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Jbenitora Nov 20. 2023

생애 첫 하프 마라톤을 위한 달리기 초보의 수련과정

조깅

9월 16일의 태화강 달리기 대회가 끝나고 하루를 쉬었다. 저질 체력임을 알게 되었기 때문에 기초체력을 키워야 했다. 하프 마라톤 대회날까지 어떤 일이 있어도 이틀에 한 번은 달리기로 계획했다. 새로 들이는 습관은 작심삼일 하기 쉽기 때문에 새벽에 눈을 뜨면 바로 나가 뛸 수 있도록 조깅복장을 입고 잠이 들었다.


첫날은 우리 동네에서 유일한 평지 트랙이 있는 함월구장까지 왕복 달리기를 했다. 평소에는 차를 타고 가던 곳이고 걸어서는 한두 번 가봤어도 뛰어서 간 적은 없는 곳이었다. 왕복 3km 남짓한 거리였다. 동네가 산 위에 있다 보니 오르막과 내리막이 좀 있어서 속도를 일정하게 유지하기가 어려웠다. 오르막이 나오면 지쳐서 걷고 싶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고 내리막이 나오면 무릎이 나갈까 잰걸음으로 뒤꿈치부터 조심조심 뛰느라 속도가 금방 줄었다. 그렇게 20여분을 달리고 첫날 조깅을 끝냈다. 어둑어둑하던 주변은 어느새 아침 햇살로 인해 밝아지고 있었다. 반팔에 반바지를 입었지만 집에 들어오니 땀으로 속옷이 젖어있었다.


다음날은 새벽에 일어나서 유튜브 요가 영상을 틀어서 따라 했다. 하루를 뛰면 하루를 쉬면서 근육을 충분히 풀어주면 좋다는 달리기 선배들의 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다음 날 새벽에는 동네를 반대편을 돌아가는 코스로 첫날과 비슷한 거리를 뛰었다. 그렇게 주말을 빼고 하루 건너 하루씩 4번을 뛰고 나니 장거리 달리기를 위한 대책이 머릿속에 그려져 갔다. 새벽 조깅이 생각보다 뛸 만하였고 오르막과 내리막에 속도를 많이 낮추면 힘든 것도 그다지 없었다. 단지 하루 30분밖에 뛰지 않기 때문에 장거리에 가서 내 몸이 어떻게 될 것인지는 아직까지 추측의 영역이었다.


5회 차 달리기는 추석 첫날이었다. 나는 당연히 명절을 쇠러 시골에 내려가더라도 뛰어야겠다고 생각을 했다. 그런데 마음과 달리 몸은 그러지 못했다. 수많은 음식 앞에 배는 항상 차 있었고 늘 아이들과 함께 움직여야 했기에 여유시간이 없었다. 결정적으로 조깅화를 챙기지 않아서 연휴를 한번 달려보지도 못하고 날려버리고 말았다.


핑계 없는 무덤은 계속 이어져 명절 이후 다시 조깅을 시작하지 못한 채 일주일이 더 흘러버렸다.

'이렇게 가선 안되는데...'


몸을 움직이진 않으면서 죄책감이 들면 한 번씩 유튜브에서 초보러너들의 하프 달리기 팁 영상을 틀어보았다. 어느새 하프마라톤 대회는 한 달 앞으로 다가왔다. 두려움에 둘러 싸여 있으면서 다시 달릴 동기가 생기기를 수동적으로 바라고 있었다.

'3시간 안에 들어오면 완주니까 달리다 뛰다 하면 되지! 조금 뛰어보다 힘들면 기권하자. 완주 못 한다고 뭐가 어떻게 되는 건 아니잖아!'


누가 등 떠미는 것도 아니라는 생각과 안 될 것 같으면 포기하자는 나약함이 머릿속에 가득 찼다. 이대로는 답이 없었다. 쇄신이 필요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영상에서 달리기를 취미로 하는 사람들이 시계를 손목에 차고 뛰면서 자신의 달리는 페이스와 심박수, 거리 등을 재고 있는 것을 보았다. 예전에 전자손목시계 열풍이 불 때 샤오미의 '미밴드'를 사서 끼고 다닌 적이 있었다. 나는 반지, 목걸이, 귀걸이, 넥타이 등 액세서리를 몸에 차고 다니는 것을 거추장스러워하는 사람이었다. 그런 내가 수영하면서 운동량을 체크하려고 미밴드를 산 것이었다. 그럼에도 손목시계가 거추장스러운 물건 중 하나였던 나는 코로나로 수영이 불가능해지자마자 미밴드를 서랍 속에서 넣어버렸다.


세월은 몇 년이 훌쩍 지났고 그 사이 성능이 좋아진 스마트 워치들이 나왔다. 달리기의 의욕을 올리기 위해서는 내가 평소 어느 정도 속도로 얼마나 뛰고 있는지 아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민'이라는 달리기 전용 스마트워치가 있다고는 하지만 비싼 돈 들여 사봐야 미밴드 꼴을 벗어나지 못할 것 같았다. 마침 아이폰을 사용하고 있으니 애플워치를 사면 달리기 앱을 사용하는 일이 뜸해지더라도 전화받고 문자나 카톡도 간편하게 확인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애플워치를 차고 달리기를 하는 사람도 제법 많았다.


내가 몇 번 차지 않고 미밴드를 봉인했듯 몇 번 차지 않고 애플워치를 봉인한 사람의 것을 온라인 중고장터에서 저렴하게 구했다. 서랍에서 잠자고만 있었는지 거의 새것과 다름없는 워치를 끼고 다음날부터 달리기를 다시 시작했다. 애플워치 기본 앱도 있지만 나이키러닝클럽(NRC) 앱을 이용하였다. NRC는 나이키가 공익목적으로 만든 앱인데 달리기 기록측정뿐 아니라 동기부여역할도 해주었다. 전자손목시계가 알려주는 주행코스와 속도는 다시 한번 의욕을 높여주었다. 하루 쉬고 하루 달리기가 다시 시작되었다.


달리기를 하다 보면 몸의 어디가 약한지 감이 왔다. 어느 날은 뛰는 중에 심장에서 찌릿찌릿 전기가 흐르는 느낌이 났다. 10년 전 10km 달리기 때도 힘들게 뛸 때 이런 느낌이 났기 때문에 '내가 무리하게 속력을 높였구나' 하며 평균속도를 낮췄다. 또 어떤 날은 무릎이 뻑뻑한 느낌이 들었다. 이 증상은 2주쯤 계속해서 달리니까 사라졌다. 무릎도 단련이 된 것이었다. 한날은 목에 가래가 꼈는데 뱉지 않고 뛰다가 기도를 막아서 달리다 멈추고 우악스럽게 기침을 하기도 했다. 오르막을 오르다가 다리가 저리기도 했고 긴장해서 어깨에 힘을 많이 줬는지 어깨근육이 뭉치기도 하였다.


슬슬 이런 경험이 쌓여가며 자신감이 생겨났다. 꾸준히 뛰고 있는 자신에 대한 자랑스러움도 한 몫했다. 휴양지에서도 헬스장 유무를 먼저 확인한다는 부자들처럼 나도 평생 운동습관을 만들고 있었다. 내가 부자는 아니지만 마치 수백억 부자인 듯한 느낌이었다. 새벽 공기를 가르는 상쾌함은 삶에 여유가 없으면 느껴 볼 수 없는 것이었다.


11월이 되자 날씨가 급속히 추워졌다. 집을 나서는 게 점점 어려워졌다. 조깅할 옷을 입고 자지 않았다면 옷 갈아입기가 싫어서 안 나가겠다 싶을 정도였다. 뛰기 싫은 자신을 걷다가라도 들어가자고 설득해서 밖에 나오면 뛰는 건 어렵지 않았다. 뛰다 보면 몸이 데워지고 10분 이상 지나면 러너스하이 같은 게 찾아와서 30분은 꼭 채웠다. 반바지와 반팔을 입어서 그런지 30분을 뛰어도 땀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집으로 들어왔다.


대회가 가까워지니 추위핑계로 새벽에 나가고 싶지 않은 생각이 사라졌다. 달리는 습관이 몸에 붙었다기보다는 대회의 긴장감이 몸을 일으켜 세웠다. 더 추워져서 긴바지를 입고 뛰어도 땀이 안 날 정도가 되었고 뛰다 보면 손이 시려 작년에 산 장갑을 꺼냈다.


대회 전 주에는 일요일 4.58km, 화요일 5.02km, 목요일 7.63km를 뛰었다. 목요일 러닝은 50분이 걸렸는데 이 정도의 달리기가 그리 힘들지 않게 느껴졌다. 체력이 조금은 생긴 것이었다. 무리하지 않고 금요일과 토요일을 쉬었다. 그렇게 대망의 첫 하프마라톤 대회가 열리는 일요일이 되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4km를 달리고 두려움을 느끼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