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봄비전재복 Oct 20. 2024

이런 맛에 살지

금메달, 은성이의 약속(186)


석 달 넘게 기침에 갇혀 살다가 겨우 벗어나는가 했더니 편두통이 복병처럼 쳐들어왔다.

전혀 반갑지 않은 편두통이 오랜 벗이라고 머리맡을 지키고 앉아 푹푹 쑤셔대는 통에 밤낮으로 사흘을 부대꼈다.

약발도 겨우 네댓 시간! 자는 둥 마는 둥 일어나서 이른 아침 식사를 준비했다.

오늘은 우리 은성이 태권도 대회가 월명체육관에서 열리는 날. 일찍 밥 먹여서 8시까지 태권도장으로 실어다 주고,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9시까지 체육관으로 가면 된다고 했다.


진통제를 일단 먹고, 더 챙겨가지고 체육관으로 향했다.

아비 에미가 멀리 있으니 할아버지 할머니가 대신 빈자리를 채워줘야 한다.

월명체육관 주변엔 이미 차들이 빼곡히 들어차서 주차할 곳이 없다.

남편은 주차할 곳을 찾아가고 나만 먼저 시끌시끌한 체육관으로 들어갔다.



<제23회 군산교육지원청 교육장배 태권도대회> 현수막이 정면에 걸리고, 오늘 대회에 참가한 도장들의 현수막이 2층 관람석 난간에 빙 둘러 걸려있다.

1층에는 출전 선수들과 심사위원,  진행요원들, 2층에는 대기 중인 선수들과 학부모들로 와글와글 난리 속이다.

내걸린 현수막을 세어보니 총 19개 팀, 은성이네 도장을 찾아 뒤쪽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다행히 은성이네 경기가 오전에 끝난다 하니, 점심 먹고 채만식문학관으로 부지런히 달려가면 될 일이었다.

컨디션은 별로이지만 그래도 해야 할 일은 해야지 어쩌겠는가?



경기하러 아래층으로 내려가기 전에 우리 은성이가 살짝 자리에서 빠져나와 내 손을 잡고 약속을 건다.


"할머니, 제가 꼭 금메달을 딸게요."


저 스스로에게 하는 다짐일 것이며  할미에게 힘내라는 신호일 테니! 가슴에 뜨거운 것이 울컥 치밀었다.

2층 난간에 몸을 밀착시키고 우리 은성이의 경기장면을 찍으며 내 안에서는 말할 수 없는 기쁨이 샘솟아 올랐다. 저 작은 우리 아기가 어쩌면 저토록 야무질 수 있을까?


'그렇지. 이런 맛에 살지!'



은성이는 약속한 대로 금메달을 땄다.

전국적인 대회, 대단한 대회는 아니지만, 내겐 우리에겐 자랑스럽고 값진 메달이다.

이렇게 조금씩 건강하고 다부지게 세상과 만나고 있다.

여덟 살 우리 은성이, 이쁜 내 강아지!



작가의 이전글 *10월의 어느 멋진 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