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이 쉬어진다(205)
간편하고 단출하게~
생활도 주변도 생각도, 그렇게 살고 싶었다.
지난 추석부터 우리 집 명절 차례상에 변화가 생겼다.
일곱 가지이던 것을 다섯 가지로,
다섯 가지이던 것을 세 가지로...
시동생네도 시누이도 각자 며느리, 사위, 손주들로 식구가 불어나니 명절 때 각자 자기 집에서 가족모임을 하겠다고 하니, 굳이 큰 집인 우리가 손님을 맞는 북새를 떨지 않아도 되었다.
결혼하고 48년 동안 맏며느리의 자리를 지키며 속으로 얼마나 바라던 단출한 명절이었던가?
그러나 막상 시어른들이 모두 떠나시고 추석 때부터 직계가족만 모여 차례상을 차리고, 명절을 지내려니 어쩐지 심심하고 김이 빠진 느낌이다.
그동안 맏며느리 자리를 지키느라고 마음 놓고 친정에도 갈 수 없어서 남몰래 가슴앓이도 많이 했었는데...
시부모님보다 친정부모님이 먼저 다 돌아가셔서
이제는 찾아갈 친정도 없어졌다.
시댁이나 친정쪽이나 내가 어줍잖은 고향으로 남았었는데, 그 고향마저 세월의 풍파에 저절로 힘이 빠졌다.
작년부터 관절염이 심해져서 힘든 일을 하지 않아도 허리 무릎 손가락까지 앙탈을 부린다.
어디 그것뿐이겠는가?
종합병원 하나쯤 차려도 될 만큼 여기저기가 삐걱거리고 자주 탈이 붙는다.
어쨌거나 단출하고 편안한 차례를 지내고, 눈길을 핑계 삼아 오늘 아침에사 임실 호국원으로 시부모님을 찾아뵈었다.
하늘이 흐리기는 했어도 눈이 그치고 바람도 없어 아름다운 설경을 눈과 마음에 담으며 한 시간 반정도 달려 호국원에 도착했다.
눈 덮인 묘역에 올라가는 길도 눈을 잘 치워놓아서 하나도 불편하지 않았다.
애써주신 직원들이 참 고마웠다.
아들이 운전하는 차 안에서 모처럼 남편도 편안하고 즐거운 듯 부자간의 대화가 구수하게 이어졌다.
군산으로 돌아와 고깃집으로 향했으나 사람들이 많아서 초밥집으로 차를 돌렸다.
아버지가 밥값을 낸다고 들어갔는데, 아들이 잽싸게 밥값을 내버렸다. 어쨌거나 우리는 초밥으로 맛있게 점심을 먹고 왔다.
명절기간에도 나는 어설프지만 1월부터 시작한 스케치연습을 하는 여유(?)도 부렸다.
언제부터인가 책을 읽어도 내용이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다.
일을 하다가도 멍하니 앉았다가도 뭔가 빠져나간 것 같은 허전함? 이유 없는 우울감이 나를 에워싸고 있었다.
그런데 묘하게 연필을 들고 서툰 스케치에 몰두할 때는 마음이 편안하고 기분이 좋았다. 어설프게 모양을 그리다 지우고, 지우고 다시 그리고...
그러다 보면 잡념이 사라졌다.
생각이 쉬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