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봄비전재복 Dec 05. 2022

*詩가 있는 풍경(11)

     - 문풍지를 달겠어


*문풍지를 달겠어 / 전재복


찬바람 뾰조록 각을 세우니

문풍지를 달아야겠어

틈새 파고드는 냉기로

가슴앓이 도지기 전에


몽니 사난 바람에

저 혼자 울지라도

섣불리 길을 내지 않는

충직한 문지기

창호지 겹겹으로

문풍지를 두를거야


달그림자 밟고

눈물 그렁그렁

뒤척이는 문

낙엽보다 먼저 돌아서서

울먹이는 문


서둘러

문풍지를 달아야 겠어

한 계절 목 놓아

대신 울라고


(2020, 제5시집 '개밥바라기별' 수록)

바깥날씨가 많이 추운 모양이다. 대문 옆 수도간에 고인 물도 얼어있고, 거실 바닥은 심야전기보이러인 덕에 아주 따뜻한데도 차가운 공기가 맴돈다.


지금이사  집을 지을 때부터 단열에 신경을 쓰고, 문들도 이중삼중으로 바람막이를 잘 해서 겨울에도 집안에 들면 크게 추위걱정을 안하지만, 옛날 나 어렸을 때만 해도 겨울은 참 맵차고 추웠다.

그래서 대부분의 가정에서는 찬바람이 불기시작하김장 못지않게 신경쓰는 일이 있었으니 문을 새로 바르고 문풍지를 다는 일이었다.

내 어머니도 그러셨다. 문을 떼어내어 먼지를 털고 새로 창호지를 바르셨다. 미리 눌러놓은 마른 풀꽃이나 댓잎을 예쁘게 올려놓고 창호지를 오려서 덧대어 바르셨다.

햇살을 받은 종이문 속에서 은은하게 피어나는 작은 풀꽃그림이 어린 내 눈에도  너무 좋았다.


또한 여닫는 문마다 문풍지를 두툼하게 둘러쳐서 문틈을 밀고 들어오는 황소바람을 막아내는 대비를 잊지 않으셨다.


바람이 사납게 부는 날에는 부우웅 붕붕~

문풍지가 떨며 소리내어 울었다.


김장도 끝나고 가을 들판이 휑하게 비어버리면, 맵찬 칼바람은 초가집들이 옹기종기 모여사는 고샅을 쓸고 다녔다.

사는 형편들이 고만고만해서 부자집이 아니고는 아궁이에 지피는 불길로 구들장을 뜨게 하기에는 늘 부족했다.

방안에 화로를 들여놓고 불씨를 재로 덮어 인두로 꾹꾹 눌러 다독이며, 바느질을 하시던 어머니의 모습이 아직도 눈 선다.


겨울엔 방안에 앉아서도 코 끝이 시렵고 손이 곱았다.

겨울이면 늘 아랫목에 깔려있던 이불 속에 다리를 뻗거나,  배를 깔고 누워서 헝겊쪼가리로 만든 인형을 가지고 놀던 나는

바느질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지켜보며 왜 까닭모를 슬픔을 느꼈는지 모르겠다.

사철 한복을 즐겨입으시던 아버지의 옷을 손수 지으시던 내 어머니~ 내 유년의 기억 속에 아버지는 늘 출타었다.


어떤 바느질을 하시며 들릴 듯 말 듯 콧노래를 하시던 쪽진머리의 젊은 어머니~ 

그 가락의 여운예닐곱 살 어린 계집애의 가슴에 왜 쓸쓸함으로 들어앉았는지 참 모를 일이다.


춥다.  

내 마음 속 문풍지가 부르르 떨고있다.


작가의 이전글 *나 늙으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