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란 걸 다녀왔다( 209)
*별 준비 없이, 아무 기대 없이 여행이란 걸 이렇게도 다녀왔다.
그것도 명색이 해외나들이인데...
어질어질 컨디션은 계속 바닥을 치고, 머릿속 어딘가에서 들리는 쓰르라미의 떼창은 낮밤을 가리지 않고 기승을 부렸다.
병원에 가서 영양제를 맞고, 계속 치료받던 한의원에 여행계획을 알리고 적절한 치료도 받았다.
남편은 이것저것 다른 때보다 더 신경 써서 구급약을 챙기느라 부산했다.
그런 남편 옆에서 심드렁한 체 가볍게 가방을 꾸리는 나를,
마치 아이들 수학여행 보내는 부모처럼 당부하고 체크하는 아들 딸에게 걱정 말라고만 했다.
속으로는 겨우 5일이지만 내 몸이 나에게 잘 협조해 줄지 그게 걱정되었다.
설마 무슨 큰일이야 생기겠어? 생겨서 마지막 여행이 된다 해도 할 수 없고!
어찌 되었건 17일, 아침 먹고 집을 나서서,
21일 저녁은 집에 와서 먹었으니 3박 5일간의 호찌민/무이네의 여정은 큰 탈없이 무사히 마쳤다.
기대 없이 떠난 여행의 곳곳에서 전에 두어 번 여행했던 베트남과는 많이 다른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편안하고 여유로운 쉼과 충분한 대접(?)을 받으며 다닌 것 같다.
기대 없이 가볍게 남편 따라나선 여행, 여행후기도 따로 기록하지 않고 사진도 몇 장 찍지 않았다.
이동을 하면서 졸리면 잠깐씩 졸고, 음식은 양껏 먹지 않으려고 조심했다.
쉬는 여행! 이번 여행의 컨셉은 쉼이었다.
60 초반부터 81세까지 총 14명이 함께한 이번 여행, 모두 어딘가는 아픈 곳을 한두 개는 달고 있는 것 같았다.
남편이 나 때문에 신경 쓰게 하지 않으려고 밝은 모습을 연출하며 열심히 따라다녔다. 아니 앞장서 다녔다.
떠날 때처럼 돌아올 때도 가방이 가볍도록 쇼핑은 거의 하지 않았다.
내 몸 하나 건사하는 일이 무엇보다 소중했으므로.
전주로 오는 리무진 속에서 목이 조금 따끔거리고 몸살기운이 느껴졌다.
집으로 돌아와 가방을 쏟아놓고, 세탁기를 돌리고 닦고 정리하며 여행설거지를 마치고, 샤워를 하고 나니 몸이 천근만근이다.
여행의 가장 좋은 점은 식구들 밥 차릴 걱정 없이 남이 차려주는 밥 먹는 일! 그 짧은 호사는 끝났다.
원고 두 곳 보내고, 내일 강의 준비하고, 詩 필사하고...
그렇게 토요일 일요일이 지나간다.
저녁나절에 시낭송과 스케치 등 같은 취미활동을 하며 늘 따뜻하게 마음 써주시는 이선생님이 물김치와 흑임자죽을 만들어 가지고 오셨다.
식당에서 밥 한 끼 사주는 것도 마음이 없으면 안 되는 일이지만, 손수 음식을 만들어 나누는 일은, 사람에 대한 깊은 사랑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다. 참 고맙고 감사한 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