그랬고, 제주에 세 든 집 마당에서 찍은 사진이 그렇다. 

그리고 아이들 생일 같은 특별한 날에 나란히 앉아 찍은 사진들을 살펴보다 보면 우리 가족의 자람과 우리 가족이 헤쳐 지나온 세월의 흐름이 사진 곳곳에 남아 있어서 볼 때마다 새삼 울컥하는 마음이 들었다.


며칠 후면 큰아이가 대학 생활을 하기 위해 서울로 떠난다. 

20년을 품 안에서 꼭 끼고 키우던 아이를 세상 밖에 내놓는다는 것은, 품을 떠나는 아이도, 떠나보내는 부모에게도 큰 도전으로 다가온다. 

‘이제 다 컸네’ 하는 대견함과 ‘잘하겠지’ 하는 응원의 마음속에서도 허전하고 아린 마음 역시 드는 것은 내가 바로 아비이기 때문일까?


아이를 떠나보내기 전에 기념사진을 찍기로 했다. 

예전 성산읍사무소에서 전입신고를 한 후, 처음으로 찍었던 읍사무소의 정문에서, 9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뒤 우리는 다시 삼각대에 카메라를 올렸다. 

올망졸망했던 아이들은 자라 이제 엄마의 키를 훌쩍 뛰어넘은 청년과 소년들이 되어 있었고, 우리 부부는 세월의 먼지를 한 아름 뒤집어썼지만, 그래도 좋았다. 

오늘이 우리 가족에겐 '코닥 모멘트'이기 때문이다. 


큰아이에게 잘 자라주어서, 고된 고등학교의 시간을 잘 견뎌 주어서 고맙다는 말을 해주고 싶다. 

그리고 이제 너의 ‘화양연화’의 시기가 올 것이라고, 그것을 즐기라고, 청춘을 불사르라고 이야기 해주고 싶다. 

네가 맛볼 수 있는 젊음의 행복이 있다면, 아빠는 아빠가 견디어야 할 노동의 수고를 기꺼이 짊어지겠노라고 어깨를 감싸 안으며 속삭여 주고 싶다.

시간은 끊임없이 흐르겠고, 실제로든 비유로든 우린 언젠가 같은 자리에 돌아와 앉게 될 것이다. 

그때 우리가 지나온 시간의 마디마디들이 기쁜 추억으로 저마다의 마음에 옹이져 있기를 기대한다. 


언제 우리는 이곳 성산읍사무소 정문에 다시 사진기를 삼각대에 올리고 포즈를 취하게 될까? 

다시 이 자리에 설 때, 우리는 어떤 모습이 되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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