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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비전재복 Dec 06. 2022

*반란의 계절

    - 쓰담쓰담 나를 응원해(12)

충성을 맹세한 적은 없지만 오랜 세월 서로 의지하고 돌보며 한 몸으로 살았으니, 뜬금없는 배신을 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슬금슬금 헛바람이 드는가 싶더니 배신과 반란은 도처에서 손 쓸 수 없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잘 흘러가던 혈류가 이따금 해찰을 하는지 머릿속에서부터 혼란스러운 조짐이 시작되고, 밤낮으로 멈추지 않는 쇠망치 소리에 미쳐버릴 것 같은 두통과 이명,

이 무지막지한 반란군과 끝없는 전쟁을 치르는 중이다.

척추로부터 시작된 관절들의 반란은 여기저기서 삐그덕대며 아우성을 치고, 뼈마디는 숭숭 바람구멍을 만들기 시작했다. 발바닥 어딘가에서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뼈가 자라나서 잘 가던 걸음을 멈추게도 했다. 잇몸이 무너지고 눈앞이 흐려지는가 하면 몸의 사방에서 반란군은 예고 없이 반기를 들고 일어난다.


나를 이루고 있는 가장 근원적인 것들의 관계조차 지혜롭게 관리하지 못한 자신을 뒤늦게 나무라며 밖으로 눈을 돌려보니,

나는 모든 것들에서 단 한 가지도 자유로울 수 없는 관계의 연속선 상에 있음을 깨닫게 된다.

하늘도 땅도 이름 모를 풀 한 포기에조차, 가족도 친구도 건너편 세상의 사람들조차 알게 모르게 관계의 고리를 맺고 있었다. 이렇게 수많은 관계 속에서 나는 얼마나 성실하게 내 자리를 지키며, 내 좌표에 뚜렷한 흔적을 남기려고 노력했었는지 부끄러운 성적표에 고개를 들 수가 없다.


자연이나 인간사나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노력과 애정과 관리가 필요한 것 같다. 애정과 관심이 때로는 혼자만의 노력으로는 안 되는 경우도 물론 있다. 소통이 문제인데 원만한 소통은 우선 나를 내려놓고 상대를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런데 너 나 할 것 없이 나만 알아달라고, 나부터 이해해달라고 재촉하다 성내고 돌아앉는다.

왜 느긋하게 물러서서 순리대로 익어가고 저절로 다가올 이해의 시간을 기다리지 못했을까?

사랑만 하기도 모자란 시간을 미워하는 마음으로 독을 끓이다 스스로 독에 중독되어 무너지기도 했으며, 놓지 말아야 될 소중한 것을 머뭇거리다 놓쳐버린 후에야 가슴앓이를 한 적은 또 얼마였던가?


변함없는 나의 것이라 믿었던 것들의 배신과 스멀스멀 풀어져 가는 쓸쓸한 시간을 인정해야겠다. 그리고 이제는 남은 날, 남은 것들을 챙기고 아낄 일이다.

12월 한해의 끝자락에서 생의 늦가을 같은 내 삶을 돌아본다. 헤프게 써버린 나의 시간, 예측할 수 없는 남은 날들, 나는 아직도 풀지 못한 숙제를 하듯 해독제를 만들어가는 중이다.


시를 쓰는 일- 그것은 수많은 관계의 고리 속에서 지치고 시들어가는 나를 구제하는 해독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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