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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비전재복 Mar 17. 2023

*억울한 무기력

    詩가 있는 풍경 (55)


*억울한 무기력

                                           전재복



몇 년에 걸쳐 시름시름 앓던

벚나무 하나

반 쪽은 이미 삭아서

손끝으로도 뜯겨 나간다


그런데도 참 용하다

반도 채 못남은 등뼈를 타고

땅밑 소식을 한사코 퍼올린다

수천 번 오르내리느라

땀 젖은 물관을 따라

머잖아 줄줄이 꽃불도 밝힐 게다

작년 처럼 재작년 처럼

슬프도록 환한 꽃불


가만히 깜깜한 구멍에 귀를 들이대니

저 안 깊숙이 누가

동굴 하나 파고 있나보다

무덤같은 적막 속에

사부작 사부작

물길 트는 소리 환청으로 듣는데


거기 어느 음습한 틈새

살아있는 나무의 살점을 먹어치우는 애벌레

늙은 송충이의 왕성한 식욕도

숨어있는갑다

갑자기 심장이 따끔거린다

온몸이 근질거린다


어느 순간

몽땅 먹혀버릴 것 같은

두렵고 억울한 이 무기력



*********************************

관을  짜고 있는 나를

관 속에 들어가 눕는 나를

뚜껑을 덮고 쾅쾅 못질하는 나를

여러 명의 내가 합심하여 나를 묶어놓고 몹시도 슬픈 목소리로, 아니 소리도 나오지 않는 목줄을 비틀어 짜며 弔詞를 쓰고, 읽는 나를 추가한다.

영혼과 육체의 분리~

유체이탈을 경험하는 중이다.

나의 시간은 어디서부터 죽어가고 있었던가?

죽어가는 시간을 살려낼 응급 처방전을 찾는 중이다.

부디 늦지 않았기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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