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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비전재복 Jan 13. 2024

*뭉근하게 끓여지는 시간이라는 약

* 기다림과 정성을 담아야(128)


군산에서 평택까지 그렇게 먼 거리인 줄 몰랐다.


먼 거리를 우리 아들은 제 딸 은성이를 보러 매달 이웃집에 다녀가듯 가볍게 다녀가는구나 생각하니 짠한 마음이 들었다.

더 먼 거리 분당에 살 때도 용인에 살 때도 동두천에 살 때도 마찬가지였다. 부모만 있다 해도 겨우 하루나 이틀을 같이 지내려고 매달 달려 내려올까마는.



어제는 다른 사람의 차를 얻어 타고 오가면서 고맙고 미안한 마음이 앞서서인지 참 멀게 느껴졌다.


지난가을 꽃무릇이 만개했을 때 군산에서 네 명이 번개모임을 갖고, 고창 꽃무릇 붉은 물결에 함께 출렁였던 아우들이 이번엔 평택으로 번개를 치자고 했다.

고맙게도 이번 역시 광주 사는 막내 아우가 나주에서 2번을 태우고, 군산에 들러 나를 태우고 평택으로 향했다.

행여 눈비라도 내릴까 봐 걱정했는데, 바람 끝은 차지만 하늘은 맑고 차창으로 스쳐가는 풍경 속에 언뜻언뜻 봄님의 옷자락이 보이는 듯했다.

도중에 교통사고로 정체구간을 잠깐 겪기도 하면서 약속된 식당에 도착해서 서로서로 얼싸안고 반가움을 나눴다.



평택 사는 3번 아우가 마련한 점심자리는 넓은 통창으로 호수가 발아래 내려다 보이는 멋진 곳이었다.

정갈하고 맛깔난 코스요리로

눈과 입을 호사하며, 끊어져 흐르지 못했던 마음길도 풀어놓았다.


도로에 돌발사고가 나면 흐름이 막히고 사고가 수습될 때까지 정체되어 답답함을 견뎌야 한다.

사람과 사람사이에도 돌발사고로 인한 오해가 생기면, 흐름이 끊기고 막혀서 답답하고 불편한 체증을 견뎌야 한다.

수 시간 내에 복구되는 도로의 정체와는 다르게 사람사이의 체증은 훨씬 긴 시간, 몇 개월 혹은 몇 년이 걸리기도 하니 그동안 겪어야 하는 불편과 고통은 당사자들이나 지켜보는 사람이나 안타깝기는 한 가지이다.


1년 가까이 묵은 체증이 풀려서 너무 고맙고 좋았다.

맏언니인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중심을 잡고 기다려 보는 일 밖에 없었다.

다행히 시간의 흐름 속에 서로 물꼬를 찾아 막힘을 뚫고 함께 흐를 수 있게 되어 너무 다행이다.


뭉근한 불에 정성을 들여 오래오래 끓여야 잘 우러난 탕약을 얻을 수 있는 것처럼, 사람의 관계에 이상징후가 발견되어 치료하려면 더 많은 정성과 진득한 기다림이 필요한 것 같다.


뭉근한 불에 오래오래 정성을 담아 끓여낸 시간의 탕약!

지금 불편을 겪고 있는 나 혹은 그대에게 권해본다.


목각갤러리에서 만난 오래전에 숨을 멈춘 나무들의 나이를 가늠해 보다가, 그들이 써 왔을 시간의 두께 인고의 깊이에 무한 경의를 안고 돌아섰다.


저들에 비하면 나는 하루살이에 지나지 않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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