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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비전재복 Jun 23. 2023

*단옷날 날개옷을 꺼내 입다

   쓰담쓰담 나를 응원해(86)


수리취떡을 시루에 안쳐본 적도, 흐르는 물가에 나가 창포물에 머리를 감은 적도, 어영차 그네 줄에 몸을 실어 구름 속에 노닌 적도 없다. 그럼에도 단오라는 단어에 유독 가슴이 뛰는 까닭은 아마도 어느 생에 그랬던 習이 아득한 그리움으로 따라온 모양이다.


 음력 오월 초닷새~ 양기가 가득한 吉日이라 하여 설날, 추석날 다음으로 큰 명절로 아낌을 받았다는 단옷날~

특히나 여자들에게는 모처럼 금족령이 풀리는 해방절 같은 날이 단오가 아니던가?

지금사 단오는 달력 속에 간신히 매달려 껍데기만 남은 이름이지만.


 그래서 길을 나섰다. 꼭 단옷날에 맞춘 것은 아니지만, 글쓰기의 재미를 알아보자고 모인 일곱 여인네~ 봄날의 책방에서 만나는 목요글쓰기반의 문우들이다.


 보리밥에 비며 먹던 맛깔나게 익은 열무김치처럼, 잘박 잘박 인생의 깊은 풍미를 담아낼 줄 아는 50대부터 70대까지 세월의 구성도 참 맛깔스럽다.

마주하고 앉은 횟수야 이제 겨우 여덟 번째지만, 살아온 이력들이 다양하니 나오는 글마다 진수성찬이다.


 이웃도시 전주로 도서관투어를 해보자는 책방지기님의 제안에 모두 흔쾌히 맞장구를 쳤다.

활화산 같은 모니카님, 퍼내도 퍼내도 마르지 않을 샘이 깊은 미란님, 두 분이 발이 되어주기로 했으니 나머지 다섯이야 가뿐하게 얹혀가면 되니 고마운 일이었다.

 

 그런데 이놈의 편두통~ 지난밤부터 따끔따끔 신경을 찌르는 두통이 아침까지 이어진다. 진통제를 찾아 먹고 비상용으로도 챙겨 넣었다.



 9시 10분이 조금 못 되어 군산을 출발, 수채화 같은 초록의 풍경 속으로 달려 나갔다. 하늘은 적당히 흐리고 드문드문 물감이 번지듯 엷은 안개까지 색다른 오늘의 그림을 거들고 나선다.


 첫 번째 목적지는 금암도서관,

규모와 장서량과 쾌적한 분위기 특히 3층 옥상에서 한눈에 펼쳐지는 시가지의 파노라마는 저절로 두 팔을 벌리고 환호하게 만들었다.


 금암도서관, 꽃심 도서관, 책기둥 도서관, 숲 속의 시집 도서관, 연화정 도서관~ 하루에 다섯 곳의 도서관을 돌아보는 일이 얼마나 주마간산 같은 무리한 일정인 줄은 모두가 안다. 그러나 거리를 알맞게 분배하고 시간을 알차게 나눠 쓰며 우리는 해냈다.

비록 오늘은 발도장을 찍고 여유롭게 찾아올 다른 어떤 날을 마음에 담아둠에 머물렀지만...


 그중에 하나만 맘에 드는 곳을 꼽으란다면, 나는 찻길에서 한참이나 좁은 길을 걸어 올라가고, 숲 속에 숨은 듯 자리한 작고 소박한 <숲 속의 詩集도서관>학산도서관을 꼽겠다.

현대식으로 크고 편리하고 어마어마한 장서량을 보유한 다른 도서관들도 물론 좋았지만, 숲 속에 숨어있는 이 도서관이 나는 더 좋았다.

 

 창가에 앉아 책장을 펼치고 굳이 글자를 읽지 않으면 어떠랴!  

솔바람소리에 귀 기울이고 앉아서 잎맥이 투명해 보이는 나뭇잎사이로 잘게 쪼개져 들어오는 햇살을 온몸으로 받으며, 청설모가 나무를 타고 오르내리는 모습을 본다든지, 작은 벌레들의 부지런한 움직임을 무심히 바라보는...

이따금 기지개를 켜며 느린 하품을 깨물고 잠깐 졸아도 좋겠다.


 오늘도 나는 전생 어디쯤 지어놓은 복주머니 하나를 찾아 쓰며 깊은 장롱 속에 숨겨둔 날개 옷을 꺼내 입었다.


지금의 나로 살아있어서 고마운 날!

함께 동행해 준 아름다운 인연에 감사하다.  



(도서관에 비치된 詩항아리에서 뽑아 든 두루마리~ 주술처럼 내게 온 오늘의 시를 올린다.)


*아름답게 산다는 것은 / 용혜원


어느 날인가 머뭇거림도 없이

미묘한 쓸쓸함과 슬픔 속에

살아온 추억조차 남기고 떠나야 한다


모든 것들은 기억 속에서 사라지고

살아온 흔적조차 하나 없이

멀찌감치 거리를 두고 허무하게 잊혀진다


살아 있는 동안 꿈과 갈증을 같이 느끼며

경솔하게 불행에 낚이지 않고

아름답게 산다는 것은

썩 괜찮고 가슴 뭉클하고

아주 감동스런 즐거운 일이 아닌가


늘 만나는 사람들과 푸근한 미소 속에

주고받으며 살아가고

서로 기뻐할 수 있는 감동을 나누어야 한다


뻔한 고집과 미련에 자존심조차 깔아뭉개고

쌀쌀하고 매정한 말투에 몸을 멈칫하며

서로의 가슴에 멍들게 하지 말아야 한다


고독의 늪에 빠져 있을 때

방황을 거듭하며 초라해지지 말고

의미를 남겨놓을 수 있도록

따뜻한 인상으로 당당하게 살아야 한다


지금 이 순간 살아갈 수 있음을 기뻐하며

찾아오는 행복의 날을 위하여

애정을 갖고 손을 흔들 수 있는

마음의 여유와 희망을 가져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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