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 세비야 여행기 - 대성당, 스페인광장, 플라멩고 공연
[여행 10일차]
아침 일찍 일어난 아내가 세비야 여행 정보룰 보았는지, 관광지와 식당 몇 군데를 가자고 제안을 한다.
반가웠다. 세비야는 별 준비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날이 맑게 개었기에 세비야 도시 중심부를 걸어서 이동한다.
먼저 커피와 크로와상을 먹기로 한다.
구글맵을 켜고 걷는데, 걷다보니 어제 저녁을 먹은 대성당 근처였다.
미로같은 옛 건물 거리에서 방황하다가 작게 문을 연 카페를 찾았다.
종이컵에 내려주는 커피는 내가 생각하는 유럽에서의 카페라떼 한 잔과는 달랐지만 그래도 맛있게 먹었다.
대성당을 구경하기로 한다. 엄청나게 큰, 사그라다 파밀리아와는 다른 중세풍의 성당은 첨탑이 뾰족하게 솟았다.
주위를 한바퀴 돌면서 감탄했다.
문을 여는 시간이 11시.
온라인 예매를 하려다가 현장 구매가 더 편할 것 같아 티켓 박스 앞에 줄을 섰는데, 잘한 일이다.
더 빠르게 그리고 더 저렴하게 입장한다.
성당에 들어선 첫 느낌은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의 느낌과 비슷했다.
압도되는 느낌.
거대한 기둥을 저리 예쁘게 다듬어 쌓아 올렸을까? 벽을 장식한 많은 성화들과 예수 그리스도, 성모 마리아, 성인들의 부조를 어떻게 장식해 붙였을까? 하는 경외심.
오래된 건물이 주는 차분함.
이스탄불 블루 모스크에서 느꼈던 영감이 떠오르는 공간감 같은 것.
하지만 심플한 교회 이미지에 익숙한 이 공간에서 왜 종교 개혁이 일어났는지 알 수 있을 것 같기도 했다.
관람을 마치고 종탑을 올라간다.
계단이 아닌 경사로를 따라 아마 31층까지 걸어갔다.
철망으로 가로 막혀 뻥 뚫린 뷰를 볼 수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높은 건물이 없어 사방으로 시원하게 펼쳐진 세비야의 풍경을 볼 수 있어 좋았다.
세비야의 가로수는 오렌지 나무다.
오렌지가 주황빛으로 탐스럽게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어제 밤 바람에 후두둑 떨어진 오렌지들이 가로수 아래에 점점이 떨어져 있었다.
구글맵을 보며 걸어서 스페인 광장에 간다.
별 기대를 갖지 않았는데, 광장 건물에 들어서는 순간 저절로 탄성이 나왔다.
동그란 호를 그린 건물의 회랑에는 햇빛이 들었고 내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던 유럽의 풍경이 펼쳐진 것이었다.
카메라를 들고 셔터를 누르는데 정신이 없었다.
중앙 광장으로 내려섰다.
가장자리로 빙 둘러 만든 인공 호수에서 보트를 타는 관광객. 마차를 타고 광장을 도는 관광객, 프로포즈를 하는 연인, 인생사진을 남기는 젊은 여인들, 웨딩사진을 찍는 커플 등 모두가 제모양 각각으로 스페인 광장에서의 한 낮을 즐기고 있었다. 맑았다가 소나기가 쏟아지는 스페인 광장은 이번 여행에서 최고의 관광지로 내게 남았다.
오후 2시.
늦은 점심을 먹으로 간다.
한국인들에게는 늦은 셈이지만 스페인에서는 보통 오후 2시부터 4시까지 점심을 먹는다고 한다.
맛있다고 소문난 한식집 문식당에 갔는데, 예약이 꽉 차서 식사를 할 수 없다고 했다.
비도 오고 아쉬운 마음에 입구에서 서성이는데, 우리처럼 발길을 돌리는 한국인들을 보자니, 다른 식당을 찾는게 상책이었다.
벌써 만보이상을 걸어서 다리는 아파왔다.
근처 타파스 바를 찾아 들어간다.
다행히 타파스와 음료는 입맛에 맞았고 바에서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비가 왔기에 야외 구경은 할 수 없어 자라 쇼핑몰에 간다.
택시를 타고 자라 매장에 왔는데, 세비야 FC 스타디움 바로 앞에 있다.
아내와 결이는 자라 매장을 구경하는 사이, 나는 준이와 함께 세비야 스타디움을 밖에서 구경하고 스토어에서 굿즈도 구경했다.
스타벅스에서 커피 한 잔 하면서 거센 빗방울이 떨어지는 세비야의 늦은 오후를 보냈다.
아내와 결이는 다행히도 자라 매장에서 옷을 한 벌씩 구입했다.
비가 흩뿌리고 있었지만 걸어서 플라멩고 공연장으로 간다.
보통 20분 내외를 걸었는데, 다시 세비야 대성당 근처였다.
제일 먼저 줄을 섰고 가장 앞자리에서 플라멩고 공연을 봤다.
기타 악사, 가수 두 명, 댄서 커플해서 총 5명이 펼치는 한 시간 짜리 공연이었다.
처음에는 남녀가 격렬한 합무를 추고, 다음에는 여성 댄서의 독무가, 마지막에는 남성 댄서의 독무가 이어진다.
중간에는 솔로 기타연주도 있었는데, 공연팀 모두가 중장년쯤은 되어 보였다.
그래도 박력있게 때로는 관능적으로, 기타 선율을 바탕으로 구슬피 부르는 노래와 박수로 맺는 박자, 그리고 발굽으로 탭댄스를 추는 플라멩고는 한이 섞였다고 해야 하나, 진중하게 애처러운 댄스처럼 다가왔다.
공연이 끝나고 다시 걸어서 호텔로 온다.
체크아웃할 때 맡긴 짐을 찾아 호텔에서 불러준 택시를 타고 공항에 온다.
택시비는 30율로.
그리 멀지 않은 거리인데, 대중교통 요금이 꽤 비싼 편이다.
이곳 물가는 마트에서 장보는 식료품비는 저렴한 편인데, 사람이 손이 타는 식당이나 택시, 관람료, 공연료 등은 꽤 비싼 편이었다.
세비야의 여행이 끝이 났다.
악명높은, 그러나 우리네 저가항공보다는 괜찮아 보이는, 부엘링 항공은 30분 연착이 됐다.
피곤에 절은 우리가족은 공항 벤치에 부서지듯 앉아 있었다.
비행기 타고 내리는 시간은 지루하게 흘러갔고, 새벽 1시를 넘어서야 바르셀로나 공항에 도착한다.
늦은 밤이었지만 형이 마중을 나와 있었고 형 차를 타고 40여 분을 달려 집에 도착한다.
그렇게 우리의 여행이 끝이 났다.
피곤해서 하루를 리뷰할 여유도 없이 깊은 잠에 빠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