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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그녀가 돌아왔다

어느 날 자취 없이 시라졌던 그녀(231)

by 봄비전재복


4~5년쯤 된 것 같다. 이유도 모르는 채 내 뜰에서 흔적 없이 사라진 그녀!

신부의 부케처럼 찬란한 흰빛과 진한 향기로 눈부신 꽃다발을 선물하던 흰 백합꽃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도대체 땅속에서 무슨 일이 생긴 일인지 흰 백합은 연기처럼 사라져서 내 뜰에 돌아오지 않았다. 그러기를 4~5년이 지난 것 같다.


그동안 못내 아쉬운 맘에 백합을 두 번 구해다 심었는데 둘 다 흰색은 아니다.


언제부턴가 여름이 시작되면, 앞 방죽에서 초파일 연등 같은 분홍 꽃들이 줄줄이 피어날 무렵이면 마당가 낮은 생나무 울타리를 배경으로 흰 백합이 탐스러운 꽃다발로 피어나곤 했었다.

주변엔 주근깨 같은 점박이로 주황색 참나리꽃과 화사한 원추리꽃이 들러리를 서주고...

그러던 것이 흰색 백합은 사라지고 원추리꽃 나리꽃만 줄줄이 피어나는 연꽃맞이를 위해 자리를 지키며 피어났다.


엊그제, 사나흘 천둥을 동반한 사나운 빗줄기가 잠깐 소강상태인 틈을 타, 아침 일찍 우산을 들고 마당둘레 맨발 걷기를 하는데, 어머나! 이게 누구야? 흰색 백합 두 송이가 꿈인가 싶게 돌아온 게 아닌가?


"맞지? 너 백합! "


반가움에 멈춰 서서 눈을 맞추고 설렘으로 다가가 말을 붙였다.

강한 빗줄기에 행여 쓰러질까 봐 얼른 고추 지지대를 찾아다 옆에 보초를 세워줬다.

겨우 줄기 하나에 달랑 두 송이지만

얼마나 보고 싶어 안타까웠던 흰 그녀인가?

올해는 두 송이로 돌아왔지만 내년에는 몇 송이 더 피어줄 것을 기원하며 자꾸만 눈길로 더듬는다.


예쁘지 않은 꽃이 어디 있을까만 내 뜰에서 까닭 없이 사라져서 몹시 서운했던 꽃! 땅 밑 어느 어둠 속에 갇혀있다 왔는지 여리고 해맑게 돌아온 그녀가 너무너무 반갑고 사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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