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좀 해봤어?”
아내가 던지는 말에 퍼뜩 정신이 들었다.
“몇 개 생각해봤지.”
6년 전 아내는 첫째를 낳기 위해 12시간을 진통과 싸웠다. 무통 주사를 몇 번 맞았음에도 아내의 아픔은 갈수록 심해졌다. 의사의 제왕절개 권유에도 참아보겠다고 하던 아내가 어느 순간 비명을 내질렀다. 급히 수술 동의서를 작성하였다. 조금 전까지 피 마르던 시간은 어디로 갔는지 15분 후 아기 울음소리가 들렸다. 그렇게 어렵게 뚝딱 태어난 아기는 3.94kg로 건강했다. 반면 수술로 아이를 꺼낼 거라곤 생각지 않았던 아내는 절개면이 아물 때까지 한동안 병실에서 움직이지 못했다. 하루 뒤에 소변줄을, 이틀 뒤에 피통을 제거했다. 그러고도 며칠간 배에 압박붕대를 차고 절룩거리며 걸어야 했다.
이날의 기억 때문인지 아내는 둘째 생각이 없다고 했다. 내심 애 둘은 있어야 된다고 생각했지만 생각이 없는 사람에게 강요하고 싶지 않았다. 아내가 기분 좋을 때 아이가 둘이 있을 때의 장점에 대해 슬쩍 얘기할 뿐이었다.
5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 사이 처남이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았고 친척 동생들도 차례로 아이를 가졌다. 어느 순간 아기를 바라보는 아내의 시선에서 고통이 없어져 있었다. 인생 다시 오기 힘든 기회가 왔음을 직감했다. 아직 나이가 삼십 대니 지금도 늦지 않았음을 설파했다. 아내보다 더 많은 나이에 아이를 가진 유명인들의 예를 드는 것도 잊지 않았다. 아내보다 더 많은 시간을 아이를 보는데 쓰겠다고 약속했다.
그렇게 둘째가 생겼다. 내심 딸 하나 있었으면 해서 첫째 때 태명을 꼭딸이로 지었더니 아들이었다. 둘째는 태명을 신중하게 지으려고 고민하는 사이에 아들이란 걸 알게 되었다. 딸 아빠 엄마가 되는 것은 하늘이 허락해야 하는 것이다. 늦었지만 태명을 정하려는데 아내는 바로 이름을 정하자고 하였다.
“어떤 이름이길래 태명도 없이 부르려고 하지요?”
“보검이”
“보검이라고? … 박보검할때 그 보검?”
아내는 둘째가 잘생기고 잘 나가길 바라는 마음을 이름에 담았음을 눈빛으로 전했다.
그런 눈빛을 받고도 쉽사리 좋다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너무 잘 알려진 연예인 이름이기도 하고 대놓고 보물 같은 아이라는 티를 내는 것 같았다.
바통을 첫째에게 넘겼다.
“엄마가 동생 이름을 보검이라고 한다는데 어때?”
“보검이… 이상해!”
‘휴~ 첫째와 마음이 통해서 다행이다’
보검이가 왜 이상하냐, 멋지지 않냐며 아내는 첫째를 열심히 설득했지만 엄마의 마음도 모른 채 첫째는 쪼르륵 유튜브를 보러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럼 신랑은 생각 좀 해봤어?”
“몇 개 생각해 봤지.”
나름 아이가 이렇게 컸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지어 놓은 이름 중에 내심 아내의 생각이 궁금한 이름이 하나 있었다.
“특이 어때?”
“특? 외자야?”
“음. 외자로 특이 해도 좋은데 앞에 한 자 더 있어!”
“뭔데?”
“묵특”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아내 눈에서 레이저가 내려 꽂혔다.
“내 말 좀 들어 봐”
“애가 놀림받을 건 생각 안 하나 봐. 보검이가 훨씬 낫지. 묵특이는 안돼요!”
자리를 뜨는 아내의 뒷모습을 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진정한 중국을 열었다고 할 수 있는 한나라(漢)의 막강한 국력에도 아랑곳 않았던 사나이. 강력한 무력으로 주변국들을 공포에 떨게 하면서 흉노 제국 최전성기를 이끈 묵특선우(冒頓單于). 묵특처럼 전 세계를 호령할 인재가 될 우리 둘째를 생각하면 이처럼 적합한 이름이 없는데…’
아내는 묵특이란 이름이 어지간히 충격이었는지 본가에 가서도 묵특이 나은지 보검이 나은지 부모님께 일러바치듯 물었다. 부모님은 보검도 그다지 마음에 들어 하진 않았지만 묵특이란 말에는 입을 열지도 않으셨다. 생각해 놓은 다른 이름을 꺼낼 수밖에 없었다.
“신이는 어떻습니까?”
어머니는 외자라서 꺼려하셨지만 아버지는 좋다고 하셨다.
첫째도 신이라는 이름은 괜찮다고 하여 우리 가족은 태아를 일단 신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병원은 3~4주에 한 번씩 갔는데 그때마다 신이는 쑥쑥 자라 있었다. 몸무게가 3kg가 넘어갈 때쯤 예정해둔 제왕절개 수술 날짜가 되었다. 수술 한 번에 신이가 태어났다. 신이가 신생아실에 있는 동안 신이 엄마는 서서히 회복되었다. 4일 차쯤, 절뚝거리긴 하지만 수액 달린 보조바퀴 없이 걸어 다닐 수 있게 되었다. 빠른 회복을 위해 산책을 하는 중 정식으로 아이 이름을 정하기로 했다.
“신이 이름 이건 어때?”
첫째의 이름을 지을 때 탈락하고는 휴대폰 메모장에서 6년을 잠자던 이름들을 꺼냈다.
도훈, 윤우, 위영, 아진, 시안, 유찬, 아윤, 상아, 치우 적힌 모든 이름을 얘기했지만 마땅찮은 표정이었다.
“그냥 특이로 해야겠네”
등짝을 한 대 맞았다.
“그럼 신이 이름 앞에 한 자를 더 붙입시다. 효신!”
아내도 그간 신이라고 불렀던 익숙함이 있어서 그런지 효신이란 이름은 나쁘지 않다고 했다.
아버지께 좋은 한자를 부탁드렸더니 본받을 효(效)에 믿을 신(信)을 정해주셨다.
21년도에 태어난 신생아 인기 이름 1등이 이준, 2등이 서준, 3등이 하준이다. 공개된 500등까지의 이름 속에 효신이는 없다. 묵특이에 비해 평범하지만 효신이란 이름도 흔하지 않다니 마음에 든다.
주민센터에 출생을 신고하고 집에 와서 아이를 안으니 본받을 만하고 믿을 만한 사람이 될 효신이가 전 세계를 제패할 힘찬 울음을 터뜨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