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3살이 되기 3개월쯤 전, 아이는 할 수 있는 단어가 많아졌다. 와이프와 나는 냉장고 문에 붙여놓은 자석메모판에 애가 할 수 있는 단어를 쭉 적었다. 한 번이라도 말했던 단어는 엄마, 아빠부터 악어, 하마까지 총 60 단어였다. 두 달 전 84센티미터의 키에 10 단어 정도 말하던 아이는 키 86센티미터에 60 단어를 말하는 아이가 되어있었다. 말하고자 하는 본능이 봉오리를 터뜨리는 시기가 온 것이었다.
우리 집에는 TV가 없었다. 요즘은 각자가 보고 싶은 영상을 각자가 찾아보는 시대라 TV가 필요 없었다. 저녁마다 바로 옆에 있는 장인 장모님 사시는 집(이하 처가)에 가거나 주말마다 차로 25분 거리의 아버지 어머니 사시는 집 (이하 본가)에 가서야 TV를 볼 수 있었다. 처가에서는 식사 끝나는 시간에 하는 '우리말 겨루기'와 같은 가족오락프로그램이나 9시 뉴스 전에 하는 일일드라마를 보았다. 본가에서는 식사 전후에 '1박 2일'이나 '불후의 명곡' 같은 예능을 주로 보았다. 프로그램들을 챙겨서 보는 것은 아니고 마침 그 시간에 방송이 나오면 보는 것이었다.
어느 날 아이가 어떤 단어를 리듬을 넣어 흥얼거리듯이 말을 했다.
"하~와와 성~"
당시 아이는 와이프의 아이패드를 자기 것처럼 사용하고 있었는데 유튜브로 '뽀로로, 로보카폴리, 타요, 용감한 소방차 레이' 동영상을 자주 보았다. 이런 영상의 주제가를 정확하지 않은 발음으로 흥얼거리면 알아듣기 어려울 때가 많았다. 그럴 때면 정확한 발음으로 다시 노래를 불러주곤 했는데 아이의 발음은 전혀 바뀌지 않았다. 어설프게 말을 따라 하고 교정도 안 되는 시기였기에 하와와성 역시 '또 저러는구나' 하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언젠가는 그 뜻을 알게 될 거였다.
본가에서 할아버지 옆에서 색연필로 낙서하던 아이가 하와와성을 중얼거렸다. 아버지는 하와와성이 뭔지 물었다.
"저도 모르겠습니다. 아버지"
식탁에 앉아 밥을 먹던 아이가 하와와성을 중얼거렸다. 어머니는 하와와성이 뭐냐고 했다.
"요즘 애가 자주 하는 말인데 어느 영상에서 들은 거겠죠. 저도 잘 몰라요."
처가에서 우리말 겨루기를 보며 퀴즈를 맞히고 있는 외할아버지 옆에서 자동차 장난감을 가지고 놀던 아이가 하와와성을 중얼거렸다. 장인어른은 하와와성이 무슨 뜻이냐고 했다.
"자주 보는 영상에서 듣고 저러는 것 같은데 전혀 모르겠습니다."
거실에서 전화기를 들었다 놨다 하던 아이가 하와와성을 중얼거렸다. 장모님은 아이가 하와와성이라는 데 그 뜻을 아냐고 물었다.
"잘 모르겠네요. TV나 유튜브 보면서 들은 말인 듯한데... 뭘까요?"
이제 하와와성은 온 가족의 관심사가 되었다. 와이프와 나는 하와와성이 뭔지 전혀 눈치를 챌 수 없어 추측만 할 뿐이었다.
"애가 자주 보는 영상들에서는 비슷한 말이 없는 것 같은데..."
"그러게, 그렇다고 TV를 매일 보는 것도 아니고"
"친구들도 말을 못 하니 어린이집 선생님인가..."
"선생님들이 하와와성 거린다고?"
아직 100 단어도 말 못 하는 아이는 우리에게 답은커녕 힌트조차 줄 수 없었다. 하와와성의 정체를 알고자 하는 마음을 내려놓았다.
'어느 정도 말할 수 있게 되면 애가 말해주겠지?'
여전히 궁금했지만, 일하다가도 문득 생각이 나지만, 빠르냐 느리냐가 문제이지 알게 될 것이었다. 2주가 흘렀다.
"찾아냈어요"
와이프가 밝고 큰 목소리로 집에 들어왔다. 처가에서 저녁을 먹고 할 게 있어서 나만 집에 먼저 와있었다. 일일드라마를 다 보고 9시가 넘어서 애는 처가에서 놀게 두고 들어오는 와이프의 얼굴에 웃음이 가득이었다.
"뭘요?"
"하와와성이요."
컴퓨터 화면을 보며 관심 없는 척 다시 물었다.
"뭔데요?"
"내일 저녁 먹고 알려줄게요."
"그게 그렇게까지 기다려야 될 일인가요?"
"그럼, 혼자 맞춰 보세요."
"알았어요, 기다리죠. 내일 되면 그게 뭔지 나도 알겠죠."
다음날 평소처럼 처가에서 저녁식사를 끝내니 8시가 좀 넘었다. 거실 TV에서는 일일드라마가 한창이었다. 장모님과 와이프는 소파에서 드라마를 보고 있었다. 나는 하와와성이 무슨 뜻인지 알아야 했기에 집에 가지 않고 있었다. 처가 거실에 앉아 내용을 모르는 드라마에 눈길을 주면서 아이와 자동차 놀이를 하였다. 잠시 뒤 드라마는 끝이 났다. 와이프는 이제 나온다며 잘 들어보라고 하였다.
'드라마 끝나고는 9시 뉴스 할 시간인데 뭐가 나온다는 거지?'
의아하게 생각하는데 익숙한 음악소리가 들렸다. 음악이 나오자 자동차 놀이를 멈추고 TV를 뚫어져라 바라보는 아이의 입을 통해 곧 나도 하와와성의 뜻을 알 수 있었다.
"정성을 다 하는~ 국민의 방송~ K~B~S~"
"하~와와 성~"
머릿속 물음표를 지우며 하와와성이 터져 나오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