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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비전재복 Jul 05. 2023

*일곱 살 인생의 상심

          - 빵점 맞았어요 -(92)

* 일곱 살 인생의 상심(傷心)

      - (빵점 맞았어요) -



딸의 생일에 맞춰 5일간의 연차를 내고 내려온 아빠가 있어서 행복한 은성이~

안 봐도 비디오지! 학교 친구는 물론 학원 친구들한테도 소문내고 자랑질했을 것이 뻔하다.

담임선생님께 슬쩍 간식을 넣으면 안 되느냐고 물었더니 절대 안 된다고 했다.

외부음식의 반입으로 혹시 아이들이 탈이라도 나면 큰일이고, 자기도 하고 싶은데 형편이 안 되는 친구들이 생길까 봐 안된다고 했다.

(간단한 과자정도 자기가 가지고 와서 나눠먹는 것은 괜찮지만)


할머니야 이해가 되었지만, 어린이집에서는 같은 달에 생일인 친구들을 몰아서 생일파티를 해왔던 은성이의 실망이 컸다.

그래도 기분인데 쿠키와 작은 음료 하나씩 나눠먹으라고 들려보내며 기분을 살려줬다.



요즈음 은성이는 춤에 푹 빠져 산다. 혼자 핸드폰 동영상을 틀어놓고 춤을 춘다.

차분히 앉아 책을 본다거나 그림을 그린다거나 정적인 놀이에는 관심이 없다. 뛰고 흔들고 노래하고 뛰어내리고... 도대체 뭐가 되려는지 정신이 없다. 말대답은 어찌나 콩당콩당 야문지, 미운 일곱 살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것 같다.


마냥 유쾌한 아이, 실수를 해서 꾸중을 듣고서도 금방 돌아서서 노래하고 춤추는 아이, 무엇이 그리 즐거운지 에너지가 넘친다.


그러던 은성이가 달라도 너무 달라 보였다.

어제저녁, 휴가차 집에 와 있으면서도 주말과 일요일을 빼고 매일 꼬박 8시간씩 인터넷강의를 들으며 공부하는 아들에게 영양보충을 시키려고 고기를 먹으러 나가자고 했다.

학교와 학원을 거쳐서 돌아온 아이를 받아서 저녁을 먹으러 가는 차 안 -, 조용해도 너무 조용한 은성이가 이상했다.


"은성이 뭐 해? 잠들었나?"


뒷좌석을 돌아보며 할머니가 물어도 말없이 창밖만 바라본다.

할아버지와 아빠가 뭐라고 해도 묵묵부답 대답이 없다.


"은성이 어디 아파?  어디 보자"


할머니의 채근에 그제서야 아프지 않다고 대답하며 고개를 돌렸다가 다시 말없이 창밖을 본다.

전혀 은성이 답지 않은 행동에 순간 수십 가지의 불안이 가슴에 두 방망이질 쳤다.

차를 주차하고 은성이 손을 잡고 내려서 조용히 물었다.


학교에서 무슨 일 있었느냐, 친구들과 싸웠느냐, 지난번처럼 놀다가 사고를 쳤느냐, 선생님께 꾸중 들었느냐... 그랬더니


 "할머니 귀 좀요."


"..."


"학교가 아니고요. 학원에서

수학시험지 빵점 맞았어요."


"다 틀렸어?"


"네, 그래서 선생님께 혼났어요."


불안했던 마음을 우선 내려놓으며 얼른 작은 몸을 끌어안고 엉덩이를 토닥였다.


"그랬구나. 그래서 속상했구나.

괜찮아, 밥부터 먹자.~ "


할아버지도 괜찮다 하시고, 시험지 보내주면 할머니랑 다시 풀어보자 약속하고 밥을 먹었다.

제 아빠만 빵점 맞았다고 조금 놀렸다. 그러지 말라고 눈짓을 해도 은성이의 반응에 재미있어한다.


스물몇 개의 문제에서 한두 개, 많게는 서너 개 틀린 적은 있어도 빵점을 맞다니! (다 틀린 것이 아니라 많이 틀렸다는 표현일 수도 있다) 충격이 크긴 컸나 보다.

말괄량이 은성이의 입을 다물게 할 만큼, 일곱 살 인생에서 처음 보는 모습을 보일만큼 상심이 컸던 모양이다.

그게 무슨 큰일이라고 어린것이 기가 쫙 빠져서 그 넘치던 신바람이 사라지다니...!


밤에도 다른 날처럼 기분이 올라오지 않았다.


오늘 아침에도 언제나 할머니의 뒤로 와서 허리를 껴안으며 놀래키던 은성이가 저만치서 재미없게 인사를 하고 만다.


안 되겠다 싶어 은성이를 불러 꼬옥 껴안고


"빵점 때문에 아직도 기분이 안 좋은 거야? 괜찮아 은성아,

시험지 오면 할머니랑 틀린 문제 다시 풀고 연습하면 돼. 은성이 다른 때는 잘했는데...

어젠 딴생각하느라고 실수했나 보다. 걱정하지 마. 우리 똥강아지~"



겨우 추슬러서 학교에 보냈다.

어차피 공부로 승부를 걸어볼 만큼 머리가 영특해 보이지는 않는다.

우리 식구 중 누구도 수재는 없었으니까!

평범할 거라면 공부로 스트레스받지 말고, 밝고 원만하게 즐거운 학교생활을 열어갔으면 좋겠다.

어른에게 예의를 갖춰 경할 줄 알고, 친구들을 배려하고 함께 하는 밝고 건강한 아이가 되었으면 좋겠다.

무엇보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아끼며 자존감 높은 아이로 자라기를 바란다.

스스로가 자기의 가치를 존중하고 사랑할 줄 알아야 타인에게도 구김 없는 사랑을 주게 될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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