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노란 원피스

*날개옷 같은(212)

by 봄비전재복

*노란 원피스 / 전재복



4월엔

노란 원피스 꺼내 입고

한 달쯤 개나리꽃으로 산다

꽃그늘 아래

노랑 병아리 종종걸음도 흉내 내고

샛노란 웃음을 물고 꽃으로 산다

십 년도 더 된 노란 원피스



11월엔

노란 원피스 꺼내 입고

달쯤 은행나무로 산다

황금깃털 수북이 쌓아놓고

누구라도 아낌없이 나눠준다

빈 마음 채워가도록

마구마구 바람에 담아준다

십 년도 더 된 노란 원피스


여든이 되고 아흔이 되어도

다시 입을 수 있을까?

날개옷 같은 노란 원피스




**************************

4월이 무르익으면 숨이 멎을 것 같은 벚꽃구름이 예서제서 피어나고, 가는 곳마다 개나리꽃 환하다. 울타리에도 뚝방에도 산비탈에도...

나는 다시 샛노란 폴라티에 노란색 조끼원피스를 꺼내 입는다. 작년 가을에 입고 두었던 편한 그 옷!


나는 유행에 둔해서 옷이든 물건이든 한 번 사들이면 오래오래 입고 쓰는 편이다.

사람을 사귈 때도 그렇다.

쉽게 마음을 열지 않지만, 일단 마음을 주면 그가 나를 떠나지 않는 한 미련할 만큼 마음에 심어둔다.


내겐 비싼 것도 아닌데 애정하며 계절마다 꺼내 입는 옷이 한두 가지 있다.

편해서 입고, 마땅히 입을 만한 것이 없어서 입고, 그런대로 어울린다고 착각해서 입는다.


지천에 봄꽃들이 환하게 피어나는 4월~

두꺼운 겨울옷을 벗고 하늘하늘한 봄옷으로 갈아입기 직전 계절의 틈새에 입는 간복이다.

노란색 계통 그 옷을 선뜻 입고 나서며 아직은 부끄럽지 않다.

80에도 90에도 여전히 이 옷을 입고 나선다면 망령 들었다고 수군댈까? 올봄에 처음으로 그런 생각을 잠깐 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