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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因緣) 또는 인연(人緣)

소소한 행복(232)

by 봄비전재복


사람과 사람사이의 연결고리를 인연이라고 한다면, 그 고리의 양 끝에는 좋은 감정으로 서로를 끌어당기는 어떤 힘이 작용할 것이다.

물론 예외적으로 두 번 다시 만나고 싶지 않은 악연도 있겠지만 그런 일이야 생각하고 싶지 않다.


살아가면서 오다가다 옷 깃만 스쳐도 몇 겁의 좋은 인연이 쌓인 결과라는데, 혈연이 아니지만 자주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밥을 먹고 서로에게 마음 길을 트는 사이라면 이건 보통의 연분이 아닐 것이다.


나이 들어가면서 그런 좋은 인연으로 맺어지는 사람들이 곁에 있다는 것은 축복이 아닐 수 없다.

지금 나는 어떤 조건도 전제하지 않고, 마음이 끌리는 사람들과 만나고 교감하는 관계가 그렇게 고맙고 좋을 수가 없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젊은 날에는 어떤 목적을 깔고, 보이지 않게 손익을 셈하며 사람을 만나기도 했다. 상대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 보잘것없는 능력을 인정받기 위해서 애썼다.

그런 관계란 사람을 쉽게 지치게 만들고, 때로는 깊이 마음을 다치게도 했다.

밖으로 드러나는 상처가 아닌 마음의 상처는 오래 쌓이다 보면 우울증이나 분노조절장애를 일으켜서 자신은 물론 타인을 해하기도 한다고 한다.


단언할 수는 없지만 이런 위험요소는, 빠른 속도로 변화하는 현대사회의 복잡한 관계망 속을 살아가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겪는 피할 수 없는 과정일 것이다.


배경도 인맥도 보잘것없는 내게도 이런 위기는 늘 따라왔으나 다행스럽게도 나는 스스로를 눌러 앉히는 방법을 택했던 것 같다.

충분하지는 않지만 손에 닿는 대로 글 읽기를 좋아했고, 어설프지만 글쓰기를 좋아했다.


삶의 길목에서 때때로 맞닥뜨리는 분노와 억울함, 소외감과 상실감을, 손에 잡히는 대로 가리지 않고 읽고 쓰며 제멋대로 널뛰는 감정을 다스렸다. 그리고 가늘고 여리지만 희망의 불씨를 애써 지켜온 것 같다. 언젠가는 나만의 색깔과 향기를 지닌 한 송이 꽃을 피우리라는!


그렇게 적지 않은 나이테를 포개다 보니, 남이사 알아주든 말든 이만하면 그럭저럭 잘 살아왔구나!

죄짓지 않고, 양심에 부끄러울 일 행하지 않았으니 되었다 싶다.

그러나 이건 극히 주관적인 평가이니 무심코 던진 말이나 행동이 누군가에게 상처를 남겼을지는 알 수 없지만, 의식적으로 날을 세워 할퀸 기억은 없다.

(그래도 혹시 입을 삐죽이는 이가 있다면 그대여, 기억에 없는 내 죄를 용서하시라!)


지금 내가 사소하게 누리는 이 평화로운 일상의 여유가 이 생에 내가 뿌리고 온 결과의 보상이라고 스스로를 쓰다듬는다.


'애썼어. 그만하면 잘 살아온 거야!'

'이제 추하지 않은 모습으로, 잘 돌아가기만 하면 돼!


어제 오후에도 마음결이 맞는 지인에게서 불쑥 백련을 보러 가자고 연락이 왔다. 점심식사 후이니 셋이 말을 맞춘 뒤 가볍게 차를 몰고 나섰다.


그렇게 한적한 사찰을 찾아 푸른 연잎들의 박수갈채와 띄엄띄엄 백련 꽃송이들의 합장배례를 받았다.


평일 오후라서 인지 한적하고 아담한 사찰에는 우리 세 사람 말고는 사람이 없었다. 절집 초입에 있는 카페도 화요일은 쉬는 날이라니, 모처럼 연잎빙수를 맛보려던 기대가 무너질 찰나,

닫힌 문 안쪽에 누군가 상담을 하는 스님 한 분과 방문객이 눈에 띄었다.

동행한 한 분이 문을 두드리고 조심스레 사정을 얘기하자, 스님이 흔쾌히 안으로 들어오라 하셨다. 우리 세 사람이 나쁜 인상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쉬는 날이지만 특별히 우리 셋을 위해 연잎 빙수와 연잎차를 준비해 주셨다. 물론 값이야 그곳으로 이끌어주신 천사님이 지불했다. 집에 가서 식구들과 먹으라고 연잎밥까지 사서 안겨주었다.

천사여!

당신은 복을 지었지만 나는 또 빚이 늘었구려!

동행한 다른 분은 또 다른 예쁜 선물을 준비하셨는데, 나만 네 바퀴 달린 애마를 모는 일 외엔 한 일이 없다.

그래도 우리 중 누구도 불편하지 않았으니, 좋은 인연의 그물 한쪽이 은은한 향기로 추울~렁 깊게 흔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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