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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비전재복 May 30. 2023

* 5월을 보내며

     쓰담쓰담 나를 응원해(78)


유난히 빽빽하게 들어찬 섬기고 기념해야 할 날들이 많았던 달, 퍽이나 무거웠을 짐을 군말 없이 안고 업고 손 잡아서, 꼭 맞는 그 자리에 내려주고 개운한 얼굴로 서 있는 오월을 보낸다.


콧등에 송골송골 땀방울은 맺히지 않았는지,

종종걸음 치느라고 발바닥도 뜨거웠을 텐데...

애썼다고 고마웠다고 가만히 두 팔 벌려 안아주고 싶었는데, 등이라도 가만가만 쓸어주고 싶었는데...



아! 다행이다. 내 맘을 읽은 듯 한 사흘 빗줄기가 다녀갔다.

희뿌옇게 시야를 가리던 미세먼지, 노랗게 쌓이던 송홧가루, 눈발처럼 날리던 나무들의 홀씨까지도 깨끗하게 씻어 내렸다.

온 세상의 초록을 초록답게 닦아주었다.

좍좍 세찬 빗금을 그으며 내리는 빗줄기에 묵은 먼지로 숨 막혀하던 방충망과 유리창까지도 시원하게 때를 벗고, 까닭 없이 무겁고 우울하던 내 맘도 한 꺼풀 맑아졌다.


더러 사람이 예측하지 못한 허술한 곳이 비 피해를 입은 곳도 있었지만, 어쨌든 주어진 책임을 성실하게 수행하고 떠나가는 5월과, 잔치마당의 끝자락을 말끔히 설거지한  빗줄기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밤새 드리워진 어둠을 걷어내고 맞이한, 비 개인 아침 풍경은 그야말로 맑고 싱그럽고 찬란했다.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람결에 초록잎새마다 내려앉아 반짝이는 햇살, 깨끗하게 빨아진 상쾌한 공기, 멀리 가까이 뻐꾸기와 작은 새들이 주고받는 지줄거림, 수탉이  훼치며 때를 알리는 정겨운 소리...

오월이 남기고 간 여리고 싱그럽고 사랑스러운 색깔과 소리와 생김새를 그대로 받아 안고,  호국의 달 유월이 장미울타리를 넘는다.


유월이 들어와 문패를 달고나면, 이제 숲은 더 깊어지고 나무마다 더 넓게 그늘을 드리울 게다.

들판은 날로 푸르게 윤기를 낼 것이고 생명 있는 어린것들은 쑥쑥 자랄 것이다.


다시 똑같은 5월을 만날 수는 없겠지만, 닮은꼴로 찾아올 다른 5월을 기다리며 아쉬운 작별을 적는다.

그리고 하나의 새 페이지를 열어 금계국 망초꽃 환하게 깔아놓고, 장미 울타리에 앉은 유월을 조용히 손짓해 맞아들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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