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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를 안고 구름 위를 날았다

by CJbenitora

대한민국에서 아기를 보기가 많이 힘들어졌다. 2021년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합계출산율은 0.81명으로 전년도보다 0.03명이 줄었다. 합계 출산율은 한 여자가 가임기간인 15세에서 49세 사이에 낳을 것으로 기대되는 평균 출생아 수를 말한다. 2018년도에 처음으로 1명 밑으로 내려가서 올라올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2022년도 연간 출생아 수도 역대 최저인 25만 명 내외로 예상된다. 20년 전에 비해 절반 수준이다. 이 영향으로 주변의 어린이집들은 점점 문을 닫고 있고 폐업한 어린이집은 요양센터로 변모하기도 한다.


모든 일이 그렇지만 아이를 가진다는 것과 키운다는 것은 느낌이 다르다. 아이를 가지는 것은 나와 닮은 존재가 생긴다는 것이고 키우는 것은 내가 돌봐야 하는 존재가 생긴다는 것이다. 나 자신과 바꿔도 아깝지 않은 존재는 내 시간을 한 움큼 집어삼킨다. 아이를 가지면 으레 따라오는 키우는 책임과 수고는 아이를 갖지 않은 이유 중 큰 비중을 차지할 것이다.


아이가 내 시간을 집어삼키면서 걸어 다니고 말을 알아듣고 말을 하고 혼자 대소변을 본다. 몇 년이 번개같이 지나가고 나면 서서히 아이가 내 시간을 집어삼키는 정도가 줄어든다. 학교와 학원을 다니면서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면 아이는 내 시간에 거의 손을 대지 않는다. 그러다 아이가 한 사람 몫을 거뜬히 하는 어른이 되면 내가 아이의 시간에 손을 대기 시작할 것이다.


사람은 많은 경우 이기적이고 좋은 것만 찾는 존재라서 아이가 내 시간을 더 이상 탐하지 않게 되면 자식을 처음 품에 안던 때가 그리워진다. 그때의 행복했던 기억이 생각나고 가끔씩 사무칠 정도로 그 아기가 보고 싶어 진다. 새벽에 뜬눈으로 밤을 새우며 2시간마다 아이 분유를 타거나 우는 아이를 안고 온 집안을 돌아다니던 일은 어느새 고통의 기억창고에서 추억 창고로 옮겨져 있는 것이다.


아기 키우며 가장 힘들었던 기억이지만 이제는 미화된 기억하나를 추억 창고에서 꺼내본다. 돌도 안된 아기는 한밤 중에 집이 떠나가라 울었다. 이마가 뜨거워 온도를 재보니 39도에 가까웠다. 아닌 밤중에 뜬금없는 고열을 해열제로 다스리려다가 아기가 하도 우니 애엄마는 응급실로 가자고 했다. 저녁까지는 멀쩡했고 아직 해열제 먹인 지 얼마 되지 않았다며 좀 기다리며 달래 보자고 해도 막무가내였다. 결국 새벽 2시가 넘은 시간에 응급실로 달려갔다. 그날 당직의사는 다른 응급환자를 보느라 30분쯤 늦게 왔는데 그는 아기를 이리저리 보더니 대수롭지 않게 간호사에게 수건으로 몸을 닦아주란 말만 하고 다른 환자에게 갔다. 간호사는 아기의 옷을 벗기고 수건에 미지근한 물을 적셔 열이 올라간 몸을 닦아주었다. 아기에게 섣부른 약 처방보다는 경과를 지켜보는 것이 더 현명한 결정이었겠지만 응급실에서 애 몸만 닦아 주다 돌아온 그날 참 허탈했다. 집에 돌아와 눈 붙일 새도 없이 다니던 아동 병원에 대기표를 뽑으러 가야 했다. 진료시간 1시간 반 전부터 대기표를 나눠준다는 애엄마 말에 차를 타고 편도 20분 거리를 왕복했다. 병원 갈 채비를 하고 나서 몸의 열이 내려가서 곤히 자고 있는 아기를 안고 애엄마와 같이 다시 병원으로 갔다. 일찍 가서 대기표를 뽑았지만 진료 개시 1시간 만에 의사를 볼 수 있었다. 의사는 아기는 괜찮다고 했다. 의사의 입을 통해 원래 아기들은 체온조절이 잘 안 되니 따뜻하게 입히라는 당연한 말을 듣곤 아내는 안심했다. 아기 키워본 적이 없어 작은 일에도 난리법석이던 그때는 이런 비슷한 일이 몇 달에 한 번씩 꼭 발생했다. 별것 아닌 일이라도 아내가 안심하지 않으면 끝나지 않는 일들이었다.


추억 창고 속 아기와 함께 해서 가장 좋았던 기억은 갓난아기를 안고 길을 걷는 순간이었다. 베이비페어 행사장으로 발걸음을 바쁘게 옮기던 아내를 따라 아기를 안고 반발 늦게 걷던 날도 그랬다. 지나가던 젊은 여성들이 아기를 보더니 "어머, 진짜 갓난애기다." "너무 조그맣다." "아, 귀여워" 한 마디씩 하는데 어깨가 으쓱하였다. 저절로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말 몇 마디에 나는 아기를 안고 구름 위를 날았다. 나를 칭찬하는 것이 아니지만 내가 칭찬받는 것보다 더 기분이 좋았다. 아내는 뒤돌아 내 표정을 보더니 그렇게 좋냐며 웃어댔다.


조그만 아기였던 첫째가 서서히 내 시간을 덜 뺏어가고 뭐든 스스로 하게 되자 다시 아기가 보고 싶었다. 나를 힘들게도 하고 구름 위로도 올려놓은 그 아기가 너무 보고 싶었다. 간절히 바라면 이뤄지는지 오랫동안 바라던 둘째가 태어났다. 나는 첫째의 아기 때와 쏙 빼닮은 둘째를 보자 다시 행복에 빠졌다. 이 녀석이 내 잠을 뺏어가고 시간을 한 움큼씩 집어갈 것을 알면서도 얼굴에 웃음이 번졌다. 그간 신생아를 안고 다니던 아빠들과 엄마들을 볼 때마다 들던 부러운 마음이 사라졌다.


지난 7개월 간 아기를 데리고 다니면서 어깨가 뿜뿜거렸다. 사람들의 시선을 받으려면 모름지기 아기를 안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지만 아기가 잘 보이기만 한다면 유모차에 눕혀도 상관없었다. 큰 가구마트에 갔을 때 아기를 유모차에 눕혀 두고 옆에서 물건을 보고 있었더니 지나가던 아주머니들이 유모차 앞을 떠나지 않았다. 한참 까꿍 거리며 아기 눈길을 뺏어보려 노력하다 애가 웃자 자지러졌다. 아기를 만지고 싶은 눈치지만 코로나 시기라 에티켓을 지키며 아기와 놀아주던 한 아주머니는 아저씨가 그만 가자고 하자 "어머 어떡해! 발길이 안 떨어진다. 저 아기 집에 데리고 가고 싶어."라며 걸음을 옮겼고 아기가 점점 멀어져 안 보일 때까지 바라보았다.


둘째는 이제 몸을 뒤집는다. 다행히 몸무게가 10kg에 육박하는 지금도 거리를 걷다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의 눈은 아기에게서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다. 첫째가 아기 때는 어느 세월에 옹알이를 하나, 깔깔 웃나, 혼자서 뒤집나, 기어 다니나, 일어서나를 항상 생각했다면 지금은 언젠가는 옹알거리겠지, 언젠가는 깔깔 웃겠지 하며 느긋하다. 오히려 아기가 하나씩 할 줄 아는 게 늘어나는 게 아쉽다. 한주 전엔 앉으면 몇 초안되어 고꾸라지던 아기가 이젠 까딱까딱 허리를 접었다 폈다 하며 위태롭게라도 꽤 앉아있다.


아기는 금방 크니 아빠의 어깨가 뿜뿜하는 날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결혼을 하면 아기를 한 명도 낳지 않는 현 세태가 아기를 안은 나의 가치를 더 올려줘 첫째 때보다 더 오래 뿜뿜하고 있다. 이제 경험자로서 결혼과 출산, 육아 앞에 망설이는 분들께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아기는 당신의 시간을 한 움큼 집어갈 겁니다. 하지만 그 대가로 당신은 구름 위를 날아다니게 되고 세상 누구보다도 행복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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