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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비전재복 Dec 23. 2023

*폭설에 갇힌 나흘

영화 몰아보기(121)

*폭설에 갇힌 나흘

넉 달 같았다. 폭설에 갇힌 나흘, 하루 두 번 지나던 버스도 끊기고 인간의 마을은 소리부터 지워져 갔다.

천지 가득 움직이는 것이라고는 시리도록 흰 꽃잎인지 나비 떼인지 모를 것들 뿐,

어지러히 나풀거리고 내려 쌓이고 차곡차곡 두께를 더해갔다.

 

콕 집어 군산! 무릎 빠지게 눈이 많이 내렸다고 뉴스에도 나왔다. 도서지방엔 60cm가 넘게 내렸다고 했지만, 옥정리도 거의 비슷하게 쌓인 것 같다.


나는 오랜만에 폭설을 핑계 삼아 두문불출하고 집안에서 뒹굴며 냉장고를 털어 먹었다.

사흘이나 폭설로 발이 묶여 등교를 못 한 어린 손녀와는 적당히 타협을 하며, 느긋하게 영화도 몇 편 볼 수 있었다.


지난여름 소설 '덕혜옹주'를 읽으며 너무 가슴 아파했었는데 영화채널에서 그녀 덕혜옹주를 다시 만났다.

여전히 속상하고 안타까워서 눈물을 흘렸다.

덕혜옹주, 해리포터 3종, 그린 북, 더 콘닥터...

오늘은 전에 본 적 있는 '그린북'과 '더 콘닥터'를 보았다.

너무 몰입해서 본 탓일까?

영화가 끝나고도 감정이 길을 잃은 듯 복잡하다.

안타깝고 슬프고 타다만 불덩이 같은 울화까지...


영화 속 이야기는 수없이 앞을 가로막는 장애물을 뛰어넘고, 훈훈한 이야기로 마무리하고 있었지만, 인종차별과 성차별은 정녕 뛰어넘을 수 없는 벽인지 영화가 끝나고도 한동안 가슴이 답답했다.



오늘은 다행히 눈도 멈추고 길이 열렸다. 점심 먹고 남편은 답답해하는 손녀를 데리고 나가서 콧바람을 쐬어주고, 연휴에 먹을 간식거리를 한가득 사들고 왔다.


그러고 보니 내일은 크리스마스이브, 우리 부부에게도 조금  특별한 날이다.

설렘의 자리에 측은지심만 남아서 그저 동포애 인류애로 살아가는 우리지만, 날씨가 괜찮으면 드라이브도 하고, 분위기 좋은 곳에서 밥 먹고 차도 마시자고 해야겠다.


하늘엔 영광! 땅에는 평화!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 축복이 고루 내리기를!!



*남편 꽃 / 전재복



약발 떨어진 남자의 향기

삶의 무게에 짓눌려

시들어버린 남편 꽃


처진 어깨가 애잔하다


거친 손, 성근 머리칼

잎새 몇 개 간신히 붙잡고 선

겨울나무 같아

짠하다


             (2023. 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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