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목, 꽃 달다(230)
* 꽃상여 한 채 / 전재복
시나브로 물길이 끊어진 껍데기
쩍 쩍 터지고 갈라지더라
휑뎅그렁 빈 가슴 언저리
몇 가닥 근근이 물길은 터서
살아있다고 살아있었다고
입술만 달싹이다
늙은 봄날
죽은 껍데기 비집고
간신히 밀어 올린 이파리 몇 장
죽을힘 다해
기어이 하늘을 떠받치는
저 치열한 몸짓
한 가닥 풍류는 살아서
꽃송이 몇 개 내걸으니
굽은 등이 다 환하다
해 질 녘
설핏 노을 비끼는 비탈
꽃 상여 한 채 둥둥 떠있다
옥정리 우리 집 마당 한편에는 애늙은이 같은 벚나무 한 그루가 있다.
2007년 여름에 집을 짓고 다른 나무들과 함께 사다 심었으니 , 어느 나무농장에서 몇 년쯤 자라다 왔다 해도 스무 살 이쪽저쪽 일 것이다.
태양광 패널지붕에 그림자를 드리우면 안 되어서 위로 올라가는 우둠지를 잘라주고 분재처럼 낮은 키로 살기를 바랐는데, 이것이 문제였을까? 나무는 몹시 힘들어하며 겨우겨우 목숨을 이어가는 듯했다.
이웃해 있는 동료나무들이 무성하게 잎을 매달 때도 제일 늦게 어설픈 잎을 달았다.
그래도 나이는 있어서 둥치는 제법 굵어졌다. 그러나 한쪽 가지는 완전히 썪어서 손가락 끝으로도 뜯어지고, 다른 한쪽도 속이 비어서 죽지 않았나 걱정이 되는데, 언제나 봄이 끝나갈 무렵 기적처럼 잎이 달리고 꽃도 몇 송이 매단다.
마땅히 다른 곳으로 옮겨 심을 곳도 없어서 안쓰럽게 바라만 보는데, 올봄에는 이파리도 꽃도 제법 보기 좋게 매달았다.
고맙고 대견하고 미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