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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비전재복 Feb 04. 2023

*입춘바람에게 고함

    詩가 있는 풍경(43)

입춘~ 바람 끝은 차지만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따사로워 보인다.

대문간에 붙이는 입춘방처럼 오래된 글 한 편 찾아올린다.

마침, 전에 어떤 행사장에서 느닷없이 불려나가 낭송했던 자료도 찾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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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춘바람에게 고함  / 전재복




겨우내 들짐승처럼 울부짖던

까칠한 성깔 부디 잠재우시라

잔털 보송한 어린 잎 간질이는 숨결로

푸르게 일어선 보리밭

조심스레 내딛는 걸음으로

곱게 벌어지는 여린 꽃대 위

살며시 얹어보는 손길로

그런 몸짓으로만 오시라


지난 겨울 그대는

전장의 장수처럼 용맹스럽고

천하에 제왕처럼 위엄을 떨쳤으니

허리춤에 감춘 무뎌진 칼자루마저

멀찍이 던져두고

부디 부드러운 낯빛으로 오시라


휘돌아 강가에 이르거든

사납게 헤집지는 말고

조신한 손길로 물결을 어루만져

햇살이 보석처럼 반짝이게 하고

찬박찰박 젖어드는 강기슭이 꿈꾸게 하시라


누르고 눌러도 고개 드는

사나운 심사 한 꼭지 있거든

가죽주머니에 꽁꽁 싸두었다가

여름날 시원하게 빗줄기에 풀어내시라

엉엉 소리내어 울어도 보시라


꽃 피는 계절에 오실 때는

부디 부드러운 낯빛으로 오시고

꽃 지는 계절에 오실 때는

한 곡조 풀피리나 불며 오시라

결고운 몸짓으로만 오시라


#제4시집 '잃어버린 열쇠' 수록<2019. 솔>

#행사장에서 돌발 시낭송

https://youtu.be/sZhZNutnek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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