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206)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뭔가 꼼지락거린다는 것은 무언가에 관심을 갖는 일이고 그것은 살아있음의 확인이다.
설 전부터 떡국을 몇 번이나 얻어먹고 내가 사주기도 했으니, 안 먹을란다 도리질을 쳐도 나이 한 살을 꼼짝없이 보탰다.
폼나는 명함 한 장 지니지 못한 채 칠십 중반을 넘어섰다.
이것이다 하고 자랑스레 내놓을 만한 성적표도 마련하지 못했지만 감옥에 가는 일도 안 했으니 그냥저냥 평균치의 삶은 살았지 싶다.
오래된 흙담처럼 시나브로 삭아서 내려앉는 삭신이야 어쩌겠는가?
이제 맘 놓고 계단을 쿵쿵 내려서지도 못하고, 소리는 들어도 내용이 분명치 않아 엉뚱한 소리로 되묻고, 눈앞은 선명하지 않다.
작년 한 해 꽤나 이곳저곳을 넘나들며 바쁘게 살았다.
뭐 특별한 일이야 있었을까만, 단체로 움직이는 일에 끌려가며 체력에 과부하가 걸릴 만큼 달렸다.
그래서 올해는 적당히 거절도 하며 힘을 안배하기로 했다.
나이를 먹고 보니 어울려 노는 일도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그래서 올해는 혼자서 놀아도 되는 일 하나를 찾아냈다.
전부터 관심은 있었으나 실행에 옮기지 못한 연필스케치, 색도 살짝 덧칠해 가며...
일주일에 두 번, 1월 2일에 시작했으니 어느새 날짜로는 한 달이 되었다.
행사가 겹쳐서, 몸이 아파서, 명절이 껴서... 빼먹어야 할 핑계가 수두룩했다.
명절을 지내고 몸에 탈이 붙어서 계속 결석이다.
공부하러 못 가는 대신 혼자서 사진이나 견본그림을 보고 끼적거리며 논다.
제법 잘 그리는데? 남편의 격려에 신이 나서 자꾸 그려댄다.
집에서 혼자 보내는 시간이 전혀 무료하지도 머릿속이 복잡하지도 않아서 참 좋다.
언제 싫증이 나서 멈춰버릴지는 모르지만...!
한 달 분의 결과물을 바라보며 나 혼자 뿌듯해한다.
어떤 것도 시작하지 않으면 아무 결과도 기대할 수 없다. 이렇게 꼼지락 꼼지락 뭔가를 하다보니
어느새 실적물이 이만큼 모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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