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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비전재복 Jul 02. 2023

*주책바가지,  수라에 울고

     쓰담쓰담 나를 응원해(90)


며칠 전 비가 억수로 내리는 날,

혼자서 영화 <수라>를 보러 갔다.

'롯데시네마'라고 했으니 집에서 멀지도 않고, 오며 가며 익숙한 건물이라 건물 뒤로 돌아가 주차도 잘하고 3층으로 올라갔다.

매표소에서 티켓을 끊으려 했더니 그 영화는 상영기간이 끝나서 지금은 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요? 낼모레까지 12시 5분에 상영한대서 왔는데요?"


이곳이 아니고 다른 지점이라고, 장소를 잘못 찾아왔다고 남자직원이 친절하게 알려준다.

큰맘 먹고 나섰는데 이게 무슨 낭패람? 지금 상영하고 있다는 그곳까지 가기는 시간도 턱없이 부족하고 완전히 김이 빠져 버렸다. 비는 내리고 나간 김에 마트에 들렀다가 집으로 돌아왔었다.


그리고 오늘, 아직도 내가 보려는 그 영화를 상영하고 있다는 곳에 인터넷 예매를 했다.

무슨 영화냐고 묻는 남편에게 갯벌에 관한 다큐영화라고 했더니 그런 걸 뭣하러 극장까지 가서 보려 하냐고 한다.

그러거나 말거나 아침 먹고 시간을 넉넉히 잡고 집을 나섰다.


지난 번엔 엉뚱한 곳에 가서 불발탄을 날렸으니 오늘은 제대로 가서 보고 와야지.

롯데몰 지하주차장은 엄청 넓고 복잡해서 긴장이 되었다.

시네마가 있는 4층에도 주차장이 있다고는 하는데, 지하주차장에 주차하고 엘리베이터를 이용하기로 했다. (J4번 주차장소를 확인하고)


너무 일찍 도착해서 느긋하게 예매한 핸드폰 화면을 보여주고 표를 받았다.

아직도 한참이나 시간이 남아서 일없이 3층에 내려가서 어정거리다 다시 4층에 올라왔다. 그래도 시간이 남았다.

입구에 청년이 서있기에 들어가도 되냐고 하니까 들어가란다.

무슨 상영관이 일곱 개나 된담?

어두컴컴한 미로를 더듬어 제5관의 육중한 문을 밀고 들어갔다.


무슨 영화인가 상영 중이었고 어두컴컴한 불빛 속에서 둘러보니 관객은 딱 두 사람이 앉아있다.

내 좌석번호를 더듬더듬 찾아올라 갔더니 하필 내 자리와 그 옆자리에 남녀가 꼭 붙어 앉아 있었다.


빈 극장에 하필 내 자리?

어쨌거나 자리가 텅텅 비었으니 다른 자리에 앉았으면 탈이 없었을 텐데 융통성 없고 맹한 여자, 푼수끼가 제대로 발동했으니...

부득부득 그들 옆으로 가서


" H9번 제 자리인 것 같은데요?"


"뭐라고요? 여기 내 자리 맞아요."

군시렁 시렁 ~


결국 젊은 남녀는 영화의 끝부분을 보지도 않고 뭐라고 투덜거리며 일어나서 나가버렸다.


어두워서 얼굴표정이 안보였기 다행이지 그 젊은이들 얼마나 어이없고 화가 나서 나를 째려봤을까?

주책 빠진 노인네가 하고많은 자리 다 놔두고 한참 달콤한 분위기에 빠져있는 옆자리에 와서 훼방을 놓았으니, (영화관람을 하고 있었는지 영화를 찍고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 험한 욕설이라도 하며 덤비지 않은 것만도 얼마나 다행인가?


알고 보니 자리는 맞는데, 내가 보려던 영화는 시간이 15분 정도 더 남아 있었던 것이다. 내가 미리 들어가서 푼수를 떨었으니...

주책바가지 맞네~!

참말로 미안혀요. 젊은 연인이여~



***************************

그리고 드디어

통곡하는 갯벌, 끝내 지켜주지 못한 우리의 아름다운 갯벌 "수라"를 H9번에 버티고 앉아서 관람했다.



33.9km 새만금방조제~

세계에서 가장 길어서 자랑거리인 줄만 알았더니, 가장 큰 환경파괴범의 또 다른 얼굴인 것을 오늘에야 보았다.


수수백 년 수천 년 동안, 육지와 바다가 만나 서로 얼싸안고 적시며 살아온 바다와 갯벌~ 어김없이 하루에 두 차례 꼭꼭 찾아와 덮어주고 적셔주던 바닷물을 방조제가 떡하니 막아버렸다. 물을 잃어버린 갯벌의 생명들!


"오겠지, 돌아올 거야~ "


몇 날을 기다리고 몇 달을 견디다 타는 갈증, 주린 배로 떼죽음을 당했다면 어쩔 것인가?

살 곳을 찾아 수십만 km를 날아가는 저 작은 도요새들도, 갯벌에 기대 살던 사람들도, 쉬어갈 곳과 살아갈 터전을 잃어버린 같은 처지 일 것이다. 그들의 지친 날개 그들의 상처 난 마음을 어떻게 보듬고 치료해야 할까?


저들이 주인이고 저들의 영토인 갯벌 수라에는 무수한 생명, 아름다운 것들이 오늘도 돌아올 바다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이름도 이쁜 것들 모양새도 가지가지 사랑스런 것들~

개개비. 고라니. 쇠제비갈매기. 가마우치. 도요새. 검은 머리쑥새. 검은 머리도 요새. 장다리물떼새. 흰발농게. 붉은발농게. 콩게. 노랑조개, 떡조개, 꽃보다 더 고운 칠면초 우리나라에서만 서식한다는 금개구리까지 셀 수 없이 크고 작은 수많은 목숨들이 죽어가고 떠나가고 힘겹게 목숨 줄을 붙잡고 있었다.


그나마 얼마 전부터 하루에 두 시간 바닷물을 들여보내서 생태계가 살아나는 기미가 보인다니 얼마나 다행인지 얼마나 눈물겨운 일인지~


화면 가득 날아오르는 도요새의 군무가 더없이 아름답다. 그런데 느닷없이 가로지르는 괴물 같은 비행기! 확 치워버리고 싶었다.


도요새가 오면 봄이 온 것이고, 그들이 가면 여름이 간다고 한다.

자연스러움이 가장 아름답다고 하던데!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보고 좋아한 죄로, 저들이 고통받는 모습을 함께 앓고 있는 모양이라고, 죄 값을 받는 모양이라고 주인공 남자가 울먹이듯 말했다.


오늘 나도 비록 화면을 통해서나마 저토록 아름다운 것들을 훔쳐보았으니 공범이 된 것일까? 그것도 죄가 된다면!

나무의 줄기 같고 뿌리 같고, 핏줄도 같은 우리들의 고향 <수라>갯벌에서, 돌아올 바다와 뭇 생명 그들을 함께 기다릴 것이다.


영화의 마지막 몇십 초쯤? 음소거된 갯벌의 모습이 화면을 가득 채우는데 가슴이 묵직하고 아렸다.

뜨거운 무엇이 두 눈에 차올랐다.


*수라 : 비단에 수를 놓은듯 아름답다는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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