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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Jbenitora Nov 15. 2023

4km를 달리고 두려움을 느끼다

태화강 달리기 대회

9월의 어느 날이었다. 휴대폰에 문자하나가 떴다. 마라톤대회 참가신청을 받는다는 문자였다. 마침 바쁜 일도 없어서 링크를 클릭했다. 11월 12일에 열리는 울산마라톤 개최를 알리는 페이지가 떴다. 대회의 의미, 역사, 주행코스 등 여러 정보들 중에서 눈길을 끈 것은 바로 참가 기념품이었다.


전 코스 참가자에게 모두 T셔츠를 주었고 10km는 추가로 수건을, 하프와 풀코스 마라톤은 슬링백을 주었다. 슬링백이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장 필요치도 않았지만 있으면 좋을 것 같았다.

'요즘 운동도 거의 안 하는데 슬링백을 핑계로 하프나 달려볼까?'

생각이 들자마자 동생에게 링크를 걸어 메시지를 남겼다.

"하프 뛰면 슬링백을 준다는데 이번 대회 같이 참여 안 할래?"


동생은 대회가 2달도 더 뒤인 주말이란 걸 보더니 바로 신청을 하고 등록증을 내게 보냈다. 동생은 한 때 체육인이었고 하프를 2번이나 뛰었던 경험이 있었다. 이런 번개 같은 동생의 대처에 나도 결제버튼을 누르고 등록증을 받았다. 


충동적으로 참가신청을 했으나 운동하고는 멀리 살아온 인생이라 두려움이 생겼다. 달리기를 참가할 몸을 만들어야 했다. 마침 우리 구에서 구민건강을 위해 4km 남짓한 구간을 뛰는 '종갓집 태화강 달리기' 행사가 한 주 뒤에 있었다. 없던 달리기 습관이 등록을 한다고 재깍 생기는 것이 아니었기에 4km를 뛰어보고 몸만들기 계획을 짜기로 했다. 달리기에 대한 지식도 채우기 위해 러너들의 유튜버 영상을 보며 달리기 팁을 얻었다. 초보에게 좋은 맥시멀 쿠셔닝 운동화를 검색해서 주문했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나갔다. 


달리기 행사날이 되었다. 집결지인 태화강 국가정원 축구장에 조금 일찍 나갔다. 4km라는 짧은 거리이고 현장에서 접수하고 달리는 것이라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있었다. 가방을 메고 소풍 오듯 나온 할머니들, 아이들 손잡고 참가한 가족들, 깔깔 호호 웃으며 몸을 푸는 커플들 사이에 마라톤복을 입고 다리의 실근육을 뽐내는 중년의 남성의 모습도 보였다. 나는 놀러 나온 사람들과 마라톤 선수복장으로 스트레칭을 하는 남성 사이 어느 애매한 지점에 있다는 생각을 했다. 아직 본격적인 운동을 시작하지는 않았지만 마음은 운동이 취미인 사람이었다.


사람들이 축구장을 듬성듬성이나마 채우자 마이크를 든 사회자가 등장했다. 행사 전에 구청장을 비롯한 정치인들과 내년 총선을 대비하는 몇몇 정치인들의 인사가 있었다. 따분한 이 시간이 지나자 트램펄린 점핑운동 팀이 나왔다. 누군가는 주말 늦잠을 잘 아침 8시에 신나는 음악 속에서 웃으며 뛰는 그들의 모습이 참 건강해 보였다. 나의 세포들도 들썩였다. 이어서 올망졸망한 아이들이 무대에 올라와 춤을 추었고 공연이 끝나자 참가자들 모두 한 팔간격으로 서서 준비운동을 하였다. 그러는 동안 자원봉사 하는 분들이 참가자임을 표시하는 손목 띠를 배부하였다. 


사회자의 안내로 출발지로 이동하였다. 모인 사람들이 출발선부터 100m 뒤까지 새까맸다. 기록이 중요하지 않아서 중간쯤에 서 있다가 "땅" 소리와 함께 달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앞서가는 사람들이 뛸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애초에 기록을 생각하거나 제대로 뛸 생각을 한 사람들은 이미 선두에 서서 잽싸게 달려 나갔다. 나는 지뢰밭을 지나는 사람처럼 이 대회를 걷기 대회로 알고 있는 사람들을 헤치며 달려야 했다. 


'하프마라톤 대회에서는 무조건 선두에 서야겠구나!'


1km 가까이 달리자 지뢰들이 사라졌다. 나와 같이 인파를 헤치며 달린 주변 사람들이 몸이 풀리는지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여기서 나도 속력을 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지난 10년간 달리기 한번 제대로 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 조깅화 하나 새로 샀다고 막 달릴 수는 없었다. 나를 제치고 수많은 사람들이 지나갔다. 중학생 쯤되어 보이는 학생, 허약해 보이는 어르신, 운동과는 담쌓았을 듯한 젊은 여성 등 내가 피지컬(Physical)로는 절대 밀릴 것 같지 않은 사람들이 조금씩 나와 거리를 벌려가고 있었다.


2km가 되어가니 무릎에서 약간 신호가 왔다. 이때 빨리 달리면 10km 완주하던 2번째 달리기 때처럼 다리를 절게 될지도 몰랐다.

'역시나 부실한 몸이 티를 내는군...'


몸이 점점 힘들어지기 시작하니까 오른손에 든 생수병이 거슬렸다. 아까 출발선으로 이동하는 길에 생수병들이 놓여 있었다. 그걸 본 일부 사람들이 좀비 떼처럼 생수병으로 달려들었다. 나도 그 분위기에 휩쓸려서 한병 집어 온 것이었다. 한 모금 마시곤 버릴 수 없어 들고 있었다. 달리기를 마치고 나서 챙겨도 되는데 괜한 욕심에 들고 왔다가 안 그래도 힘든 달리기가 더 힘들어졌다. 


십리대밭교가 보이는 곳에 위치한 반환점을 돌았다. 아직 온 만큼을 더 뛰어야 했다. 몸은 더 이상의 속도를 내길 거부했다.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에게, 겨우 절반 밖에 안 뛰었는데 저렇다고?'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만큼 나의 기본 체력은 약해질 대로 약해져 있었다.


심장은 요동치고 있어서 나를 앞질러 가는 사람들을 따라잡기 위해 속력을 높이는 것은 불가능하였다. 조금 전까지는 '내 체력의 한계를 모르니까 무리하지 말자' 였다면 지금은 '이 이상은 안 되겠는데'였다. 걸음으로 바뀌려는 뜀박질을 겨우 유지하면서 3km 지점을 통과했다. 벌써 달리기를 끝내고 쉬고 있는 사람들이 저 멀리에 보였다. 약간의 힘이 났다. 마지막 직선 주로에서 몸에 있는 힘을 짜내어 전속력으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출발할 때 여유 있게 한컷 찍은 생각이 나서 같은 장소에서 도착한 모습을 찍었다. 5년은 늙은 모습이었다.

기념품 교환대로 가서 완주 기념품을 받았다. 갑작스러운 운동으로 놀란 근육과 심장이 한참의 휴식을 원했다. 일어서서 집으로 갈 힘도 없었다. 30분쯤 뒤에 있을 참가자 대상 경품추첨행사를 기다릴 겸 헉헉 대는 몸도 쉴 겸 스탠드에 앉았다.


물을 마시며 쉬고 있으니 하나둘 결승선으로 들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달리려는 의지가 있는 사람들 중에서는 4km를 25분에 완주한 내가 꼴찌그룹이었지만 전체 참가자를 봤을 때는 상위 25%는 되어 보였다. 추첨행사 시간이 다가오자 아까의 그 등산복 입고 가방 멘 할머니들도 여유롭게 걸어서 결승선을 통과하는 모습이 보였다.

'하프마라톤 완주가 목표이니 힘들면 굳이 뛰지 않고 걸으면 되겠구나!'

행사를 즐기는 할머니들을 보면서 하프참가라는 큰 짐이 가벼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경품 추첨하는 모습을 보면서 한참을 쉬었다. 경품을 뽑아서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나도 하나 받았으면' 하는 생각은 어디에도 없고 '2달 뒤 나는 어떻게 될까' 하는 막막한 생각밖에 없었다. 몸을 푼 뒤에 집으로 돌아오면서 '이래선 안된다'는 생각이 크게 들었다. 무모하게 벌인일에 책임을 지기 위해서는 앞으로 남은 2달 동안 주 3회 이상은 달리기를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정 체력이 안되면 걸어야 하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된 것은 이번 달리기 대회에서 얻은 팁이지만 칼을 뽑았으니 무라도 베려면 오늘의 5배 거리를 달려낼 기본 체력부터 만들어야 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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