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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비전재복 Mar 12. 2023

*봄비 내린 날의 소묘

    쓰담쓰담 나를 응원해(53)

아침 6시 쯤 투둑 투두둑~ 어렴풋이 들리는 빗방울소리에 눈이 떠졌다. 비 예보는 있었어도 늘 비켜가고 어긋났는데 설마 그 도도한 비가 내리는 걸까?

거실로 나와 블라인드를 올려보니 정말 제법 굵게 비가 내리고 있다.

겨울 가뭄이 봄 가뭄으로 이어지고, 다른 지역은 더러 비도 내렸다는데 내가 사는 지역은 내내 마른 바람 속에 미세먼지와 안개만 찾아올 뿐 비소식은 없었다.


밭은기침 같은 천둥 서너 개가 울고 빗줄기가 제법 거세다.

봄이 왔다고는 하나 뿌연 먼지 속 마른 풀더미 아래 새싹들도, 딱딱하게 굳은 껍질을 쪼개고 새움을 밀어내는 나무들도 많이 힘들어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당 끝 수선화는 우부룩하게 촉을 올리고, 산수유꽃 매화꽃이 조롱조롱 꽃등을 밝혀서 내 뜨락에 봄이 왔음을 알렸다.

백목련은 아직 솜털 보송보송한 봉오리를 부풀리고 있을 뿐 입을 다물고 있고, 수수꽃다리도 장미동백도 비늘 껍질 마스크로 꽃봉오리를 꼭꼭 싸매고 있다.

겨우 갈증이나 달래 줄 나그네 같은 비일지 모르나 참 고맙고 반갑다. 아직 누렇게 푸석거리는 잔디마당도 미세먼지에 목이 잠긴 나무도 풀들도 참 개운하겠다.

얼마나 오랫만에 묵은 때를 씻어보는가!

빗물로 말끔히 씻고 비로소 봄날의 新房에 수줍게 몸을 눕히겠다.

가뭄은 내게도 겨울에서 봄으로 회색 빛인 체 무거운 휘장을 드리우고 있었다.

2월 끝자락부터 지독한 몸살감기에 발목을 잡힌 체 3월로 넘어오면서 무겁게 심신을 내리눌렀다. 엎친 데 덮친다고 시낭송회 회원들과 함께 하는 삼일절행사 준비도 너무 힘이 들었다.

내게 주어진 귀한 기회였기에

여기저기 균열이 생기는 심신을 책임감으로 동여매고 행사를 치르고 났더니, 육신이 아우성을 치며 결국 부실한 몸을 쓰러뜨렸다.

매달 더러는 열흘 간격으로 입원과 퇴원을 되풀이하는 구순의 시모님 곁을 지키며 속절없이 나 또한 무너지고 있었던것이다.

그나마 무겁고 칙칙한 분위기 속에서도 일곱 살 어린 손녀는 어린이집을 졸업하고 3월에 초등학생이 되었다.

이 밝고 맑은 천사의 날개 짓이 아니라면, 이 고운 파랑새의 희망의 재잘거림이 없었다면

나의 삶은 그대로 고사목처럼 주저앉지 않았을까 싶다.

늦어도 한참이나 늦은 나이에 늦둥이 손주를 키우며, 친구들은 손주의 고등학교, 대학교 입학소식을 알리는 마당에 나는 내 사랑, 나의 천사 은성이의 초등학교 입학소식을 자랑한다.


모래시계의 부단한 자리옮김 같은

내 인생시계는 양팔저울의 무게 추가 매시간, 매초 수평을 잡느라 안간힘을 쓴다.

거역하지 못할 죽음에 이르는 길에서 내 팔을 끌어당기는 구순의 시모님, 다른 한쪽에선 삶의 새 힘으로 영차영차! 끌어당기는 어린 천사의 날개짓이 팽팽하게 줄다리기를 한다.


간만에 빗줄기에 개운하게 몸을 씻은 내 뜨락의 나무처럼 풀처럼

나도 이제 어둠에 갇힌 마음을 일으켜 세워야겠다.

한 줄기 빗물에 몸을 씻은 초목처럼 봄빛을 따라 희망의 소리에 귀를 열어야겠다.

한 줄의 글도 쓸 수 없었던

답답하고 우울했던 회색빛 시간을 천천히 걷어내야겠다.


비에 젖은 뜰을 밟으며 이제 비로소 숨통이 조금 트이려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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