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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비전재복 Feb 12. 2023

*암시랑토앙케

    정양시인의 북콘서트를 다녀와서(45)

*암시랑토앙케

(정양 시인의 북콘서트에 다녀와서)


"아 참 아름답고 넉넉하다. 저런 모습으로 늙는다면 더 욕심 낼 일이 없겠다. "


낯선 길을 찾아가는 일에 유난히 겁을 내는 내가, 어디 쯤인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는 장소를 혼자서 한 시간여 운전해서 찾아가는 일은 쉽지않은 일이다. 게다가 오후 늦게 돌아올 일은 더 큰 부담으로 다가왔다.

그럼에도 일반우편이 아닌 등기로 받은 초대장에 대한 예의상, 초대장에 적힌 스물 몇 명의 초대하는 사람들의 면면을 보고는 도저히 궁금증이 생겨서 견딜 수가 없었다.

단 한 번도 직접 만난 일이 없는 접점이 전혀없는, 시인 정양(1942넌생) 선생님은 내겐 그저 고명한 선배문인 일 뿐이다.

어렵게 찾아간 콘서트장은 안내된 시간보다 일찍 도착했음에도 자리가 거의 차 있었다. 다행히 뒷쪽에 한자리를 끼어앉을 수가 있었다.


이번 출판기념 콘서트는 老시인의 제자와 후배들이 선생님 몰래 마련한 자리라고 해서 한 번 더 놀랐다.

명실공히 성공한 문인을 눈앞에서 보고 있자니 많이 부럽고 존경스러웠다.

이지역의 명문고등학교 국어선생님과 대학교수를 거치며 길러낸 수많은 제자와 후배들이 老시인을 진심으로 아끼고 좋아하는 모습들이 너무너무 아름답고 따뜻했다.

老시인은 다소 어눌한 말씨로 진행자의 질문에 한참씩 뜸을 들여가며 대담을 이어갔다.

번갈아 게스트로 올라온 후배 혹은 제자들과도 느릿느릿하지만 격의없이 따뜻한 회상을 꺼내놓으며 관객과 함께 행복한 시간을 만들어갔다.



첫 인사를 해준 김용택시인은 오늘 지금 이 순간이 아니면 어느 세상에서 우리가 이렇게 한자리에 마주할 수 있겠느냐며 귀한 자리임을 확인했다.

윤홍길 소설가는 사회자가 정양시인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어떤사람이냐고 묻자

"정양시인은 한 마디로 표현할 수 없는 사람이다.

그의 시는 음정도 박자도 다 틀린것 같은데 읽고나면 아! 절창이다! 하는 감탄을 하게 된다"고 말했다.

큰 키 구부정한 자세로 휘적휘적 걸어가는 모습의 선생님, 술을 좋아하고 후배와 제자를 사랑한 선생님, 지금도 여전히 따뜻한 사랑의 그늘을 넓게

드리우고 있는 시인,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그의 이름을 부르고 그의 시에 감동하고 좋아하는 것일 게다.  


이번에 내놓은 시집의 제목이 참 재미있다.

'암시라토앙케'

민족상잔의 아픔과 찢어지게 가난했던 시절 가난한 이웃들의 이야기로 민화를 그려낸 시집이다. 어떤 고난이 할퀴고 지나가도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아무렇지 않게의 전라도 방언이다.


"암시랑토앙케" 시집을 받아들고 와서 나는 한 작품도 건너뛰지 않고 앉은 자리에서 읽어버렸다.

읽으면서 곳곳에서 툭툭 터지는 웃음과 저릿한 감동을 맛보게 되는데 소리나는 대로 받아쓴것 같은 차진 전라도 사투리가 그 맥을 단단히 쥐고 있다.

아마도 대박이 날것 같은  예감이다. 부디 그러기를 빈다.


작가가 애써서 책을 내고 살점을 떼어주듯 책을 나눠주건만, 과연 받는 사람들이  책을 주는 작가의 애틋한 마음을 얼마나 헤아릴까?

귀찮아 하며 한쪽에 처박아 두었다가 잊혀지는 일은 또 얼마나 많을까?

너무 쉽게 작가라는 이름표를 달아주는 상업화된 문단의 문제를 따지고 싶지는  않지만, 넘쳐나는 시인과 수필가들 나를 포함한 이름없는 문인들이 쏟아놓는 죽은 말들을 대체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꾸 퍼내야 맑아지는 샘물인듯 두레박질을 해댄다. 아니 고이기도 전에 박박 바닥을 긁어대지는 않는지, 여물지 않은 쭉쟁이 언어들로 세상에 쓰레기를 보태고 있지는 않는지 생각하면 두렵고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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