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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비전재복 Dec 18. 2022

*똥 보따리

   ㅡ 쓰담쓰담 나를 응원해(22)


(둘 째 아기)


18개월 차이로 둘 째가 태어났다.

첫 째 아이는 친정어머니가 밤낮으로 맡아 길러주셔서 걱정이 없었는데 둘 째는 걱정이 많았다.

다행히 둘 째를 출산하기 한 달 전에 도우미 할머니를 구할 수 있어서 마음이 놓였다. 친정 동생댁이 나와 출산이 겹쳐서 미리 도와줄 분을 구했던 것이다.


그때는 출산휴가가 딱 1개월 이었다.  아이를 낳고 몸도 채  추스리기 전에 학교로 돌아가야 했었다.

한 달간의 출산 휴가가 거의 끝날 무렵 도우미로 와계시던 할머니가 집안사정으로 일을 그만두게 되었다.

좀 더 도와주기를 바랐는데, 출근은 해야겠고 사람은 구해지지 않고 정말 난감했다. 남편은 중등교사로 발령받아 멀리 떨어져 있어서 주말에만 다니러 왔다.

동생댁이 산후조리를 마칠 때까지 할수없이 시어머님께 도움을 청할 수밖에 없었다.

출근길에 택시를 타고 학교와 반대방향인 시댁에 가서 아이를 내려놓고, 다시 택시를 타고 출근을 했다가 저녁 때 시댁에 가서 아이를 데려왔다.



(쇄골이 부러지고...)


하루는 출근길에 아이를 업고

택시를 타고 가다가 가벼운 교통사고가 났는데, 별일이 아닌 줄 알고 평상시처럼 아이를 맡기고 출근을 했다.

팔을 제대로 쓸 수 없을만큼 통증이 심해서 오전수업을 마치고 병원에 갔더니 쇄골이 골절되었다고 했다. 아침에 아기를 업은채 의자와 부딪치면서 입은 상처였다. 쇄골은 잘 부러지기도 하고 잘 낫기도 한다고 했다.


그 날은 어쩔 수 없이 밤에까지 시어머님께 아이를 맡기고 돌아왔다. 아버님은 아이걱정 말고 두고가라 하셨으나 이틀밤인가(?) 지났는데 시누이한테 전화가 왔다.

애가 밤에 잠을 잘 안자고 울어싸서 엄마가 머리가 아프니 데려가라고~. 그날  퇴근길에 아이를 데려와서 며칠간 다시 친정어머니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내 아이 둘에 친손주까지 아기 셋을 돌봐야 하는 친정어머님께 너무 죄송했고, 동생네한테도 미안했다.



그 시절 출근하는 내 모양새는 보따리 장사꾼 같았다. 출근하는 옷차림에 아기를 업고, 우유병 기저귀가방 도시락가방에, 비라도 내리는 날에는 우산까지 들고 걸어가 친정에 아기를 맡기고 헐레벌떡 학교로 달려가고, 퇴근할 때 다시 아기를 데려왔다.


남편은 객지에 있고 혼자서 많이 힘이 들었을 테지만, 그때는 그것이 당연히 살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며 살았던것 같다. 젊었고 친정어머님이 첫 애는 전적으로 맡아주셨고, 둘째도 낮동안 함께 돌봐주셔서 가능한 일이었다.




(똥보따리 오줌보따리)


며느리와 열 여덟 살 차이의 시어머님은 너무 젊었고 멋쟁이셨다. 할머니 될 준비가 전혀 안 되어 있었다. 화장이라고는 로션하나에 맆스틱으로 끝내는 며느리, 늘 달려야하니

편한 바지차림인 며느리와 대조적으로 집에서도 늘 곱게 분단장하시고 손톱에 메니큐어까지 바르고 우아하게 사셨다.

내겐 손아래 시누이인 과년한 딸과 함께 맛과 멋을 누리며 여유롭게 사셨다.


주말에만 집에 오는 남편은 아들노릇도 해야 해서, 매주 일요일은 시댁으로 가야했다.

주말이 늘 그러니 남편도 나도 지쳐갔다.

난민처럼 꾀죄죄 야위어가는 아내를 위해 남편은 자기는 주말마다 가고, 나에게는 한 주씩 건너서 가자고 했다.

그렇게 쉴 틈을 만들어 줘서 고마웠는데 남편은 너무 효자였을까?


혼자서 아기를 데리고 어머님께 다녀오는 일요일 밤엔 언제나  똥,오줌에 절은 기저귀를 가득 싸들고 돌아왔다.

아이가 종일 똥 오줌 싼것을 비닐봉지에 모아서 가져오는 것이었다.

밤늦게 시큼하고 지린내 나는 똥보따리 오줌보따리를 꺼내서 손빨래를 할때면 섭섭하고 서러워서 눈물이 났다.

천으로 된 기저귀에 배인 똥물은 아무리 비벼빨아도 삶지않고는 잘 지워지지도 않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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