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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어이없다

별것도 아님서 (212)

by 봄비전재복


제까짓게 뭐라고, 나 따위가 언제부터 나라 걱정을 그렇게 했다고, 어느 날부터 뉴스에 저절로 귀가 종그려지고 한숨이 쉬어졌다.

불안한 마음 때문에 일을 두고도 집중이 안되었다. 우울했다.


도대체 말을 들어먹지 않고 제멋대로 허물어지는 몸의 상태도 그렇거니와, 세상 돌아가는 꼴이(이 대목은 미안하다. 별 것도 못 되는 사람이 할 말은 아니지!) 사뭇 위태로워 보였다.


깃발을 들고 구호를 외치며, 지키고자 하는 소중한 것을 위해 거리로 나서서, 풍찬노숙도 불사하는 저들에게 죄인이 된 마음 때문에도 밤잠이 편하지 않았다.


123일 동안 우리는 수시로 적이기도 동지이기도 했다.

아무것도 아닌 남편과 나도, 때로는 대립의 각을 세워 입을 삐죽거리고, 때론 의견일치로 평화로웠다.


그러는 중에 릴레이처럼 번지는 산불이 우리 모두에게 지옥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일주일 넘게 아까운 산림자원이 화마에 휩싸였고, 수많은 인명피해와 재산피해를 남기고 불길이 잡혔다.


그리고 드디어 고대하던 그날이 왔다.

제 자리로 돌아가는 일, 제 자리를 찾아가는 일이 이토록 힘든 일인 줄 함께 견디고, 뼈저리게 깨달으며 우리는 이후로도 오래 함께 흘러갈 것이다.


3월이 가고 4월이 되어서도 자꾸 뒷걸음질 치던 봄도 제대로 자리를 찾아 달려올 줄 믿는다.

눈치 보며 입 다물고 있는 꽃들에게

이제 마음 놓고 피어나라고 주문한다.

피어나라. 마음껏 피어나라.


칠십몇 해를 살아왔음에도 사는 일에 여전히 서툴기만 한 나는, 스케치북을 펼쳐 어설픈 나의 봄을, 꽃 같지도 않은 꽃을 정성껏 그린다.

지독히도 엇나가는 내 몸도 제자리로 돌아오기를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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