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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비전재복 Mar 13. 2023

*나의 봄을 유예시킨다

     쓰담쓰담 나를 응원해(54)

겨울부터 이어진 가뭄에 초목도 사람도 지쳐갔다. 다른 지역의 비소식을 부러워하며 부옇게 뜨는 미세 먼지와 마른 바람에게 눈을 흘기곤 했었다.

그랬는데, 어제 새벽부터 애타게 기다리던 단비가 내려 비로소 봄다운 봄을 맞겠다고 활짝 반겼다.

살짝 스치기만 해도 먼지가 풀석일 것같은 뜰의 나무와 꽃들과 봄풀들이 간만에 빗물샤워를 하고 얼마나 개운해 할지 내 몸이 다 시원했다.

그러나 새벽부터 제법 기세좋게 천둥소리 서너 가닥까지 곁들여 폼나게 내리던 빗줄기는 아침 나절까지 주춤거리더니 그것으로 끝이었다. 그래도 먼지를 씻어내기엔 충분했을 테니 얼마나 고마운지...!


그런데 저녁참이 되자 어디에 숨어있다 나왔는지 독한 냉기를 품은 칼바람이 몰아쳤다.


이제 마악 화사하게 꽃불을 밝힌 매화꽃이 걱정되었다. 샛노랗게 웃음을 터뜨린 산수유꽃도, 여린 새순 사이로 꽃대를 내밀던 수선화도 칼바람에 다칠까 걱정되었다.

그러나 정작 칼바람보다 더 무서운 광풍은 방 안에서 일어났으니...

며칠 전 퇴원하여 집에서 기력을 회복해 가던 시모님이 화장실 가시다 낙상사고를 당하신 것이다.

꼼짝 못하고 누운 체 고통을 호소하시는데 눈앞이 캄캄했다.

119를 불러 의료원 응급실로 모셨다. 어린 손녀도 있으니 나는 대기조로 남고, 남편이 어머님을 모시고 구급차를 타고 갔다.


밤 늦게 전화로 상황을 물으니 어머님은 고관절 바로 아래 부분이 골절되어 수술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더 큰 문제는 코로나 양성반응이 떠서 내일(월요일) 아침 다른 병원을 알아보고 옮겨야 한다니 너무 기가 막혔다.

종합병원에서 병상이 없다고 환자를 밀어내는 격이니 위급환자라면 이런 경우 큰일을 당할 수도 있겠다.


거의 잠을 반납하고 새벽에 남편과 통화를 했다. 70대 중반을 넘어선 남편도 젊은이는 아닌데, 응급실에서 꼬박 밤을 세운 남편이 병이 날까봐 걱정이다.

구급차를 타고 갔으니 남편은 차를 가지러 집에 와야 해서, 내가 차를 가지고 나가려는 참에 택시가 잡혔다고 집에 있으란다.


잠 한숨 못자고 어머니 곁을 지킨 남편이 어제 챙겨가지 못한 물품을 챙기러 왔다.


7시도 되기 전에 아침 밥을 먹고

다시 병원으로 가야하는 남편,

다행히 지난 번 시술을 받은 전북대로 옮기기로 하고, 시모님은 구급차로 남편은 자기차로 가면 된다고 한다.

남편은 10분만 등을 펴겠다고 안방에 누웠다.

일흔 여섯~ 저이도 노인이 아닌가? 딱하고 마음이 아팠다. 어쩌다 4남매의 맏이가 되어 혼자서 무거운 짐을 지고 가는지...


10분도 채 못되는 그 시간마저도

왜 빨리 안오느냐고 어머님이 재촉하는 전화가 왔다.


삶은 苦海라던가~ 사는 일이 수월치가 않다. 한고비를 넘고 조금 숨을 돌리려 하면, 다음 번 파도가 이내 덮쳐온다.


손녀를 스쿨버스에 태워 등교시키고, 딸은 직장으로, 나는 학습관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오전 두 시간 강의를 마치고 남편에게 전화를 했더니 수술마저도 바로 진행할 수 없다한다. 고령인데다 심장판막 시술받은지 며칠 지나지 않았고,

코로나 음성반응이 나올 때까지 음압병실에 격리되어 있어야 한다니, 환자도 가족도 참으로 난감한 노릇이다.

어제는 기다리던 봄비를 만나

구겨진 나의 봄을 일으켜 세우겠다 다짐했는데, 하루 만에 나의 봄을 다시 상자 속에 집어 넣어야 할까보다.

나의 봄이여, 어쩔 수 없이 다시 너를 유예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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