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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비전재복 Jan 06. 2023

*뒤쳐지고, 어리둥절하고

       쓰담쓰담 나를 응원해(32)

* 뒤쳐지고, 어리둥절하고



언제는 얼마나 날쎄게 앞으로 치고 나아갔을까마는, 최소한 이렇게 둔전거리지는 않았다.

눈길을 걸어가더라도 통통통 걸어가다가 미끄러져 엉덩방아를 찧을지언정,

지금처럼 엉거주춤 꼴보기 싫은 모양새로 비실거리지는 않았다.


오늘은 유치원 졸업여행으로 눈썰매장을 간다고 들뜬 우리 은성이와의 부산스러운 아침시간을 끝내고, 은행이랑 두어 군데 볼일이 있어서 나갔다.


통장을 정리하고, 지역사랑 상품권을 모바일과 종이 상품권으로 할인구매를 했다. 귀찮기도 하고 헤픈 것도 같아서

작년에는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는데, 충전해서 쓰는 카드가 있다해서 카드를 만들어볼까 문의를 했더니 창구직원이 친절하게 도와줬다.

내 핸드폰을 달라더니 해당 어플을 깔고 입출금통장과 연계시키고 체크카드 발급까지 모두 도와주는데 시간이 상당히 걸렸다.


"다른 사람은 안해주는데 선생님만 특별히 해드리는거에요."


미안해 하는 내게 활짝 웃으며 시간을 할애해주는 그녀가 너무 고마웠다.

다행히 점심시간이 가까워서 그런지 손님이 없어서 덜 미안했다.

일을 마치고 나와서 근처 군고구마 파는 곳에 가서 따끈한 군고구마 두 봉지를 사다가 얼른 들이밀고 나왔다.


요즈음엔 어디를 가나 주문도 결제도 화면을 보고 해야하니,

빨리 빨리 대처하지 못하는 나이 든 사람들이 살아가기 참 어렵다.


무엇 하나 시작하려 하면, 무엇 무엇을 적어라, 아이디와 비번을 써라, 무엇을 확인해라, 요구사항이 많기도 하다.

아이디 비번을 넣어도 뭐가 자꾸 틀리다고나 하고, 문전박대를 당하기 흔한 일이라 도중에 그만 포기하고 만다.



그뿐만이 아니다.

전에는 지인의 아파트를 찾아갈 때 몇 동, 몇 호인지만 알면 그 집 현관 앞까지 쉽게 찾아갈 수 있었는데, 지금은 공동출입문에서 부터 들어갈 수가 없다.   


며칠 전 내 차를 가지고 홈레슨을 받으러 갔다가 지하주차장에서 미로에 빠져 애를 먹은 적이 있다. 세대수가 많은 넓은 단지의 아파트 지하주차장은 정말 미로 같았다.

나처럼 길눈이 어둡고 공간감각이 둔한 사람은 도심의 대단지 아파트는 두려움의 대상이다.


눈 앞은 자꾸 흐려져서 돋보기의 도움 없이는 작은 글씨의 설명서를 읽어낼 수도 없고, 읽기는 읽어도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되기도 한다.

청력도 떨어져서 되묻기를 자주하고, 기억력도 떨어지니 둔하고 어리버리한 몸짓~ 이런 못난이가 없다.


빛의 속도로 발전하는 세상에서 이렇게 뒤처지고 어리둥절해 하며 병신이 되어가는 나를 바라보는 일이 참 서글프다.


죽집에서 사들고 온 녹두죽 한 공기로 속을 채우고, 며칠 전 지인이 보내준 시선집을 읽으며 괜히 서러워 눈물을 쏟았다.

이 또한 못난 짓이다.

슬픈 영화도 소설도 아닌데 시를 읽으며 울고 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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