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Jbenitora Oct 26. 2023

작은 차이가 삶을 바꾼다

K형을 대학교 4학년 때 만났다. 나보다 한학번이 빨랐고 같은 경영경제학부였다. 우리 학교는 복수 전공이었기에 나는 국제지역학과 경제학을 형은 정석대로 경영학과 경제학을 전공으로 하였다.


학교는 1학년부터 4학년까지 선후배를 같은 팀으로 묶어 기숙사 방을 배정했다. K형과 나는 같은 방을 썼다. 학번은 달랐지만 우리는 같은 4학년이었기 때문에 경제학 과목을 같이 들었다.


군대 가기 전에는 학점 3.0을 넘은 학기가 없고 복학 후에야 3.5를 조금 상회하는 학점을 받는 수준인 내게 K형은 우상 같은 존재였다. 모든 과목에서 A+를 척척 받아내는 그를 보며 어쩌면 저 사람은 천재가 아닐까 생각했다.


그간 내 학점이 낮은 이유는 대학교 교육이 사회에 가서 그렇게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학사는 취업시장에 진출하거나 공무원이 되는 사람이 가지는 기본 자격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학점이 2.0이던 4.5이던 학사면 똑같은 학사였다. 취업을 하게 되면 회사에서 일을 가르쳐 줄 것이고 그때 배워서 열심히 하면 될 것이었다. 학점이 높아봐야 사회에 나가면 모두 0에서 시작해야 했다.


하지만 4학년 1학기를 K형과 함께 생활하면서 마음이 좀 달라졌다. 학점이 대학생활의 성실성을 평가하는 기준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형은 대부분의 시간을 기숙사에서 보내는 나와는 달리 대부분의 시간을 도서관에서 보냈다. 사교성이 뛰어나거나 튀지는 않았지만 수업시간마다 깊은 사색 후에야 나올 수 있는 질문을 했다. 교수의 문제 출제의도를 정확하게 꿰뚫었고 그것을 풀어낼 지식을 늘 채웠다.


나는 관심이 있던 국제지역학 과목은 A가 간간이 나왔지만 경제학은 혹시 모를 취업을 대비해서 들어두는 과목이라 늘 B를 벗어나지 못했다. 그런데 한 학기를 남겨놓은 시점에서 경제학도 A 한번 받아보자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K형의 영향이었다.


내가 K형을 보고 탄력을 받고 있을 때 형은 이전에 보이지 않았던 모습을 보였다. 사귀던 여자친구와 헤어지고 마음을 잡지 못했다. 어느 날은 갑자기 수업에 들어오지 않아서 같은 팀이던 우리를 당황하게 하였다. 중간과제의 발표를 맡은 팀의 에이스가 발표 당일날 나타나지 않았다. 다행히 같은 팀의 다른 형이 발표를 맡고 내가 서포트를 해주면서 과제발표는 잘 끝났다. K형은 그날 이후 3일을 기숙사에도 얼굴을 비추지 않았다. 알고 보니 여자친구의 집이 있는 전라도 광주까지 차를 몰고 무작정 찾아갔다가 빈 손으로 돌아온 것이었다.


그런 형의 모습이 이해가 안 갔지만 여자 하나에 자기의 모든 것을 벗어던지고 그 먼 거리를 다녀오는 행동이 조금은 멋있기도 했다. 형의 빈자리가 잘 메워졌기 때문에 그런 것일 수도 있었다. 아무튼 이성적인 나는 절대 할 수 없는 행위였다. 형은 말도 없이 발표를 회피한 것에 대해 사과를 하지 않았다. 책임감 없는 행동에 피해를 볼 뻔한 우리가 괜히 형의 실연의 상처를 건드릴까 더 조심하고 있었다.


이후 K형은 4.5에 가까운 성적으로 학교를 졸업했다. 나는 3.5도 안 되는 성적으로 졸업을 했다. 그래도 평균 학점 C+도 안되던 1, 2학년 때를 생각하면 B0는 넘었다는 것만으로 좋았다. 게다가 마지막 학기에는 K형을 보고 Feel을 받은 덕분에 경제학 과목 하나를 A0를 받은 작은 성취도 이뤄냈다.


세월이 지나도 K형은 한 번씩 생각이 났다. 간간이 내가 안부 연락을 먼저 했다. 그러던 어느 날 K형은 급하게 돈이 필요한데 300만 원만 빌려줄 수 있냐고 내게 물었다. 결혼하여 애가 있는 사람이 꽁쳐놓은 돈은 있어봐야 몇 만 원 수준이었다. 아내에게 정말 친한 형이 금전적으로 어렵다고 하니 이번 달 내 월급에서 떼서 보내주고 싶다고 얘기했다. 우리는 집을 사기 위해 돈을 모으고 있었지만 맞벌이였고 애가 어려서 그 정도 돈은 없어도 그만이었다. 내게 K형은 300만 원의 가치 이상의 사람이었다. 아내가 허락했다.


K형이 불러준 계좌에 송금했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형이 돈을 주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대신 그렇게 되면 다시는 형에게 연락할 일은 없게 될 것이었다. 형은 매달 100만 원씩 3개월간 돈을 갚았다. 마지막 입금은 1달 정도 연기가 되었지만 300만 원이 다시 생활비 통장으로 돌아왔다.


상환이 완료되던 그 시기에 마침 서울 출장이 있어서 형과 연락해서 만났다. 형은 제대로 된 직장을 다니고 있지 않았다. 정확히 얘기하면 졸업 후 정규직으로 일한 경험이 없었다. 현재 결혼해서 아이도 있다고 했다. 내게 알리지 않았기에 결혼얘기는 충격이었다. 알았다면 아무리 멀어도 갔을 텐데 축하를 못해준 게 괜히 미안했다. 가정일로 급하게 돈이 필요했는데 고마웠다고 지금은 일이 좀 들어와서 숨통이 트인다고 했다.


그날 형과 광화문에서 식사를 하고 서울역까지 걸어 내려오면서 많은 이야기를 했다. 형은 쿠팡에 위탁받아 택배 배달을 하고 있었다.


"이 일은 잠깐 동안만 하는 거야. 나는 창업을 할 생각이야. 아이디어는 있는데 투자처가 없네."


창업기업 컨설팅은 내가 하는 주요 업무 중의 하나였다. 형에게 어떤 아이디어인지를 물었다. 들어보니 딱히 비전이 있어 보이지는 않았다.


"형, 제가 봤을 때 계획하는 사업이 획기적이지는 않지만 일단 정부지원사업을 통해 자금을 지원받아서 도전해 보는 건 가능할 것 같네요. 사업계획서 양식을 하나 보내줄 테니 한번 적어보세요. 되도록 자세히 적으면 제가 심사원의 입장에서 부족한 것을 알려드릴 테니 같이 만들어 봅시다."


형은 그것보다는 투자받을 곳을 알고 싶다고 했다.


"투자전문기관도 사업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있고 비전이 있어야 투자를 할 겁니다. 정부지원금이 크진 않아도 내 돈 많이 들이지 않고 시작할 수 있을 정도는 되니까 시작부터 하세요. 그래야 부족한 것을 보완해 나가면서 점점 키워가지요."


이런 얘기를 계속 건넸지만 투자를 넉넉히 받아서 직원 몇 명을 거느린 번듯한 사무실에서 사업을 시작하려는 마음이 있는 형에게 메리트(merit) 있게 다가오지 않는 것 같았다. 서울역이 보이는 길건너편에서 형에게 정부지원사업 관련하여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연락하라고 하며 헤어졌다. 길을 건너고 나서 뒤돌아 본 형은 스마트폰 문자로 날아온 다음날 택배 일정을 체크하고 있었다.


나는 학사 때 공부 외에도 많은 것을 배웠기에 학점이 낮은 것에 대해 후회는 없다. 그리고 그 덕에 석사와 박사과정 때는 학사 시절을 뒤돌아보며 대충은 없다는 생각으로 공부했다. 그렇게 임하니 A0과 A+ 일색인 성적증명서가 내 손에도 쥐어졌다.


또한 나는 중소기업에서 경력을 시작했다. 차근차근 업무를 배웠다. 월급이 적다고 일을 대충 하지 않았다. 적은 월급은 실력을 키워 이직을 하면 해결된다고 생각했다. 적게나마 시도를 하면 반드시 끝을 봤다. 실패로 끝난 시도라도 그 경험은 다음 시도에서의 성공을 약속해 주었다. 경력은 그렇게 쌓였다. 자격증을 딸 때도 마찬가지였다. 당장 거창하게 시작하기보다 책상에 앉아 한 문장을 읽고 이해하는 것부터 했다. 하기 싫어도 그 시간이 되면 책상에 앉았다. 결국은 자격증은 내 손에 들려있었다.


내가 잠깐의 그 만남으로 K형을 평가할 자격은 없다. 그러나 대화를 하면 할수록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렇게 유능하던 형이 왜 이러고 있을까?'


형은 조그마한 회사에서 일할 바에야 창업을 하겠다고 생각했다. 창업을 할 거면 그럴듯한 아이디어로 그럴듯하게 투자받아서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들이 시작하는 것을 막았다. 작게라도 시도하고 고쳐나가는 경험이 쌓여야 성취로 가는데 그런 경험이 원천적으로 막힌 것이었다.


나이가 차고 돈은 필요했다. 경력이 없으니 회사들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파트타임으로 일을 시작했다. 그러나 조금씩 일이 있을 때마다 하던 것들은 경력이 되지 못했다. 집에서 도와주어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았지만 형의 일상은 나아지지 않았다.


나는 이제부터라도 형이 생각을 바꿔 한 번에 인생 역전하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더 나아지려는 시도를 했으면 한다. 택배를 하면서 궁극적으로 하려던 창업 아이디어를 작게라도 실현해봤으면 한다. 필요하면 정부지원사업에 참여하고 나를 비롯한 주변인들의 도움을 받았으면 한다. 실패하면 다시 개선하고 조금씩이라도 사업을 키워가면서 성공의 노하우를 쌓았으면 한다. 책임감을 가지고 끝을 보았으면 한다. 시작을 자꾸 늦추지 않았으면 한다. 형이 이 글을 읽을 일은 없을 것 같지만 이것은 세상의 많은 K형들에게 내가 하고 싶은 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휴대전화를 바꿀 수밖에 없던 이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