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짝 쫄았다(258)
황석영선생님이 군산으로 오셔서 기거하시며, 하제 팽나무를 소재로 군산사람들의 이야기를 소설로 쓰신다는 이야기를 듣고 많이 기다렸다.
그리고 드디어 그 소설이 2025.12.12. <할매> 라는 제목으로 출간된 것을 감축드린다.
당장 사서 읽어야 될 특별한 이유가 내게는 있었다.
세계적인 거장 황석영선생님이 팽나무를 왜 여성인 <할매>로 비유하셨는지 그 이유를 꼭 알아야 했다.
<2025년 2월 16일 서툰 솜씨로 그려본 600살 팽나무 할아버지>
600살 하제 팽나무! 같은 나무를 두고 무명의 삼류시인인 나는 '할아버지팽나무'라고 불러드렸는데, 선생님께서는 '할매'라고 불러 장편소설을 내놓으셨으니 감히 게임이 되겠는가?
나는 정말 바짝 쫄 수밖에 없었다.
어느 겨울, 600살 하제 팽나무를 마주한 순간 나는 온몸을 관통하는 전류를 느꼈다.
묵묵히 한자리를 지키며, 마을의 안녕과 오랜 전통을 대물림하고, 마을의 대소사를 정리해 주시던 큰 어르신을 떠올렸다. 힘없는 나라 민초들의 애환을 함께 견디며 마지막 올곧음으로 자리를 지키는 수호신으로 읽었다. 큰 어르신의 일갈이 쩌렁쩌렁 들리는 것만 같았다.
만약 팽나무가 암수의 구분이 있다면, 그런데 내가 성의 정체성을 틀리게 말했다면 큰일이 아니겠는가?
먼저 책<할매>를 세상에 내놓으며 SNS에 올라온 황석영선생님의 인터뷰 말씀을 귀 기울여 들었다. 선생님께서는 팽나무는 암수동체이니 명확히 말하자면 중성이라 할 수 있다는 말씀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나는 '할아버지'라 불렀고, 선생님께선 '할매'라고 하셨지만, 둘 다 틀린 말은 아니지 않겠는가?
'할아버지'라고 잘못 불렀다고 불려 가서 곤장 맞을 일은 없겠다 싶으니 마음이 놓였다.
소설 <할매>는 도입부부터 진수성찬이다.
수많은 새, 꽃, 나무, 크고 작은 생물들, 촘촘한 인연으로 대를 이어 만나는 사람들이 융합하고 협연하는 웅장하고 아름다운 오케스트라이다.
개똥지빠귀 흰 점박이와 개암이 날개의 사랑이야기와 험난한 여행! 천적 황조롱이의 공격으로 크게 다치고 결국
홀로 죽어가는...
흰 점박이 개똥지빠귀의 몸속에 들어있던 팽나무열매가 사체와 함께 흙에 묻혀 거목 팽나무로 자란다는 작가의 상상력에 4년이라는 공력이 아름다운 문장으로 살아있다.
소설을 끝내고 작가의 말, 감사의 말을 통해 소설 <할매>의 탄생에 기여한 수많은 조력자들이 있었음을 작가는 밝히고 있다.
감히 비교거리 조차 될 수 없는 내가 괜한 근심으로 며칠간 엄청 쫄았다는 웃지 못할 이야기를 늘어놓으며,
나의 부족한 글 <할아버지팽나무의 큰기침>을 마음 편히 올린다.
<2024.10.1. 발간, 전재복 제6시집 P28~29쪽에 수록>
*할아버지 팽나무의 큰기침
전재복
시방은 허허벌판 하제뜰
질긴 목숨 잡초만
쉰 목소리로 망향가를 부른다만
삼천여 가솔들이
들고나며 왁자한 날도 있었느니
황토물 바다를 얼싸안고
지지고 볶으며 삶을 캐고
논배미 밭두렁 바지런히 일구던 시절
하늘을 우러러 안부를 묻고
땅에 엎드려 올곧게 답장을 쓰던
우리 땅 우리의 시절이었네
조선왕조 500년을 딛고
왜놈에 짓밟힌 치욕의 세월을 넘어
해방이라 만세를 불렀었네
빼앗긴 들에 봄이 온 줄 알았더니
느닷없이 내 마당을 내노라더니
내 식구 내 친구 사돈의 팔촌까지
깡그리 쫓아내고 쇠울타리를 둘러쳤네
다 떠나도 나는 못 가리
600살 쇠고집으로 뿌리를 지켰네만
허허, 이제는 우리 동네 땅 주인이 미쿡이라네
언제 우리가 꼬부랑 국적을 달랬던가
장죽 담뱃대로 대청마루 땅땅 두드리며
팽나무 어르신 큰기침 한 번 하셔야겠다
여기는 내 땅이여
내가 아직 시퍼렇게 살아있단 말여
쩌렁쩌렁 호통 한 번 치셔야겠다
<'시발詩勃', 전재복 제6시집, 2024.10.1 봄날의 산책> P28~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