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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비전재복 Aug 23. 2023

*처서 무렵

   詩가 있는 풍경(102)

*처서 무렵

                                           전재복



무방비로 열어둔 창문

불쑥 새벽냉기를 물고

바람 한 올 넘어오다

콜록

마른 목구멍에 걸린다


치근대던 끈적임

오랜 불면을 앓아온 시간이

배롱나무 붉은 꽃그늘로 숨어들고

여름감기 바튼 기침소리로

낙엽이 후두둑 진다


소리로 들끓던 한낮의 폭염

한 계절 내내 몰아치던

비명과 아우성에

나무들 귓구멍은 탈 없는지 몰라


고막이 터져버릴 듯

시공간을 떠돌던 함성이

공중에서 섬돌 밑으로

자리를 옮겨 앉을 때쯤

폭염만큼이나 뜨거웠던

지난 계절 내 거친 저항도

자숙의 항아리에 봉인한다



#제4시집 '잃어버린 열쇠' 수록( 2019년)

*****************************************


어제는 까마귀 까치들이 머리를 잇대어 놓은 오작교가 은하수 너른 강에 놓여서, 일 년 만에 애타게 서로를 그리던 견우와 직녀가 만난다는 칠석날이었다.  아무리 가물어도 이 날은 몇 방울의 비라도 틀림없이 내린다고 했다.

반가워서 울고 아쉬워서 흘리는 눈물이 땅 위에는 빗물이 되어 내린다고 어머니의 어머니가 그 어머니의 어머니가 아이에게 전해준 이야기이다.


어제는 낮부터 빗방울이 듣더니 저녁 무렵 반짝 해가 뜨면서 무지개가 떴다.

오작교에 앞서 무지개다리를 먼저 놓아줬을까?

어둡기 전에 서둘러 만나라는 배려였을까?

견우와 직녀는 잘 만나고 돌아갔을까?


그리고 밤엔 상당한 비가 내렸고 처서인 오늘과 내일까지 비가 내릴 것이라 한다.

밤이고 낮이고 너무 밝아진 탓에 은하수를 관측하기도 어려운 시절 견우와 직녀는 그곳에 잘 있는지...


오늘은 더위를 물리친다는 처서이니 이 비 그치고 나면 더위가 물러가려는지 믿고 기다려 볼 일이다.


빛의 속도로 발전하고 달려 나가는 세상에서 밤하늘 별얘기나 하는 내가, 어머니의 어머니 그 어머니의 어머니가 전해준 이런 이야기를 들려줄 기회가 이젠 없을 것 같다.

밤하늘을 빠지게 올려다보며 어머니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꿈을 꾸는 아이들은 더 이상 남아있지 않다.

아이들은 너무 바쁘고 세상은  너무 뜨겁고 너무 할 일이 많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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