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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쳐버린 단독 탈출 계획

수항골 숲 속시화전(233)

by 봄비전재복


며칠 전부터 세워둔 혼자만의 은밀한 탈출계획을 어제 늦은 밤에 남편에게 고했다.


내일 아침은 새벽운동을 건너뛰고 진안에 다녀오겠다, 네비 검색도 해 놓았고, 가지고 갈 물건(시화액자, 작은 선물)도 이미 차에 실어뒀다. 네비로 검색해 보니 1시간 15분 정도 걸린다니 천천히 조심해서 다녀오겠다고.

펄쩍 뛰며 반대할 남편의 반응을 각오했으나 남편은 의외로 담담하게 들으며 처음 가는 길을 혼자서 갈 수 있겠느냐 물었다.


나는 최대한 나긋나긋한 말씨로 그곳에 꼭 가야만 할 이유를 설명하고 천천히 조심해서 다녀오겠노라고 했다.


아침 5시 30분에 일어나서 발소리도 조심조심 남편이 깨지 않게 준비를 하는데 남편이 따라 일어났다.

정말 혼자 갈 수 있겠느냐, 맘이 놓이지 않으니 자기가 같이 가야겠다고 기사를 자청하고 나선다. 걱정 말라고 몇 번을 사양했지만 혼자 보내놓고 집에서 맘 졸이느니 같이 가겠단다.


근래에는 행사가 있어 전주만 다녀온다 해도 잔소리를 하는데, 진안고원까지는 영 안심이 안 되는 모양이었다.

하긴 자주 만나는 내 친구들 중에 차를 가지고 다니는 사람은 이제 나 말고 한 명 밖에 없다. 어제 만난 친구도 자식들의 성화에 못 이겨 한 달 전에 운전면허를 반납했다고 했다.


나는 양쪽 눈 백내장 수술 후, 빛에 취약해져서 야간운전이 어렵다.

허리 통증 때문에 장시간 운전도 힘들다.

시내에서야 문제가 없지만 시내를 벗어나거나 장시간 운전은 부담이 된다.


어쨌든 은밀하게 계획했던 혼자만의 탈출은 수포로 돌아갔고, 덕분에 칠십 후반의 老기사가 모는 차를 타고 편안하게 다녀왔다.


이른 시간이라 속도를 내도 되련만

90km 전용차로에서 조차 7~80km대로 운전하는, 너무 조심(소심?)스런 老기사 때문에 속이 부글거렸으나, 참을 인(忍) 자를 수없이 속으로 되뇌며 입을 다물었다.


그렇게 예상 시간보다 한참 늦게 무사히 진안고원에 도착했다. 수항리박물관 주변 숲 속에서 개최되는 이비단모래 시인과 전국 각지에서 보내온 시인들의 시를 함께 전시하는 숲속행사장!

글로는 자주 만났지만 직접 만나는 건 처음인 비단모래시인 부부와 반갑게 만났다.


행사장을 두루 둘러보고 비단모래 시인 부부와 우리 부부 기념사진도 찍었다.

이장님을 비롯 마을 주민 세 분이 일찍부터 나와서 행사준비를 돕느라 진땀을 흘리고 있었다.


천천히 행사도 보고 식사도 하고 가라는 걸 마다하고 우리는 해가 올라와 뜨겁기 전에 군산으로 돌아왔다.


시인이며 낭송가인 이비단모래 시인과 부군 지중해(가수)님의 열정과 겨우 열댓 명의 주민이 힘을 합쳐, 한적한 산골마을을 멋들어진 문화공간, 문화체험의 공간으로 만들어가고 있음에 감탄과 큰 응원의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번 행사로 수항골이 더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 속에 북적이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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