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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비전재복 Feb 24. 2024

*묵은 우정 같은 정월 대보름

오곡밥과 나물(138)

습관이 무섭기는 무섭다. 몇십 년을 해온 습관을 하루아침에 벗어버리기는 어려운 모양이다.

제사도 명절도 간소화하기로 했으니 정월보름이야 슬쩍 넘어가도 될 테지만 그냥 지내기 왠지 섭섭하다. 오랫동안 해오던 일이기에 아무도 오지 않을 테지만 오곡밥은 지어야지, 나물도 몇 가지는 갖춰야지, 부럼대신으로 손질된 견과류도 준비하고 입맛 돋울 과일도 준비하고...

남편을 위해 귀밝이 술도 사야지.

어제 오후 집으로 돌아오면서 이것저것 장을 보아 왔다.



어제는 당산제 구경을 하고 오랜 친구와 만나서 점심식사를 했다.

날씨는 꾸무릇하고 바람도 찼지만 서너 달 만에 만나는 친구와 시내에서 달랑 밥만 먹고 헤어질 수가 없었다.

근대역사박물관 주차장에 친구 차를 주차해 두고 내 차로 이동하기로 했다. 모처럼 동백대교를 건너 강가의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으로 갔더니 만석! 빈자리가 없다.

거기 아니면 밥 먹을 곳이 없을까? 하구둑을 건너서 맛집으로 소문난 쌈밥집에 가서 가성비 최고인 점심을 먹었다.


식사 후에 그냥 시내로 돌아오기 아쉬워서 오성산을 지나 한옥 찻집을 찾아갔다. 따뜻한 오미자차를 마시며 금방 구워낸 겉 바삭 속 촉촉한 가래떡을 꿀에 찍어 먹었다. 이미 배는 충분히 부른 상태였지만 올리브유에 노릇노릇 구워낸 가래떡에 자꾸 손이 갔다.

에휴! 이러니 체중이 내려갈 수가 없지!  나이 들어가며 입맛이 살아있는 것도 복이라잖는가?

내 맘대로 자위를 하면서 몇 백 그램은 족히 올라갔을 체중계의 눈금을 머릿속으로 그렸다.

이제는 조금 많이 먹으면 소화하기 어렵다는 친구 앞에서 나만 맛나게 먹어서 조금 미안하기는 했다.



그리고 오늘 이른 아침부터 딸가닥거리며 어제 준비한 것들로 보름날밥상을 차렸다.

예쁘게 세팅할 줄도 모르고, 솜씨야 없지만 멀리 있는 아들에게 눈으로라도 맛보라고 소복소복 담아서 사진을 찍어 보냈다.


먹기 좋게 손질한 견과류로 부럼을 대신하며, 오늘은 오곡밥을 먹고 더위도 팔고, 복조리를 들고 다니며  아홉 집의 밥을 얻어먹었다는 옛이야기를 어린 손녀에게 들려주었다.

밤에는 쥐불놀이와 달맞이도 했다는 옛날이야기 끝에 쥐불놀이 깡통을 돌리다가 불똥이 옷에 떨어져 정강이를 데어서 지금도 흉터가 있다는 할아버지 말씀에 어린 손녀 은성이가 일침을 놓는다.


"그러니까 불장난을 하면 안 되지요. 할아버지도 참! "


이렇게 띄엄띄엄 옛이야기를 통해서라도 우리 조상들의 살아온 이야기가 후손들에게 전해지기를 소망한다면 헛된 욕심일까?



위 사진은 sns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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