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은 2000년 기준으로 평균 가구원수가 3.1명이었고 2010년에는 2.7명, 2020년에는 2.3명으로 줄어들었다. 육아휴직을 할 당시인 2018년도에 우리 가족은 3인 가구에 속했다. 당시 기준으로 한국의 평균 3인 가구의 생활비는 256만 원 내외였고 한국의 보통 가구가 생활비에서 식료품을 구매하는 비율은 23% 내외였다. 한국인의 온라인 쇼핑 거래액은 매년 상승하고 있으며 2015년 기준 78조 4000억 원, 2018년도 기준 100조 3740억 원이었다. 2021년도 기준으로는 192조 8946억 원이며 같은해 한국의 명목 국내총생산(GDP)인 2057조원의 1/10 수준에 근접할 정도가 되었다. -
아이가 두 돌이 지나면서 다니던 직장에 육아휴직을 신청하였다. 최근 들어 일거리가 많이 줄어 앞으로 몇 달간 업무가 한가할 것이 예상되었기에 이번 기회에 반년 정도 아이와 추억을 쌓자는 생각이었다. 집에서만 생활 한지 3개월이 지나니 전적으로 아이에 맞춘 일상이 몸에 익는다. 매일 9시에 어린이집에 데려다 놓고 집안일과 독서를 하고 오후 3시 반이 되면 다시 데려와서 엄마가 퇴근할 때까지 놀아주는 것이 아빠의 주된 업무다. 그중 빼먹지 않는 일상이 하나 있다. 바로 동네 마트에 들르는 일이다.
그림자가 서서히 길어지는 오후, 하원을 위해 어린이집에 아이를 데리러 가면 아이는 어김없이 “아이스크림 먹을까?” 혹은 “까까 먹고 싶다!”라고 말하며 아빠의 눈을 바라본다. 두 돌이 막 지나 깨치는 말이 하루가 다르게 느는 시기이긴 하지만 그중에도 자기가 하고 싶거나 먹고 싶은 것을 얻기 위한 말들을 먼저 배우는 것이 신기하다. 아이에게서 이런 말을 들으면 오늘은 집에 바로 가야지라고 생각을 하고 있더라도 마트에 들러 뭔가 살 것은 없는지 머리를 한번 굴려보게 된다. 그러고는 어김없이 아이 손을 잡고 또다시 동네 마트를 찾는 것이다.
마트에 들어서면 아이는 제일 먼저 초콜릿 코너로 뛰어간다. 초콜릿 중에서도 아이가 유독 좋아하는 m&m 초콜릿은 마트 한 중간에 서 있는 캐릭터 모형의 머리 위 상자에 놓여있다. 노랑, 빨강, 검정, 파랑 색깔별로 보기 좋게 전시된 모습을 아직 키가 90cm도 안 되는 아이 눈으로 볼 수도 없지만 아이는 그 앞에서 초콜릿이 놓인 윗 쪽과 아빠를 번갈아 쳐다보며 기대에 찬 눈빛으로 아빠가 오기를 기다린다. 번쩍 안아 상자에 놓인 초콜릿 중 마음에 드는 색깔의 봉지를 고르게 하고 하나를 손에 쥐어 땅에 내려놓으면 그때부터 아이는 누구보다 행복한 표정으로 손에 든 봉지에만 관심을 가진다. 몇 주 전만 해도 이런 요령을 몰라 보이는 데로 물건을 집고 다니는 아이를 말리고 뺏고 달래는 힘든 과정을 겪었다. m&m 초콜릿이 마냥 고맙다.
장보기는 이때부터 시작된다. 요리 잘하는 남자를 ‘요잘남’, 요리하는 모습이 섹시하다고 하여 ‘요섹남’ 이라고까지 부르는 현시대에는 맞지 않는 요리 안 하는 남자라 음식재료는 장바구니에 담지 않는다. 장보기 재료는 아이가 먹을 요구르트, 계란, 우유가 있고 부부의 아침식사 용인 바나나, 빵이 대부분이다. 이것들 외에 장을 더 봐온다면 필시 아이가 새벽에 깨어 배고프다 우는 걸 달래느라 잠을 설친 것에 대한 보상으로 혹은 빨래, 설거지, 청소 후 쉬는 시간을 위해 재어놓는 과자와 탄산음료가 추가되는 것이 전부다.
이렇게 간단하지만 잦은 마트 장보기가 습관처럼 굳어져가는 것은 휴직 이후 생활비 카드를 항상 가지고 다니게 된 이유도 있다. 전에는 카드를 아내가 가지고 다녔다. 카드를 쓸 때마다 내 핸드폰으로 사용내역이 오도록 하여 아내의 지출내역과 시기를 관리하였다. 지금은 내가 쓰고 내가 확인하니 견제 없는 소비의 기쁨만 있다. 좀 더 생각해보면 아내가 무언의 방조를 할 수도 있겠다. 아내는 6시가 넘어야 일을 마무리한다. 간간히 잔업으로 8시가 넘어 집에 들어오기도 한다. 그때까지 아이보기는 온전히 아빠의 몫이니 매일 만원 내외의 소비는 그냥 놔두는 것이라 추정할 수도 있겠다.
아이를 핑계 삼아 이뤄지는 장보기는 소비로 이어지니 가정에서는 다른 쪽에 들어갈 지출이 줄어드는 단점이 있지만 다른 면에서의 장점도 만만치 않다. 동네 마트의 입장에서는 단골이 생겨서 좋고 국가의 입장에서는 국민총생산(GDP)이 올라가서 좋고 낮 시간 동안 계산대를 지키는 아주머니들은 들어오고 나갈 때 “안녕하십니까?”, “고맙습니다.”를 막 배워서 써먹고 있는 꼬마 손님을 보는 재미도 있다. 이런 일련의 효과는 검증은 되지 않을 긍정 에너지가 되어 사회에 기여를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한동안 마트 나들이를 끊지 못하는 합당한 이유가 생겼고 오늘도 나는 아이와 동네 마트로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