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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비전재복 Mar 25. 2023

「고양이에게 말 걸기」

    백종선작가의 싸인본을 받고(57)

*백종선의 소설 「고양이에게 말 걸기」작가 싸인본을 받고



시간을 죽이고 있는 건지,죽어가는 나를 바라보고 있는 건지

그냥 시간의 방관자인 양 살고 있다.


누군가 네 마음을 색칠해 보라고 물감을 내민다면, 나는 주저없이 암회색의 물감을 듬뿍 쏟아붓고 두 손바닥으로 미친듯 휘저을것 같다.


'이러지 말아야지, 이러는게 아니야!' 저 깊은 곳에서 정신차리라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리는것 같지만, 도대체 이 짙은 안개를 걷어낼 기력이 없다.


사람을 만나는 일도 싫어서, 최소한의 생존을 위한 외출 외엔 집콕을 해온지 거의 한 달이 되어간다.

마음이 성치않으니 몸은 스스로 알아서 무너져내린다.

떨어지지 않는 기침과 몸살기운, 두통약을 자주 털어넣고, 신경과로 안과로 치과로 병원을 순례한다.


오직 세상과의 만남은 SNS에 의존한 양, 눈과 손가락만 부려먹는 게으른 방관자! 그것이 요근래 내 모습이다.


여기 저기서 보내주는 책들을 손 닿는 곳에 수북히 쌓아놓고,

겨우 저자의 말 혹은 서평을 읽고 덮어놓고는 늘 마음만 무거워한다.


***

3월 25일~스마트폰에 도착한 생일축하 메세지가 수북하다.

음력 3월 생인데 양력으로 sns에 뜨는 생일 안내에 페북

친구들이 보내준 마음선물이다.


가끔 올리는 우울한 이야기에도 따뜻한 관심을 주시는 고마운 분들~ 남의 눈 의식하며 차리고 나서지 않아도 좋은 이 공간의 편안함이 참 좋다.

오늘은 수북하게 쌓인 생일축하 메세지와 선물 덕분에 모처럼 습습한 안개를 밀쳐내고 책 한 권을 골라잡았다.


책의 안쪽 표지를 보니 백종선

작가님이 2월17일에 싸인을 해서 보내준 책이니 받은지 벌써 한달이나 지났다.

일부러 전화로 주소까지 물어보시고 보내주신 작가 싸인본인데...

잘 받았다고, 천천히 읽겠노라고 문자만 보내고

이태껏 다른 책들과 함께 쌓여있었다.

생각의 주인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니, 책도 눈에 들어오지않고 글도 써지지 않는다.


"너였구나~"

마음 다잡고 앉아 책표지의 고양이를 한 번 쓰다듬고 책장을 넘겼다.

이번 책에는 여덟 개의 짧은 이야기들을 품고 있다. 백종선작가의 소설은 전에도 몇 번 읽어봐서 그녀의 이야기 스타일이 낯설지 않다. 아무런 힘도 들이지 않고 감성을 파고 들기도 하고, 때로는 엉뚱 발랄한 이야기로 읽는 재미를 더한다.

여덟 개의 제목들이 모두 궁금증을 일으키지만, 오늘은 한 꼭지만 집중해서 읽어볼 테다.


다행히 표제작인 「고양이에게 말 걸기」가 맨앞에 있어서 앉은 자리에서 읽을 수

있었다.


***

가슴 안쪽에 통증이 일었다.

아버지의 감정쓰레기를 고스란히 받아내는 아들 민호와 그걸 지켜보다 울화가 치미는 어머니,

가족이라는 이름에 가려 무심코 가해지는 언어폭력과 상처...


결국 집밖으로 뛰쳐나온 민호와 길냥이 참깨와의 관계, 마음 붙일 곳을 찾아 헤매는 한 청년의 쓸쓸한 서성거림이 안쓰러웠다.

누구는 번듯한 직장에 취직하고 싶지 않아서 안 하겠는가?

안 되는걸 어쩌라고?

모아둔 돈은 바닥 나고 갈곳도 마땅찮고, 아버지 말대로 부모 목에 빨대 꽂고 사는 주제에 무슨 할말이 있을까마는 애써도 안 되는데 어쩌란 말인가?

결국 말못하는 길고양이에게나 속엣말을 해보는 것이지.

취업도 결혼도 포기할 수 밖에 없는 수많은 청년백수들의 답답한

마음이 느껴졌다.

딸랑거리는 주머니 속의 동전을 끌어모아 길냥이의 먹을 것을 사들고 어딘가로 숨어버린 고양이 참깨를 찾아 헤매다 반가운 해후를 하려던 찰나, 진짜 주인 여자가 나타나 고양이 도둑취급을 하며 고양이를 안고 사납게 사라질 때, 애먼 깡통이나 발로 차보는 무력감~


어정쩡 마흔을 넘겨버리고 세상 달관한 듯 말이 없던 네가, 사는 일이 도대체 재미가 없다는 중얼거림이 가슴에 무겁게 놓이는 요즈음이다.

어쩌겠느냐, 사람 사는 일이 내 맘대로 되어지지 않는 것을~

책 속의 청년 민호도 현실 속의 청년 너도 딱하고 안쓰러울 뿐...!

그래도 얘야, 부디 가족 안에서 상처받는 일이 없기를 간절히 바란다.

오늘이 양력으로 기념하는 네 생일이구나. 네가 얼마나 환한 빛으로 우리에게 온 줄 아니?

사랑한다. 부디 세상에 기죽지 말아라.


「고양이에게 말 걸기」이야기의 마지막 부분을 옮겨 적어본다.


- 이 광막한 우주가 먼짓덩어리라는 거 혹시 아니? 미세한 먼지 같은 존재, 내 인생이나 너의 생이나 뭐 있니? 세월 반 아픔 반 다 거기서 거기 아니겠니. 의지대로 살든 감정으로 살든 남을 해치지만 않았으면 좋겠네. -


#백종선소설집

#고양이에게 말 걸기(도서출판 청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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