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봄비전재복 Jun 19. 2023

* 어떻게 그냥 보내?

      보리똥 따기 체험(85)


 들며 나며 눈 맞추고, 부끄러운 듯 발그레지는 볼때기를 슬쩍 손 끝으로 건드려 보고, 그렇게 바라보기 여러 날~ 진홍빛으로 농익어 탱글탱글 굵어진 보리똥이 나무를 온통 홍보석열매로 치장했다.


 새콤보다 달콤 쪽으로 무게추가 기울기 시작하고 농익어 땅으로 쏟아지자 조바심이 일기 시작했다.

 긴 긴 봄가뭄에 있는 힘을 다해 꽃 피고 열매 맺고 단 맛 들이느라 얼마나 애썼는데...

떨어져 개미들 밥이나 되게 하고, 썩어져서 거름이나 되게 하다니 그럴 수는 없는 일이다.



 과일이라고 하기엔 뭔가 아쉬운 크기와 맛, 게다가 쉽게 물러서 자연상태로는 보관도 쉽지 않은 보리똥(보리수 열매). 그러나 설탕에 재어 발효시켜 차처럼 마시면 기관지에 좋다는 약성도 있고, 쨈을 만들면 새콤달콤해서 어떤 쨈보다 맛있는 보리똥이다. 어린 시절 입이 까매지도록 따먹었던 오디와 함께 보리똥을 따먹고 자란 사람들에게는 맛보다는 아련한 추억을 불러오는 열매이다.


 우리 집 뜰에는 크고 작은 보리수나무가 예닐곱 그루가 있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보리수열매가  익을 무렵이면 친구들과 문학동인들을 불러 보리똥을 따가게 하였다.

웃음꽃은 언제나 덤으로 따라왔다

그러나 코로나가 길을 막고

집안에 편찮으신 어른을 모시고 살다 보니, 집으로 사람들을 불러서 뭔가를 하는 일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마음도 따라서 멀어져 갔다.


 올해도 보리똥이 농익어 떨어지기 시작하면서, 그냥 두고 보기 아까워 조금씩 따 가지고 나가 추억의 맛, 계절이 주는 선물을 나눴다.



 그러다 평생학습관 수업이 있는 오늘, 강의 2시간을 마치고 시간여유가 있는 사람들만 옥정리로 자리를 옮겼다.

미리미리 예고하지 못하고 이른 아침에야 단톡방에 오늘 수업 끝나고 보리수 따기 체험하자고, 통 하나준비하라고 알림톡을 남겼다.

선약이 있거나 다른 일이 있는 분들은 수업만 마치고 돌아가고, 여섯 분만 옥정리 보리수 따기 체험에 따라나섰다.


 특별할 것 없는 집, 나의 서식지를 공개하는 일이 자주 있는 일은 아니다.  어쩌다 야생 같은 옥정리 우리 집을 방문한 사람들은 도심을 벗어난 시골의 개방된 공간을 좋아라 한다.

마당 끝 방죽엔 얼굴을 드러낸 연잎들이 가득하고, 제법 넓은 잔디마당가에 키 큰 나무들이 빙 둘러싸고 있어 내리쏟는 햇빛 속에서도 무더운 느낌은 덜한 모양이다.


 남편에게 부탁해서 우리가 집에 도착하기 전에 미리 열매가 주렁주렁 매달린 보리수 나뭇가지를 잔뜩 잘라다가 마당 한쪽 정자 가운데에 쌓아놓았다.

 집에 도착한 사람들은 한동안 여기저기 사진을 찍고 둘러보며 그냥 시골집이라더니 너무 예쁘다고 인사치레들을 했다.


 둘러앉아서 유쾌한 웃음소리와 함께, 준비한 그릇과 봉지에 빨간 보리똥을 따 담았다.

 일을 마치고 약간의 더위가 느껴질 즈음 안쪽으로 옮겨 수박과 시원한 물로 목을 축이고 유쾌한 수다가 늘어졌다. 


 아침에 손녀 등교준비 해주고 학습관으로 바삐 가면서, 마침 쉬는 날인 딸에게 수박이나 한 통 손질해서 시원하게 냉장 보관해 달라고 부탁하고 나갔었다.

 손님들께 내가려고 보니 손질한 수박이 두 개의 통에 나눠 담겨 있었다. 무조건 좀 더 큰 통을 꺼내 들고 나가 뚜껑을 열었더니 수박조각이 주먹만 씩 하다.

한 입 크기로 먹기 좋게 손질하지 않고 이 무슨 일인가? 부끄러움이 확 올라왔지만 그냥 물 대신 드시라고 내밀었다.

손님들이 돌아간 뒤에 딸이 하는 말 


"엄마, 먹기 좋게 손질한 건 남겨놓고. 왜 크게 잘라서 담아놓은 걸 가져다 드셨어요?"


에고~ 부끄러움은 내 몫이다. ㅎㅎ~


 점심은 나가 먹자고 했으나 다들 물배가 차서 다음 기회에 먹기로 하고 자리를 파했다.


 보내고 나서 생각하니 내 집에 온 손님을 식사대접도 안 하고 내몬 것 같아 마음에 걸렸다. 

내 배가 부르다고 손님을 그냥 보낸 야박한 사람이 되고 말았다.


"보리똥을 안 따고 어떻게 계절을 그냥 보내?"


"아무리 내 배가 부르다고 어떻게 손님을 그냥 보내?"


에고, 오늘 물음표 하나는 제대로 해결했는데, 하나는 찝찝하게 남았다.ㅎ~



작가의 이전글 *낯선 바람으로 출렁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