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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Jbenitora Oct 12. 2023

휴대전화를 바꿀 수밖에 없던 이유

2016년도에 4.7인치 16:9 화면의 레티나 HD 디스플레이, 128Gb 메모리에 로즈골드 색상의 아이폰 7을 사서 7년간 잘 써왔다.


그전엔 4인치 화면에 16Gb 메모리를 가진 아이폰 5를 4년간 사용했었다. 한 손에 잡히는 크기와 단순한 디자인의 아이폰 5는 내게 딱 맞았지만 한 가지가 아쉬웠다. 핫스팟 기능이 안 되었던 것이다. 그 사실을 1년이 넘어서야 알게 되어서 무상 교환이 불가능했다. 불편하지만 3년을 더 쓰다가 아이폰 7으로 바꾸었다.


좀 더 넓어진 화면에 핫스팟이 터지고 ios 지원도 버전 10부터 15까지 계속되면서 아이폰 7은 효자 노릇을 하였다. 3년쯤 지났을 때 배터리를 순정으로 교체하고는 다시 3년간 아무 불편이 없었다. 그렇게 도합 6년이 흘렀다. 2022년이 되자 아이폰 7은 구시대 물건 취급을 받게 되었다. ios 16이 배포되면서 애플사의 소프트웨어 업데이트 지원 대상에서 빠져버린 것이었다.


ios 16에 '누끼 따기'와 같은 기능들이 추가되었다지만 전혀 필요 없는 기능이었다. 새로운 기기를 살 생각은 조금도 들지 않았다. 그즈음 휴대폰 화면을 보호하는 필름이 자꾸 일어나서 떼어냈더니 깨끗하고 훨씬 밝아져서 새 폰으로 보였다. 보안 업데이트는 ios 15에서도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불편 없이 다시 1년이 흘렀다.


배터리 성능최대치가 85% 아래로 내려갔다. 완충을 해도 하루를 넘기지 못했다. 평소 운전할 때마다 휴대폰을 내비게이션으로도 사용하다 보니 금세 바닥을 드러내는 배터리가 아쉬웠다. 들고 다니는 가방에는 보조배터리가 항상 들어있어야 했다. 배터리를 다시 한번 갈까 아니면 다른 휴대폰을 알아볼까 하는 고민이 시작되었다. 배터리를 갈면 그만일 텐데 고민하는 이유는 교체 가격이 6만 원 내외에서 10만 원 내외로 올랐기 때문이었다. 사설업체에서 그보다 저렴하게 바꾸는 것도 생각해 보았지만 몸은 자꾸 바꿀만한 휴대폰을 검색해보고 있었다.


초등학교 1학년인 첫째 아이가 3학년이 되면 폰을 사주기로 했다. 그때 가서 살만한 폰을 미리 본다는 핑계로 당근마켓(이하 당근)을 들락거렸다.

'나는 괜찮은데 아이 때문에 미리 검색해 보는 거야.'

여느 잼민이들과 같이 아이폰 아니면 안 된다고 하는 건 학교 들어간 지 얼마 안 된 우리 아이도 마찬가지였다. 그렇지만 실내화며 책이며 잘 잃어버리고 다니는 초등학생에게 150만 원에 가까운 최신폰을 사줄 수는 없었다. 때가 오면 중고폰을 사줄 것이라 2년 뒤의 일이지만 미리 계획하고 있었다.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으니 나도 최신폰에는 욕심이 없었다.


아낀다는 핑계로 새 폰은 제쳐두었지만 당근에 새로 판매 등록되는 아이폰을 시리즈별로 찜해두고 있었다. 일반과 프로, 프로맥스의 가격이 다르고 상태에 따라 지역에 따라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아이폰 공기계의 중고 가격은 11은 40만 원, 12는 60만 원, 13은 80만 원, 14는 100만 원 언저리였다.


아이폰을 자꾸 검색해보고 있으니 폰의 구매욕구가 나날이 높아졌다. 중고라도 아이폰의 가격이 상대적으로 높아 중고값이 낮은 갤럭시 시리즈도 생각을 해보긴 했으나 그리 당기지 않았다. 일단 삼성 폰은 사용해 본 기억이 없었다. 최근 GOS 성능조작 논란이 있었고 평소에 안드로이드 OS는 보안이 취약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기도 했다. 삼성페이를 쓰지 않으며 녹취도 별 필요가 없는 나는 굳이 갤럭시로 넘어갈 이유가 없었다. 눈 감고 지르면 가격 높은 S시리즈가 아닌 실속 있는 A시리즈로도 갤럭시파가 될 수 있었지만 그냥 애플빠로 남기로 했다. 아이폰을 선택할 경우 폰과 폰 간 무선 마이그레이션이 지원되어 기존 폰에 있는 자료를 새 폰에 쉽게 옮길 수 있었고 활용하는 앱들을 그대로 쓸 수 있어 마음의 거리가 훨씬 가까웠다.


다음 며칠 동안 당근에서 갱신되는 판매자들의 아이폰을 살피면서 성능표를 검색해서 대략의 성능 하한선도 정해두었다. 이 기준에 따라 아이폰 8 , X, 11은 제외하기로 했다. ios를 쓰는 기기의 성능을 측정하는 PassMark Rating 점수가 13,404인 아이폰 7과 드라마틱한 차이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최종적으로 이 점수가 최소 3만 점을 넘어가는 아이폰 12와 13을 물망에 올려놓았다. 마침 최신 아이폰인 15의 출시가 얼마 남지 않은 시점이라 12와 13의 중고거래도 활발하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휴대폰을 바꾸고자 하는 마음이 촛불에서 들불로 번지고 있었다.


어느 날 아이 하원을 위해 나서다가 아내의 전화를 받았다. 아내의 사무실에 잠시 들러 뭘 챙겨가라고 했다. 갔더니 아내가 보이지가 않았다. 급한 마음에 전화를 해보려고 주머니에서 폰을 꺼내다가 손에서 미끄러졌다. 폰은 화면이 바닥을 향해 떨어졌고 별일 없겠지 하고 집어 들자 액정 유리가 산산조각 나있었다. 평소에 케이스를 씌워놓기에 방바닥에서는 떨어뜨려도 아무 문제가 없었는데 사무실의 타일바닥은 또 달랐다. 게다가 화사한 화면을 위해 보호필름을 떼놓은 것이 이 사태를 만드는데 일조하였다.


잠시 뒤 나타난 아내에게 화면을 보여줬더니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일부러 깬 거 아니에요? 요즘 말만 하면 아이폰 아이폰 하고 허구한 날 당근만 보더니..."

"헐~ 아니거든요. 손에서 미끄러져서 이렇게 된 거거든요!"


깨진 액정에 손을 가져다 대자 껄끄러운 느낌이 들었다. 화면의 유리만 갈라졌을 뿐 작동은 잘되었다. 그냥 보호필름을 붙이고 쓸까 하다가 궁상떠는 것 같았다. 휴대폰을 안 쓰는 직업도 아니고 대외적 활동을 하면서 액정 깨진 기기를 가지고 다니는 것은 대외적 신용도 측면에서도 좋은 선택은 아니었다.


"할 수 없네요. 내 용돈으로 중고 괜찮은 거 나오는 데로 사야겠네요."

아직도 일부러 깼다고 의심하는 아내를 애써 무시하고 아이 하원을 위해 나왔다. 아이를 데리고 집에 와서 찜한 매물의 판매자들에게 일일이 메시지를 남겼다. 그중에 한 판매자가 내가 제안한 가격에 판매를 하겠다고 회신이 왔다. 다음날 30분 거리를 운전해 가서 기기를 사 왔다.


사 온 기기는 아이폰 12 pro로 6.1인치 OLED화면에 카메라가 3개 달려 있었고 기존 폰과 같은 용량의 메모리를 가지고 있었다. 폰을 옆에 두고 데이터를 그대로 복사했다. 데이터 복사가 끝나고 유심카드를 옮기니 약간 커지고 무거워진 것 빼고는 지금껏 계속 써왔던 폰과 다름없었다. 판매자가 사용하던 투명젤리케이스와 씌워둔 액정보호필름은 다른 걸로 바꾸지 않고 당분간은 계속 쓰기로 했다.


'이제야 나의 고민이 끝났구나.'

아이폰 구매 후 다시 당근에 들어가지 않는 일상으로 돌아왔다. 새로운 아이폰으로 옮겨가기 위해 들썩이던 마음이 자연스레 식었다. 당분간은 휴대폰에 욕심을 낼 필요가 없어졌다. 내년쯤 배터리를 한번 갈아주면 새것처럼 다음 3년을 쓸 것이다. 2년 뒤에 첫째를 위한 폰은 또 이렇게 사서 주면 될 것이다.


지금에 와서 보니 휴대전화를 바꿀 수밖에 없는 이유는 배터리가 빨리 닳아서도 화면유리가 깨져서도 아니었다. 몸과 마음이 원하고 또 원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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